여름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이었다. 남편과 나는 초등 4학년 막내딸과 딸아이의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수영장을 가고 있다. 아이의 여름방학 버킷리스트인 '친구들과 수영장 놀러 가기'를 들어주기 위해서.
재잘재잘 히히히 낄낄낄. 차 안은 세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나도 살며시 웃음이 났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왜 좋은지 헤어스타일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듣고는 '요즘 아이들은 취향이 참 분명하구나!' 생각했다.
30분 정도 차를 달려 수영장에 도착했다. 그곳은 경기도 고양시 외곽에 위치한, 수영장 둘레에 설치된 평상에 앉아 고기나 라면 등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수영장이다.
취사도구와 요리 재료를 바리바리 챙겨가야 하기 때문에 짐이 많아진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물가에 앉아서 느긋하게 구워 먹는 삼겹살과 맥주 한 잔의 맛은 정말이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꿀맛이다.
수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두 시간쯤 놀다가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말했다.
"전 고기 안 먹을래요."
"왜? 고기 싫어해?"
"네."
"그럼, 소시지는 좋아하지?"
"그것도 별로요."
너무 당황스러웠다. 고기를 싫어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소시지를 싫어하는 어린이는 그간 내 주변엔 없었다.
"그럼, 라면은?"
"라면은 좋아해요."
"라면 끓여줄까?"
"전 그 라면은 별로 안 좋아해요. 이따가 매점 가서 제가 좋아하는 컵라면 사 먹을 거예요. 체크카드 가져왔어요."
라면은 좋아하지만, 아무 라면이나 먹지 싶지 않으니 원하는 걸 사 먹겠다는 말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다른 한 친구는 고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모든 고기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분명한 취향이 있었다.
"저희 아빠는 고기를 빠삭하게 구워줘요. 그게 맛있다고 하는데, 저는 딱딱해서 싫어해요."
"앗, 아저씨도 겉을 튀기듯이 바삭하게 굽는 거 좋아하는데, 오늘은 부드럽게 구워줄게."
남편은 그 친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쯔란(흔히 양꼬치 먹을 때 찍어먹는 중국 향신료)에 찍어먹어도 맛있는데, 한 번 먹어볼래?"
"전 그거 안 먹어봤어요."
"음식은 배우는 거거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도 공부야."
남편은 평소에 음식도 교육이라며, 아이들한테 다양한 음식을 맛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 조금 먹어볼게요."
고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쯔란을 살짝 찍은 고기를 입에 넣었다.
"음... 맛있어요."
"그럼 나도 먹어볼래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친구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먹어보겠다고 했다.
"어때?"
우리의 시선이 모두 그 친구에게 쏠렸고, 나는 맛없다고 뱉는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맛있어요."
"휴, 다행이다."
쯔란이 그 친구의 입맛에 맞았는지 고기에 쯔란을 듬뿍 찍어 몇 점 먹었다.
나는 그제야 딸아이의 친구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를 미리 확인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내게는 막내딸보다 나이가 여덟 살, 여섯 살 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이 막내딸 만할 때는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주는 대로 편식하지 말고 먹으라는 교육을 받은 것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아이들의 편식이 스트레스였다. 한 아이는 양파를 넣으면 안 먹고, 한 아이는 조개를 넣으면 안 먹고, 한 아이는 오이를 넣으면 안 먹는다. 세 아이의 제각각인 입맛을 맞추자니 피곤했고, 내 입맛에는 다 맛있는데 왜 안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속여서라도 먹여보려 노력하다가 차츰 마음을 바꾸었다.
요즘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먹거리인데 그중 한두 가지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니까. 편식한다고 뭐라 하지 않고 아이들의 취향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다행히 오후 간식으로 준비한 어묵탕은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켰다. 물속에서 실컷 놀고 나와 먹는 보들보들한 어묵과 뜨끈한 국물이 아이들의 허한 속을 채워주고 입맛에도 맞았나 보다.
아이들은 틈틈이 매점에 가서 컵라면, 과자, 아이스크림을 직접 골라 왔다. 이 아이들은 내 또래 어른들이 흔하게 가지고 있는 선택의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친구들을 만나서 뭘 먹을까, 뭘 할까 물으면 대부분 '아무거나'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시간이 많아져 생각해 보니,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오십이 가까워져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둥글게 살라고 배운 나는 크게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서야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혼자라도 보러 가거나, 누군가 '아무거나' 먹자고 말하면 최근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정도의 용기는 생겼다. 예전에는 자신의 취향을 확실하게 밝히는 사람이 조금 이기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멋있어 보인다.
자신의 취향에 대해 당당한 세 아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성격이나 음식 취향, 좋아하는 아이돌까지, 별로 공통점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아침 아홉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열두 시간을 쉼 없이 웃고 떠들면서 잘 놀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취향이 확실한 만큼, 타인의 취향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아이들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난 이게 좋아."
"난 그건 별로야. 난 다른 게 좋아."
"아, 그래? 그런데 그건 왜 좋아?"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