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모든 도민이 드나들 수 있는 무장애 청사'는 장애인들에겐 얕은 턱과 계단에 가로막혀 접근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김 지사의 도청 개방화 계획은 시민 문화공간을 조성해 권위적인 청사를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도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관과 정문 일대를 감쌌던 향나무를 뽑고 담장을 허물었다. 본관 앞 일부 도로의 아스콘을 걷어내고 자연석으로 재포장했다.
키 작은 나무와 고목이 빼곡했던 도청정원은 절반만 남아 잔디와 일부 나무만 휑하니 자리한 잔디정원이 됐다. 동관과 신관 청사 옥상엔 태양광 발전시설을 치우고 화단과 쉼터를 만들었다.
이렇게 조성된 서문의 쌈지광장과 본관 앞 잔디정원, 동관 옥상의 하늘정원까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직접 가봤다.
'열린 도청', '무장애 도로'를 만들겠다던 김영환 지사의 장담과 달리 공간을 모두 둘러본 장애인들은 "이 고생을 하면서 굳이 오진 않을 것 같다"고 평했다.
이들은 "열린 도청이 아니라 닫힌 도청 아닌가요? 모든 도민에 장애인은 포함이 안되나 보네요"하고 한숨을 쉬었다.
"좁은 슬로프와 위험한 계단... 장애인에 대한 고려 부족"
28일 충북도청 서문 앞으로 청주충북환경련와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충북장차연)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장애인 활동가 4명, 활동지원사 3명이 모였다.
장애인활동가 중 3명은 전동 휠체어를, 나머지 1명은 수동·전동 겸용 휠체어를 타고 있다.
100m가량의 쌈지광장은 보폭 17cm, 높이 33cm 가량의 두 칸짜리 계단과 화단으로 도청과 보도의 높이 차이를 줄여 도민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조성됐다.
그러나 이들이 넘나들 수 있는 곳은 서문 옆 경사로뿐이었다. 경사로 반대편인 광장 끝에 슬로프(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으나 좁고 가팔라 이용할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시야가 낮아서 낮은 계단을 못 보고 자칫 사고가 날 위험이 있어요."
서관 앞 쌈지광장을 둘러보던 이선희씨가 이야기했다. 낮은 계단은 휠체어 탄 장애인들에게 위험요소이기도 했다.
충북장차연 송상호 공동대표는 "도청 서관 입구 앞에도 경사로가 없다"며 "무장애도로라면 계단과 화단 중간중간 경사로라도 만들었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들은 "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본관 앞을 지나 하늘정원이 있는 동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본관 앞 자연석 도로가 문제였다.
"저같이 (바퀴가) 작은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자연석 도로에선) 너무 덜컹거리고 높은 방지턱을 넘기도 힘들어요."
수·전동 겸용 휠체어를 탄 박병준씨가 이야기했다. 얇고 작은 앞바퀴가 돌 틈으로 헛돌기도 하면서 전동 휠체어보다 더 덜컹거렸다.
구름다리에 가로막힌 정원... 휠체어 출입금지?
동관 앞에 하늘정원과 연결된 엘리베이터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는 전동 휠체어 한 대와 사람 2~3명이 탈 수 있었다.
지난달 26일 개장한 동관 하늘정원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에어컨이 설치된 휴식 공간 1곳과 정원 곳곳에 의자와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다.
이선희 씨가 휴식 공간으로 들어가보려 했지만 무거운 접이식 문(폴딩 도어)을 열 수 없었다.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문을 열었지만 무거운 의자에 또다시 가로막혔다.
6~7kg정도 되는 듯한 의자는 20대인 기자가 들기에도 무거웠다. 이선희 씨의 활동지원사는 "두 손으로 옮기기도 버겁다"며 난처해했다.
휴식 공간 말고도 휠체어 출입금지 구역을 또 발견했다.
화단을 경계로 구름다리로만 넘어갈 수 있도록 구역을 나눠놨는데, 구름다리를 넘는 것은 고사하고 반대편에는 5cm가량의 턱이 있어 아예 접근이 불가능했다.
무장애 도청이라더니 빛 좋은 개살구
도청 공간을 둘러본 송상호 대표는 "장애인을 고려한 설계가 전혀 아니었다"며 "계단은 오히려 위험하고 장애인들은 휴식 공간 문조차 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은 접근조차 안 되는 공간들을 만들고 무장애 도청이라고 홍보하는지 모르겠다"며 "장애인을 위하는 척하는 장애인 정책"이라고 혹평을 남겼다.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편의시설들은 '보이지 않는 벽'이 다수 존재했다.
장애인과 함께 청사를 둘러보고 나니 "도민에게 87년 역사의 도청을 돌려주겠다"는 김 지사의 호언장담이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