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라는 말이 여전히 어색하고 오글거리지만, 어느덧 2년 차 시민기자가 되었다. 대략 서른 개의 글을 쓰며 오마이뉴스는 여느 글쓰기 플랫폼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별 볼 일 없는 소소한 일상을 주로 쓰지만 감사하게도 기사로 채택되면, 즉 기사로 의미있다고 보면 원고료를 준다는 것, 그리고 내가 쓴 글이 다른 누군가를 통해 편집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끙끙대며 쓴 글이 통과해서 발행되는 경우 주로 3가지 부분이 달라진다. 우선 가장 많이 편집되는 것은 사진이다. 나의 경우 평소 사진을 고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고 그림을 고르는 센스가 부족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로 수정되는 부분은 글의 내용이다. 대부분의 경우 약간의 조사나 종결어미가 바뀌고 불필요한 문장이 삭제되는 정도이다. 수정이 없었던 적도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글의 제목이 바뀔 때도 있다. 그런데 사진이나 문장 일부가 수정되는 것과는 달리, 제목이 바뀌는 경우에는 내 감정도 다양하게 변함을 종종 느낀다.
'와, 이런 제목도 느낌 있네.'
'이 제목은 기존과 거의 비슷하군.'
'응? 이 제목은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 아닌데?'
가끔 예상하지 못했던 제목으로 글이 발행되면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결과 다른 시민기자도 이런 느낌을 경험해 봤다고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제목을 달아주고자 노력했을 편집기자를 생각해 불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 있을 뿐.
저도 나름 공들여 뽑은 제목입니다만
<이런 제목 어때요?>의 저자는 무려 22년 간 무수히 많은 글의 제목을 선정하며 그 과정에서 고민하고 느낀 것들을 책에 담아냈다.
내가 알기로 '사는 이야기'를 담당하는 편집 기자는 2명이다. 이들 편집기자가 하루 평균 20개의 글 제목을 선정한다고 가정하면 1명이 1년간 뽑는 제목의 수는 3650개, 22년이면 무려 8만 7600개에 달한다(안타깝게도 주말에도 글은 계속 발행되기 때문에, 1년을 365일 기준으로 책정했다. 다만 노동시간 및 제도에 따른 변동은 있을 수 있겠다).
이 정도의 경험이라면 글을 한 번 훑기만 하더라도 금방 뚝딱하고 제목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다. 영어공부로 비유하자면 직청-직해, 음악으로 따지면 절대음감의 느낌이랄까. 이에 반해 고작 서른 개의 글을 쓴 나의 포지션은 이제 막 연필을 쥐고 한글을 배우는 수준이다. 편집기자들은 내 글을 더 매끄럽고 빛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글의 제목이 내 생각과 다르게 바뀔 때면 가끔 이렇게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글의 타이틀을 뽑는 데 있어 경험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내 글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글 퀄리티는 낮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전달하려는 내용의 제목을 잘 아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고.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시민기자와 편집기자는 글에 대한 생각과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목에 대한 접근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리라. 작가, 즉 기자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이지만, 편집기자는 글이 돋보이고 많이 읽히게 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탓이다.
시민기자가 생각하는 글의 제목이 자신의 성향이나 글의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편집기자는 어떻게든 더 많이 노출되는 키워드를 생각하거나 독자의 호기심을 유도하기 위한 고민을 할 것이다. 계속해서 '더 잘 읽히는' 제목을 고민할 테다.
"생각해보면 대단하고 훌륭한 제목은 어쩌다 한 번이다. '빡'하고 오는 느낌 충만한 제목은 안타깝게도 자주 오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일상적으로 뽑는 제목은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 수정 또는 확정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힙한 제목도 좋지만 문장을 한 번 더 보라고 하는 건 그래서다. 제목은 만지면 만질수록 좋다. 글에서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듯 제목도 마찬가지다." (184쪽)
책에서 '제목은 만지면 만질수록 좋아진다'는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다. 나도 내가 쓴 글을 일주일이 넘도록 퇴고한 적도 있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글의 제목 선정에 있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좀 더 제목을 뽑는 데도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문장이었다.
한편, 저자에 의하면 제목 변경으로 인해 시민기자의 항의가 들어올 때도 있다고 한다. 서로 돕고 사는 마당에 굳이 항의를 해야 할까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글쓴이 스스로가 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을 것이고, 글쓰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갈수록 글에 대한 애착도 더 클 테니까.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조연
책 <이런 제목 어때요?>는 책 자체도 두껍지 않고 내용이 어렵지 않아 술술 읽혔다. 글을 쓰는 시민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편집기자들의 고민과 생각이 신선했고 재미도 있었다.
제목을 선정함에 있어서 새로 알게 된 내용도 있었다. 예를 들어 글의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것뿐 아니라 글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인상 깊은 대목을 제목으로 뽑기도 한다는 것.
하지만 노동자의 관점에서 '편집기자'를 보며 느낀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저자는 아직도 좋아서 편집을 한다고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항상 웃으며 보람을 느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목의 윤리'를 말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프리랜서 에디터 홍현진씨와의 인터뷰 중 나온 대목으로, '조회수의 유혹과 제목의 윤리 사이에서 고민될 때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는 물음에 저자가 대답하는 부분이다.
"선을 넘지 않으려 애써요. 문장을 써놓고 윤리적인 부분에서 고민이 되면 '이래도 되나' 시간을 두고 한 번 더 생각해요. 매체입장에서야 글을 잘 파는 것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지만 글은 상품이 아니니까. 특히나 기사라는 특성상 글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고려하면 더 그렇죠.
'조회수의 유혹과 제목의 윤리' 사이에서 고민될 때 저는 우선 독자를 떠올립니다. 독자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해요. 잘 모르겠으면 다른 편집기자의 생각을 듣기도 하고요. 가장 중요한 독자의 입장에서 선정적으로보인다거나 편파적, 일방적, 과장, 왜곡, 선동 등으로 읽힌다면 백만 명(웃음)이 읽을 만한 제목이라도 접게 되는 것 같아요." (224~225쪽)
사람들은 흔히들 '기자=기레기'라고 비하하기도 하는데, 어딘가에선 이렇게 고민하며 제목을 달고 편집하는 기자들도 있다. 편집기자에게 조회수는 중요하지만, 조회수만이 중요한 것은 아님을 드러내주는 부분이라 기억에 남는다.
결국, 편집기자의 역할은 글이라는 하나의 제품을 잘 다듬고 포장해서 더 많이 팔리게 하는 것이겠다. 무수히 많은 글들이 모두 저마다의 색깔과 문체를 갖고 있을 텐데, 개인의 제한적인 시선으로 빠른 시간 내에 '잘 팔리는' 제목을 뚝딱 뽑아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글 자체를 즐기고 음미하기보다는 시간에 쫓겨 읽기에 급급한 삶은 어떨까. 글을 쓰는 사람도, 제목을 뽑는 사람도 충분히 곱씹고 많이 읽어봐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글의 본질보다 '조회수와 노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의미 있는 제목보다는 그저 잘 팔리는 제목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업무 환경에서 오랫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
한편, 대놓고 제목에 손대지 말라는 시민기자의 요청은 까다롭게 느껴질 것 같다. 오래 고민해서 선정한 제목에 클레임이 들어오면 힘이 빠지고 난감하지 않을까? 많은 경우 글이 발행된 이후 제목 수정에 대한 글쓴이의 반응(피드백)이 대부분 없다고 한다.
따라서 편집기자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경우는 글이 포털 사이트에 노출되는 등 조회수 폭발을 경험하는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을 쓴 작가로부터의 진심 어린 감사보다는 알 수 없는 노출 알고리즘에 의한 클릭 횟수에 반응하는 삶은 뭐랄까, 조금은 무미건조하고 외로울 것 같다.
글이 탑(대문)에 배치되고, 독자의 후원으로 추가적인 수입을 얻고, 때로는 출간 제의를 받는 등 글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원글을 쓴 시민기자이다. 하지만 어떤 글도 편집기자의 수고와 노력을 거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이들은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시민기자들의 글을 더 빛나게 만든다. 마치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조연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기자들의 따끈따끈한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하나의 글이 발행되기까지 편집기자들의 두뇌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쉴 새 없이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범람하는 글의 홍수 속에서 매일 새로운 제목을 고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 쓰고 있는 이 기사의 제목 또한 어떻게 바뀔지 의문이지만, 글의 타이틀이 수정된다면 편집기자에게 감사의 쪽지를 한 번 남겨볼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