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같은 학종...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학생부종합전형(학종)도 수명을 다한 듯싶다. 취지는 나무랄 데 없었으나, 공교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다 온갖 편법이 난무하면서 배가 산으로 가버린 형국이 됐다. 이 와중에 '구관이 명관'이라며, 수능을 넘어 과거의 학력고사 체제로 회귀하자는 황당한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학종은 획일적인 문제 풀이 수업으로 황폐화한 교실을 살리겠다며 지난 2007년 입학사정관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다. 시행착오를 거쳐 2013년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고, 이젠 대입 전형의 대세가 됐다. 상당수의 대학이 입학 정원의 절반 이상을 학종으로 선발하고 있다.
서열화한 학벌 구조가 공고한 상황에서 학종의 한계는 분명했다. 학업 역량 외 다른 재능을 전형 자료로 활용하는 방식이 불공정 논란에 휩싸였고 여론의 집단적 반발을 불러왔다. 흥미와 적성, 잠재력 등 계량화할 수 없는 역량은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주관'은 '불공정'과 동의어로 여겨졌다.
어차피 전국의 모든 인문계고등학교가 진학 실적에 목매단 마당에 대입 전형의 변화는 학교의 '적응력'만 키운 꼴이 됐다. 학종이 수업 방식의 변화를 유도했을지언정 정작 아이들의 학교생활 만족도를 높이지는 못했다. 되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고통을 짊어지게 했다.
학종의 가장 중요한 평가 자료인 생활기록부의 내실을 위해 비교과 활동도 챙겨야 하고, 수능 준비에도 소홀할 수 없다. 내신 성적과 비교과 활동, 수능까지 모두 신경 써야 한다며, 아이들은 이를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 불렀다. 언제부턴가 '사람 잡는 학종'이라는 별명까지 생겨났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학종을 포기하지 못한다. 학교생활에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 악랄한 대입 전형이라고 볼멘소리하지만, 그렇다고 수능에 다걸기 할 순 없다고 토로한다. 내신을 포기하고 '정시 파이터'로 나서려면 최상위권이 태반인 'N수생'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곧, 아이들에게 학종은 '계륵' 신세다. 학종을 대비하자니 3년간의 고등학교 학창 시절 하루하루를 수험생으로 살아야 하고, 수능에 다걸기 하자니 위험천만한 도박이어서다. 아이들 대부분이 학종과 수능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생활을 하는 이유다.
의미 없어진 생기부, AI 안 쓰면 '뒤떨어진 사람'?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학종은 이미 도입 당시의 '신선함'을 잃었다. 교사들 사이에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통해 개별적 역량을 간파해 내려는 노력을 더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계량화된 내신 성적을 보완하고 돋보이게 하는 '추천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생활기록부의 '품질'은 내신 성적과 정비례한다. 대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비교과 활동도 열심히 참여하지만, 어쨌든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 등을 쓸 때 성적을 고려해야 뒤탈이 없다. 성적으로 줄 세우려는 관행이 뿌리 깊은 데다, 학종에 대한 여론의 불신이 워낙 큰 탓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조차 성적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하위권 아이들은 자신의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대학 진학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이 갈 수 있는 대학은 성적보다 등록금이 더 중요하다고 선선히 말한다.
교사들 사이에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극소수 교과별 '덕후'를 제외하곤 생활기록부 기록의 '마지노선'은 4등급 안팎이다. 곧, 상위 40% 이내에 들지 못하면, 교사들은 웬만해선 생활기록부 작성에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그래봐야 대입에 별 효용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수업 중 아이들이 활동한 내용을 적고 간단한 의견을 다는 정도로 대강 마무리된다. 하위권 아이들의 생활기록부에 상대적으로 오탈자가 많은 것도 그래서다. 그들 중엔 학년 진급 전 각자 자신의 생활기록부를 살펴보지조차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무색무취'한 생활기록부는 그렇게 양산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모든 학생의 생활기록부 기재가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교과별, 항목별로 특기할 만한 내용이 있으면 적었고, 딱히 없다면 공란으로 비워두었다. 그러다 보니 상위권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는 수십 쪽 분량의 소책자였고, 하위권은 고작 몇 쪽으로 끝난 경우가 허다했다.
생활기록부 '품질'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문제시되자, 교육 당국은 모든 학생, 모든 항목의 기재를 의무화했다. 이제 더는 생활기록부에 공란은 없다. 대신 아무런 의미 없는 형식적이고 구태의연한 글귀와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입에 발린 칭찬으로 분량을 채우고 있다.
급기야 생활기록부에 인공지능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인공지능의 다양한 기능 중에 가장 뛰어난 게 보고서 등 각종 문서를 작성하는 작문 능력이다. 질문 창에 활동 주제와 내용, 역량 등의 조건을 제시하면, 글자 수까지 맞춰서 깔끔한 문장으로 요약 정리해 준다.
물론, 문장 내 용어가 중첩되거나 일상에서 사용되지 않은 어색한 표현이 등장해 손을 봐야 할 때가 많다. 교사들은 다소 번거롭긴 해도 항목별로 수백 명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데는 이만한 도우미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상용화한 인공지능 중 유료 버전의 경우엔 따로 교정볼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평가가 인공지능에 맡겨진 셈인데도 별다른 죄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업무 경감 차원에서 첨단 기술을 활용했을 뿐이라는 시각이다. 실제로 교육청이 나서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관련 연수를 줄곧 진행하는 마당이니, 생활기록부 작성을 버거워하는 교사들만 탓하기도 뭣하다.
어차피 하위권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는 별 쓸모가 없다는 편견이 덧씌워지면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걸 당연시하는 분위기마저 읽힌다. 지금은 하위권에 한정되어 있지만, 인공지능의 작문 능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면 머지않아 모든 생활기록부를 인공지능이 작성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활동 내용을 분석해 파악한 아이들의 역량과 적성이 자신보다 더 정확한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건네는 교사도 있다. 몸을 부대끼며 함께 생활한 교사가 발견하지 못한 재능을 인공지능이 알려줬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인공지능이 교사다.
심지어 생활기록부 작성에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는 교사를 두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폄훼하는 분위기마저 있다. 조만간 교사 임용시험에 인공지능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을 테스트하게 될 거라고 확신하는 이도 있다. 생활기록부 작성뿐만 아니라 평가 영역조차 교사의 손을 떠나 인공지능이 담당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불공정한 전형으로 낙인찍혀 만신창이가 된 학종에 인공지능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인공지능이 작성한 생활기록부를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걸러내기도 힘들뿐더러 생활기록부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는 건 불가피하다. 교육처럼 마땅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인공지능에 일임하면, 끝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게 뻔하다.
인공지능은 학종뿐만 아니라 자칫 우리 공교육에 대한 신뢰 자체를 붕괴시킬 우려가 크다. '잘 쓰면 약이 되고, 못 쓰면 병이 된다'는 식으로 눙쳐서는 곤란하다. 최근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에서 보듯, 제어되지 않는 첨단 기술은 사회적 흉기일 뿐이다.
요컨대, 전국의 모든 학교와 학부모, 아이들이 명문대 진학에 목매다는 학벌 구조를 혁파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다. 온존한 학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대입 전형을 아무리 다양화하고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다 해도 온갖 편법만 난무하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