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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화성시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에서 화재폭발이 일어나 이주노동자 18명을 포함 23명의 노동자가 숨지고 8명이 다친 중대산업재해 참사가 발생했다. 사업장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참사의 원인은 재발방지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1:29: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이 보여주듯 1건의 중대재해 전 평상시 위험신호가 분명 있다. 누군가 우리에겐 329번의 중대재해를 막을 기회가 있다고 했다. 300번의 아차사고 때, 29번의 경미한 사고 때 작업자 실수가 아닌 시스템적인 근본 원인을 찾기 위한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원인조사와 대책 마련이 된다면 중대재해 참사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중대재해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번번이 놓쳐왔다. 산업재해가 나면 60% 이상이 사고의 책임을 사람에게 돌리고 근본 원인을 찾지 않았다. 이번 사고도 이주노동자들의 취급 부주의로 책임을 돌리려 했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분들과 대책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참사의 원인은 조금씩 밝혀지고 있고 대표이사를 포함한 책임자들은 결국 구속되었으니,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온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에서는 이번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의 여러 원인 중 화학물질 안전관리 측면에서 리튬전지를 포함한 전지 산업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화학물질 화재, 폭발 위험이 있는 사업장을 특별관리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공정안전관리(PSM) 제도에 전지산업을 추가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그 밖에 전지산업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이미 사고가 많았던 전지산업

우리나라 전지산업은 크게 화학전지와 물리전지로 나눠지며 화학전지는 이번 사고 제품인 일차전지를 포함하여 이차전지, 연료전지, 전기화학전지 등이 있다. 이번 사고로 안전상에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일차전지와 이차전지는 음극재, 양극재, 전해액, 분리막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음극과 양극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단락되게 되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하는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차전지 종류로는 망간/알칼리/수은/리튬전지 등이 있는데, AA, AAA라 불리는 건전지처럼 재사용이 불가능한 일회용으로 리모콘, 시계, 장난감 등 전력소모가 적은 기기에 사용된다. 이차전지는 납축/니켈/카드뮴/리튬이온전지 등으로 자동차 배터리처럼 충전하여 재사용이 가능한 형태로 휴대폰, 노트북, 전기차 등 전력소모가 큰 기기에 사용된다.

 일차, 이차 전지 비교
 일차, 이차 전지 비교
ⓒ 현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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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고기업인 아리셀에서 만든 전지는 일차 리튬전지로 군대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조사를 통해 아리셀에서 최근 3년간 4차례의 보관 중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기회를 외면한 기업에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미 군에서 일차 리튬전지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지난 10년간 92건의 사용, 보관 중 사고가 있었다는 점은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기업의 책임도 크지만, 사전 예방대책을 세우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이차전지의 위험성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에 일차, 이차 리튬전지를 제조하는 기업의 수는 많지 않다. 일차전지 10개 사업장, 이차전지 16개 사업장으로 전체 26개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이차 리튬전지 사업장인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노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완제품 보관 과정에서 사고가 다수 발생하고 불량품이나 보관 중 부품이 눌렸거나 분리막에 구멍이 나는 등 결함이 있으면 배터리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 불꽃이 되고 화재가 발생, 주변 온도가 올라가며 열폭주 현상이 발생, 대형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한다. 때문에 가급적 소량 및 분리 보관, 열 감지 센서 자동 소화약제 분사, 화재 발생 초기에 스프링쿨러 물 다량 분사하거나 수조로 불이 붙은 배터리를 통째로 냉각되도록 하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대기업이 이 정도의 방호설비를 갖추는 이유는 그만큼 화재, 폭발 위험성이 높다는 반증인 것이다.

또한, 전지의 위험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리튬 이외에 양극재로 사용되거나 사고 시 발생 가능한 염화티오닐, 불소, 불화수소, 염소, 염화수소, 이산화황 등은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사고대비물질 97종, 주민대피물질 16종에 속한다. 그만큼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장 밖 지역주민에게도 심각한 위험을 안길 수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이러한 전지산업의 전망이 매우 밝다는 것이다. 이차전지 시장 규모 전망치의 경우 2021년 461억 달러에서 2030년 3671억 달러로 8배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위험한 전지제조업체가 늘어나고 더 많은 전지가 생산된다는 것이다.

전지산업 화학물질 안전관리대책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로 리튬전지를 포함한 전지 산업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로 리튬전지를 포함한 전지 산업의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 백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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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 전지 산업에 사용되는 화학 물질에 대한 안전관리대책은 미흡하다. 이번 사고에서 보듯이 리튬 위험물질을 관리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안전보건규칙은 있으나마나였고 노동부의 지도 감독은 평상시 닿을 수 없었다. 위험물관리법, 소방법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다.
물론,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불법파견과 중소업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무대책이 주요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렇게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 대한 특별관리도 매우 시급하다.

전지산업 화학물질 안전관리대책을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지도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 정착이 요구되고 있는 '위험성평가'에서 화학물질분야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산업안전보건법 제44조 공정안전보고서 제출 대상 사업장에 전지 제조업을 추가하여 화재, 폭발 위험이 높은 업종을 관리하기 위한 공정안전관리(PSM)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는 원유정제, 석유정제물 재처리업, 석유화학계 또는 합성수지 및 기타 플라스틱/복합비료/농약/화약 및 불꽃제품 제조업 등 7개 업종을 그 대상으로 한다. 리튬전지 제조업에서도 공정안전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작성, 제출하게 하고 심사를 통해 현장 이행 확인 등의 절차를 진행함으로써 위험을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셋째, 산업안전보건법 제58조 유해한 작업의 도급 금지 대상 작업에 전지 제조작업을 추가하여 외주화 금지를 통해 위험도를 낮추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일 수 있다.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는 불법파견이나 이주노동자 임시 채용은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넷째, 리튬을 화학물질관리법 사고대비물질로 지정해서 사업주와 지자체장에 관리의무를 강화하는 것이다. 화학물질관리법 제23조는 사업주의 화학사고예방관리계획서 작성, 제출, 이행, 지역사회고지 등을 의무화함으로써 화학물질에 대한 사고를 사전예방하게 하고 있다. 또한, 같은 법 제23조의 4는 지자체장의 지역화학사고대응계획의 수립, 주민대피, 복구지원 등을 의무화함으로써 사고대응 수준을 높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의 편의만을 위한 정책방향에서 벗어나 제품안전기본법,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상 배터리 제품안전기준 및 관리체계를 점검함으로써 전지산업 전반에 대한 개선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최근 주차 중이던 전기자동차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차전지 배터리 화재사고로 수많은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지산업 전반에 대한 안전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현재순 님은 화섬식품노조 노안실장입니다.


#아리셀#전지산업#위험산업#화재참사#중대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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