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
"선출되거나 임명되지 않은 청와대 안의 유일한 존재. 법으로 정해진 권한과 책임도 없으면서 많은 공식 비공식적 역할을 수행하는 특별한 존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자신의 자서전에 쓴 '영부인'이란 존재에 관한 글이다. 말 그대로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않은 존재지만 공식, 비공식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자리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는 이 말이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 기관을 종횡무진 혼자 다니며 마치 대통령 같은 행보를 하고 다닌다.
'당부' '조치' '개선', 영부인의 언어인가
어제(10일) 김 여사는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특수구조단 뚝섬수난구조대, 한강경찰대 망원치안센터, 용강지구대를 연이어 방문했다.
소외된 계층이나 힘든 일을 하는 공무원들을 찾아 격려하는 일은 역대 모든 대통령의 부인들이 해왔고 또 해야 할 일로도 여겨져 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언행. 이날 적어도 대통령실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사진과 브리핑 자료만 보면 대통령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CCTV 관제실에 가서는 관제센터가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라며, "항상 주의를 기울여 선제적으로 대응해 줄 것"을 '당부'하는가 하면, 순찰인력과 함께 마포대교를 가보고는 "자살 예방을 위해 난간을 높이는 등 '조치'를 했지만, 현장에 와보니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며 "한강대교의 사례처럼 구조물 설치 등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당부', '조치', '개선'이 과연 영부인의 언어인가.
김 여사의 '대통령 행세'는 말 뿐만이 아니다.
대원들 앞에서 손짓을 하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지시하는 듯한 모습에서 영부인이 아닌 대통령의 모습을 본 것은 기자뿐일까.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자신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명품백 수수 논란과 관련 국민권익위, 검찰, 수사심의위의 '무혐의' 판정을 받자, 김 여사가 족쇄를 벗고 대외행보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여사는 과연 족쇄를 완전히 벗었다고 볼 수 있을까? 명품백 수수를 고발한 최재영 목사가 신청한 또 하나의 수사심의위가 여전히 남아 있고, 오늘(11일) 국회 법사위에서는 명품백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김 여사와 관련한 무려 8개 의혹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특검법안이 다시 통과됐다.
국가기관들, '김여사 무혐의'에 동원
대통령 남편의 거부권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운지 모르지만, 이걸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민주당 대변인은 "'자살 예방' 전도사가 되고 싶다는 김건희 여사님, 권익위 국장의 억울한 죽음부터 해결하시라"고 질타했다. 자신이 연루된 명품백 사건의 종결처리에 괴로워하던 권익위 국장의 안타까운 죽음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세간에는 명품백 사건 처리를 두고 모든 국가기관이 김 여사의 혐의를 씻어주는 '무료세탁소'가 됐다고 아우성이다. 당당하게 나와 특검을 받을 자신이 없으면 최소한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