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낮 경기도 가평군 소재 한 상가 앞에서 빈 병을 수집하던 A씨는 빈 병 주인과 사이에서 실랑이가 있었다. 정신·지적장애가 있던 A씨는 그 과정에서 병 하나를 깨뜨리기도 했다. A씨는 부모에게 연락을 했고, 아들의 연락을 받은 부모는 바로 현장에 가서 빈 병 주인에게 사과하고 깨진 유리를 청소했다. 다행히 빈 병 주인도 아무일 아니니 없던 일로 하자고 마무리 하던 차였다.
그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4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부모가 출동한 경찰관과 대화를 하던 중 응급입원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상황이 종료되지 않자 경찰은 A씨를 현장에서 뒷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지 5분 만에 A씨는 연행되었고, 결국 A씨는 경찰서에서 실신했다.
A씨는 10년 전 인공심장박동기를 이식 받았는데, 신장 160cm , 체중 60Kg으로 체격도 그리 크지 않았다. 부모가 현장에서 장애인복지카드를 보여주고 인공심장박동기를 이식 받은 환자라고 항변했지만 경찰은 대꾸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경찰은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어 어쩔 수 없었고 동행을 거부해 수갑을 채웠다고 해명했다.
경찰의 '발달장애인 과잉진압' 해마다 되풀이
경찰의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과잉진압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안산에서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 경찰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이상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뒷수갑으로 연행되었고, 2022년 평택에서는 반려견을 목욕 시키기 위해 준비중이던 지적장애인이 체포 이유, 변호인 선임권, 진술 거부권 등에 대한 고지를 받지 못한 채 수갑이 채워진 상태로 침대에 눕혀 목을 조르는 등의 폭행을 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12월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해 '평소 발달장애인 관련 직무교육이 진행됐고, 경찰관이 피해자의 행동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및 행동특성을 발견하고 꾸준히 대화를 시도했다면 뒷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발달장애인 대상 현장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여 배포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경찰청 매뉴얼 배포에도 발달장애인 인권침해 여전
경찰청에서는 2022년 10월 국가인권위 권고 이후, 발달장애인 현장 대응 매뉴얼을 전국 시도 경찰에 배포하였고, 이 매뉴얼에서도 '뒷수갑'은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라고 명시하였다는 것이 경찰청의 설명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신체의 자유와 존엄성을 침해하는 사건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A씨는 빈병 수집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지만 이미 서로간에 합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바닥에 가만히 앉아있던 피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면서 뒷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피해자가 스스로 따라가겠다고 하는 등 위험이 전혀 없는 상태임을 경찰관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은 과도하게 물리력을 행사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하였어야 할 뒷수갑을 택해 A씨를 연행했다.
무리한 체포로 발달장애인 결국 실신
이 과정에서 A씨가 심각한 충격으로 실신해 구급대원이 경찰서에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A씨 어머니는 경찰로부터 'A씨가 실신했으니 응급실로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았고, 경찰서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미란다원칙 고지에 대한 서류를 부모에게 내밀었다고 말했다. 서명을 요구하는 경찰관에게 A씨 부모는 서명을 거부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위는 법적 근거에 따라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가평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의 과도한 물리력 집행으로 장애인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였다는 것이 장애인 단체들의 주장이다.
헌법 제 12조 1항은 모든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위는 법적 근거에 따라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조 제2항에서도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범죄수사규칙 제125조 제1항도 '경찰관은 피의자를 체포, 구속할 때에는 필요한 한도를 넘어서 실력을 행사하는 일이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과잉금지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박민서 변호사(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익법률센터)는 경찰청 예규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경찰관은 물리력을 행사할 때 객관적 합리성의 원칙, 대상자 행위와 물리력 간 상응의 원칙, 위해 감소노력 우선의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며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경찰청 예규 유의사항을 살펴보면, 경찰관은 성별, 장애, 인종, 종교 및 성 정체성 등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차별적으로 물리력을 사용하여서는 아니 되고, 대상자의 신체 및 건강 상태, 장애유형 등을 고려하여 물리력을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건 경찰관의 행위는 과잉금지원칙에 반하는 과도한 물리력 행사로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이 사건에서 A씨는 체포 당시 길바닥에 앉아 핸드폰을 하고 있었고, 경찰관에게 '따라가겠습니다'고 수차례 말하는 것이 영상으로 확인된다. 피해자는 경찰관에게 저항하지도 않았고, 출동 당시 제 3자에게 위해를 가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4명은 이례적으로 A씨를 뒷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경찰청 앞에서 장애인 인권침해 규탄 및 재발방지 촉구 기자회견 열려
지난 11일에는 이 사건 경찰의 장애인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장애인 인권 단체들의 기자회견이 경찰청 앞에서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A씨 어머니는 발달장애인의 부모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장애인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는 것은 경찰청의 발달장애인 대응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아들에 대한 뒷수갑 체포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했지만 해당 경찰관은 '법대로 한 것 이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며 절규했다.
A씨 어머니는 경찰청장에게 전국 모든 경찰서에 발달장애인 대응 매뉴얼에 관한 철저한 교육을 해줄 것과 발달장애인의 인권이 무너지고 짓밟히는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경찰에서는 그동안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발달장애인인지 알지 못했다 거나 업무가 과중해서라거나 모든 대응 매뉴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항변해 왔다. 이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경찰은 정당한 대응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A씨 부모는 이 사건의 장애인 인권 침해와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와 경찰청에 각각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권위가 이번에는 경찰청에 어떤 권고를 내릴지, 경찰청에서는 되풀이 되고 있는 발달장애인 인권침해에 대한 실질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이건희 기자는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파이팅챈스 블로그에 함께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