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추청 옆에 붉은차나락 심던 날
경기도 지역에는 대부분 추청, 즉 아키바레라고 하는 품종의 벼를 기른다. 경기도 안성으로 귀농한 남편은 추청 옆에 붉은차나락을 심었다. 붉은차나락의 낱알은 하얗지만 낱알의 껍질과 잎이 검붉은 색이다. 연두빛이 고운 추청에 익숙한 농부에게 검붉은 색의 토종벼인 '붉은차나락'은 '병든 벼' 같다. 동네 농부들이 지나가다 걱정을 한다. 병이 들었나? 흑미인가? 게다가 자연농법을 하겠다고 우렁이를 기르니, 검붉은 벼 위에 분홍 우렁알이 붙어 있는 것은 꽤나 희한한 풍경이었다.
9월, 출렁이는 붉은 벼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한여름 같은 가을에 죽어가는 작물이 많다지만 벼는 잘 익고 있었다. 남편의 붉은차나락은 노란빛 추청 옆에서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며 알곡을 가득 맺었다. 튼튼한 낱알을 가득 맺은 붉은차나락이 무게를 못 이기고 쓰러졌다. 열을 지어 누워 있는 붉은차나락. 남편은 수확량이 많아 풍년이라고 기뻐한다. 동네형님이 자신이 기른 아키바레보다 남편의 붉은차나락이 두 배는 더 열매를 많이 맺은 것 같다고 부러워했다고 은근슬쩍 자랑스러워한다.
토종벼 3종 '붉은차나락, 북흑조, 쫄장병'
남편이 기르는 토종벼는 붉은차나락이 전부가 아니다. 북흑조와 쫄장병이라고 하는 토종벼도 기른다. 세 가지 토종벼 크기와 색은 제각각이다. 제일 작은 쫄장병, 검붉고 껍질이 거친 붉은차나락, 키가 크고 낱알 껍질이 검정색인 북흑조. 토종벼 세가지 종류를 섞어서 밥을 지으면 구수하다. 남편이 토종벼를 기르는 것은 구수한 맛 때문은 아니다. 우리 땅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토종벼를 다시 살려서 우리 땅의 쌀을 되살리고 싶은 작은 소망 때문이다.
10월, 토종벼 밥맛 보는 날을 기다리며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하니, 낱알이 무거워 몸을 누인 벼를 보고 이제 수확을 하느냐 물었다. 남편은 아직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아직 초록빛이 있으니 수확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남편만 귀농을 하고 나는 소위 주말 부부로 도시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쌀을 '쌀나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농사일에 무지하다. 그런 나도 남편이 땅을 사랑하고 토종작물을 정성스럽게 키우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땅과 땅의 작물을 귀히 여기게 된다. 빛과 물과 땅. 그리고 익어가는 벼가 주는 생명력과 풍요로움. 무더위가 한창인 가을에 맞는 추석이 낯설고 두렵지만 벼의 풍요를 보며 위안을 얻는다. 추석은 이렇게 땅 위에 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