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 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기자말] |
제22대 국회가 우여곡절 끝에 개원함에 따라 다시금 헌법개정(개헌)에 대한 논의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새 국회가 개원할 때마다, 그리고 국회의장이 바뀔 때마다 매번 반복되어온 분위기인지라 새삼스러운 면도 없지 않지만, 현재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와 양당 간 갈등 및 대립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헌법상 권력구조이든 선거제도이든 더 바람직한 방향이 있다면 이제는 바꿀 시점이 도래한 것도 부정하긴 힘들 듯하다. 심지어, 최근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함께 주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 중 정치갈등 지수가 가장 높은 사례로까지 조사되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으나, 제도적 측면에서 보자면, 필자가 그간 주목해왔듯 대통령제와 양당제 간 제도적 결합이란 조건이 유독 눈에 띈다. 공교롭게도, 현재 정치갈등 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로 퓨리서치센터에 의해 조사된 한국과 미국도 공히 대통령제와 사실상 양당제의 조합을 지닌 사례들이다.
사실, 과거에는 대통령제가 다당제보다는 양당제와 조합을 이룰 시 국정운영의 성공 및 민주주의의 수호에도 더 유리하다는 주장이 일반적이었다. 다당제는 여소야대를 만성화시킴으로써 행정부와 입법부 간 충돌의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과 미국의 사례를 보면, 오히려 대통령제와 양당제가 결합된 환경 속에서 여야 간 그리고 그 지지자들 간 정치적 갈등 및 대립이 극대화되는 양상이다.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상황 속에서 대통령제와 양당제의 조합이 양당으로 하여금 가장 중요한 정치적 전리품인 차기 대통령직을 놓고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게끔 유도하고, 이로 인해 다시금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무한정 그려지고 있는 탓이다. 그리고 현재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실현가능성과는 별개로, 이를 완화할 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한 이론적 해답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대통령제와 양당제 간 제도적 조합이 문제인 만큼, 둘 중 하나를 바꾸면 개선의 가능성도 보일 것이다. 먼저 개헌을 통해 현행 권력구조를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정부제(준대통령제) 등 아예 다른 권력구조로 전면 변경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양당제가 온존한다는 전제 하에 내각제로 개헌한다면, 여소야대 상황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영국식 내각제로 바뀌게 될 소지가 크다. 이러한 권력구조하에선 다수당이 입법 및 행정 권력을 모두 쥐고 한동안 주도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되며, 야당은 제도적 비토권을 지니지 못한 채 내각 또는 여당의 명백한 정치적·정책적 패착이 드러나거나 시대정신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까지 집권을 준비하는 위치에 주로 머물게 된다. 그런 만큼, 본 선택지는 정치적 교착을 완화하고 국정운영의 안정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하나의 교과서적 개헌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양당제가 온존한다는 전제 하에 이원정부제로 개헌할 시 여대야소일 때는 대통령제에 가깝게, 여소야대일 때는 내각제에 가깝게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져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라 정부형태 작동의 유연성이 제고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총리가 다른 정파에 속하게 되는, 이른바 '동거정부'(cohabitation)상의 이중적 행정권력이 관행으로 잘 안착되지 못할 시 국정의 마비나 교착은 대통령제 하에서의 분점정부 상황보다 더 심각해질 위험도 없지 않다.
사실 프랑스에서 2000년에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의회의 임기를 일치시키고자 했던 것도 결국은 이 '동거정부'의 출현을 억제할 목적 때문이었다. 이는 이원정부제의 원형적 모델로 가장 많이 거론되어온 경험적 사례에서조차 본 권력구조가 원활하게 작동되는 것이 매우 어려웠음을 시사한다.
어쨌든 현재 한국의 경우, 필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선호와 관계없이, 이렇듯 헌법상 권력구조를 전면적으로 변경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지하듯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로의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개헌을 통한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전환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개헌 논의가 부상할 때마다 가장 자주 언급되고 여론의 선호도 역시 높은 선택지가 바로 이것이다.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하자는 입장은 대체로, 대통령의 연임 또는 중임을 허용함으로써 책임성을 높이는 한편, 대통령의 인사권과 예산권은 축소하되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감시·감독권 등 견제력은 향상시키는 방안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에 관한 조정은 거의 생략한 채 대통령의 중임만을 허용하는 개헌안을 종종 제안하고 있기도 하나, 한국의 경우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들로 인해 개헌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측면이 작지 않은 만큼, 대통령의 권한을 그대로 놔둔 채 중임까지 허용하자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방향의 개헌안은 대통령직의 정치적 전리품으로서의 가치를 할인하고 입법부가 행정부를 실효적으로 감시·감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양자 간 수평적 책임성을 공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구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이는 대통령의 사정권력을 포함한 행정권의 무분별한 동원이나 사적 남용의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국회 또한, 특히 여소야대일 시, 특검법안이나 탄핵안의 발의 등 대결지향적 수단을 남발하기보다도 인사, 예산 등 보다 실질적인 내용의 측면에서 행정부를 효과적으로 감시·감독하게끔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처럼 4년 임기의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채택한다면, 재임 2년 차에 총선이 치러지게끔 설계함으로써 본 선거가 행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확보되게끔 할 필요성은 있겠다.
아울러, 이처럼 대통령제를 존치시키는 방향에서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또 하나의 제도적 개혁으로서 다당제로의 정당체계 개편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기한 대통령제와 양당제 간 조합에 따른 문제들이 계속 답습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총선 시 비례대표제 의석분의 확대, 대선의 결선투표제 도입 등 현재의 양당제를 다당제로 재편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비교적 이념적·정책적 노선이 분명한, 30석 내외의 의석을 보유한 2~3개의 군소정당의 창출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이념적·정책적 색깔이 구분되는 다당제 하에서는 대통령과 주요 야당 공히 정치적 다수파의 구축을 위해 군소정당과의 연합을 시도하게끔 유도될 것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정당들 사이의 정책 조정 및 타협에 기초한 정상적인 정치과정을 도출해낼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의 이론적 해답들에 비해 그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매우 안타깝게도, 그 실현가능성도 아직은 높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부디 제22대 국회에서는 생산적인 개헌 논의와 그 실천까지도 잘 이뤄져 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작성했습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와 슬로우뉴스에도 중복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