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오류동역에서 5분 거리, 서울시 구로구 오류시장은 1968년 건립돼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지닌 재래시장이다. 한때 점포수가 300개가 넘을 만큼 번성했으나 이제는 쇠락해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그저 쇠락한 것만이 아니다. 시장 안을 들어서 보면 구멍 뚫린 지붕에 곳곳이 파이고 일어난 바닥, 문 닫은 점포, 어지럽게 방치된 물건까지 보인다. 낙후되고 버려진 시장을 찾는 이는 이곳을 오래 지켜온 상인과 그 단골뿐이니, 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이곳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울 곳곳이 개발에 열을 올려온 가운데 구로구 중심에 선 오류시장이 낙후된 상태로 남아있는 건 왜일까. 오류시장의 오늘을 알아보는 작업은 곧 한국 부동산 개발 역사를, 그 부조리함을 이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섣부른 재개발 시도 실패와 투기자본의 진출, 상인들과의 갈등과 그 속에서 소실되는 공공성, 나아가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지자체며 언론, 시민사회까지가 오류시장이 오늘을 빚어낸 것이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욕망의 집적체다. 사람이 삶을 꾸려가는 공간에서 그치지 않고, 부를 창출하는 수단으로써 기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정도는 뒤따르게 마련이다. 투자란 말과 부동산이 늘 붙어 다니는 이유다. 누군가의 수 년, 심지어 일평생을 벌어야 할 만큼의 돈이 단 몇 년 만에 벌리고 스러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투자를 넘어 투기란 말이 부동산과 엮이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재개발과 투기자본, 그들이 기능하는 방식
재개발은 부동산 투자며 투기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낙후된 지역을 다시 정비해 도시의 환경을 개선하는 재개발이 일확천금, 막대한 시세차익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성공사례로 학습한 게 오늘의 시민들 아닌가. 건물과 부동산이 삶을 꾸려가는 공간이 아닌 투기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상황에서 필요보다 과잉된 재개발을 요구하는 건 차라리 자연스럽다.
과잉된 재개발은 한국사회 곳곳을 좀먹는다. 건설폐기물이 매립장을 가득 메우고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불어남에도 재개발 논의에서 폐기물 담론은 얼마 나오지 않는다. 자기자본 비율이 채 5%도 되지 않는 투기자본이 개발사업을 이끄는 비정상적 사례가 부동산PF의 전형으로 자리 잡고 마침내 한국 금융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개발이 모두를 이롭게 하리라는 신앙 아래 언제가 될지 기약 없는 재개발만을 기다리며 보수 없이 낙후되어가는 지역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재개발 담론에서 실제 생활하는 이들, 거주하고 영업하며 오가는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소외된다는 건 생각해봄직한 일이다. 투기자본이 개발사업에 참여해 가장 큰 과실을 취하는 사례가 거듭 반복된다는 점도 그렇다. 이 과정에서 위법과 탈법이 반복돼 왔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분쪼개기는 재개발과 관련한 대표적 탈법 사례다. 재개발조합을 설립할 때 소유자수를 늘려 필요한 의사정족수를 유리하게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흔히 쓰여 온 것이 지분쪼개기다. 도시정비법령 등 각종 재개발 규정을 우회하기 위하여 확보한 소유자의 지분을 인위적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지속적으로 지분쪼개기가 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해 왔고, 지난해 8월 대법원 또한 "늘어난 토지등소유자들은 동의정족수를 산정함에 있어서 전체 토지등소유자 및 동의자 수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확인한 바 있다.
오류시장 상인들은 시장 재개발 이권을 노리고 들어온 민간개발업체의 지분쪼개기 시도에 맞서 승소한 역사를 가졌다. 시작은 수십 년 전 시장을 휩쓸고 지나갔던 재개발 사기였다. 시장에 들어선 젊은이들이 일부 상인들과 친분을 쌓고 웬 서류에 인감도장을 받아갔다고 했다. 시장 재개발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대로 사라졌다.
쫓겨난 상인들, 지분쪼개기 나선 개발업체
시간이 흘러 2011년, 이번엔 한 개발업체가 나타났다. 58억 원에 이들 점포의 권리를 인수했다며 등장한 그들이 옛날 인감도장을 찍어준 상인들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해 시장에서 쫓아냈다고 했다. 2016년부터는 오류시장 자리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다. 당시 곳곳에서 일어나던 재개발 열풍 가운데서 주상복합 아파트는 큰 이문이 드는 개발사업으로 평가됐다.
그 과정에서 지분쪼개기가 등장했다. 서울시의 시장정비사업 규정에 따라 지분 소유자 총수의 60% 이상이 정비사업에 동의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업체는 시장 지분의 80%까지 확보했으나 소유자 수는 턱없이 적어 동의율을 채울 수가 없었다.
결국 규제를 우회하는 재개발 업계의 흔한 편법을 동원하게 된 것. 지분을 여러 사람 이름으로 나누는 편법에 맞서 상인들을 저항했다. 일평생 한 자리에서 쉼 없이 달려온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개발업자에게 제 터전을 빼앗길 수 없다고 했다. 오랜 법정 싸움 끝에 이들은 승소판결을 얻어냈다.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 활동가와 언론이 조력을 더했다.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의 풀뿌리 사업 지원 아래 숨 쉴 터전을 얻은 이들이었다. 이들이 지역 라디오와 독립언론, 또 다큐멘터리 감독과 활동가의 모습으로 오류시장을 지키려는 이들과 연대했다. <뉴스타파>의 배급지원작 다큐멘터리 <오류시장>과 같은 작품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승소는 일시적일 뿐이다. 오류시장은 여전히 낙후돼 있고 상가는 200여곳 점포 가운데 16곳만 정상 운영된다. 나머지 공실은 시장을 사람들이 드나들길 꺼리는 폐허처럼 보이게 한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 취임 뒤 깎여나갔다는 예산은 지역활동가의 숨통을 조여 왔다. 구로마을미디어를 비롯 오류시장의 현실에 관심을 가졌던 언론과 활동가는 모두 떠났다. 어느덧 오류시장과 관련한 깊이 있는 뉴스를 찾아볼 길 없다. 16곳 남은 상인들 또한 언제 더 떠나갈지 모른다.
낙후된 시장, 공공개발은 꿈일 뿐일까
오류시장은 업체 주도의 민간개발과 상인들이 원하는 공공개발을 두고 팽팽히 맞서왔다. 정당한 지분 소유자인 개발업체가 시장정비사업을 우회해 낙후된 지역을 세련되게 바꿔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저간의 깔린 사정을 모르는 시민들 가운데선 상인들이 보상을 위해 개발을 막고 지역을 낙후하게 한다는 비난까지 일고 있다. 지역 활동가들이 시장의 가치며 저간의 사연을 알리는 활동을 제기하던 시절엔 이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속속 답지하지 않았나.
지난 8월 찾은 오류시장 내 성원떡집 김영동, 서효숙 부부는 "시장이 그저 상인들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구로구의 오랜 자산이며, 이곳을 이용해온 손님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라는 것이다. 또 향후 공공개발을 통해 시장은 물론, 체육관, 문화센터, 주차장, 극장, 카페, 도서관 등이 입점한 주민들의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공공개발 논의는 오간 데 없고 시장이 더욱 낙후되고 주민들의 반대여론이 일기만 기다리는 듯한 행정에 분통이 터진다는 이야기가 한참이나 나온다. 시장 내 도로가 움푹 패여 구에 수차례나 민원을 넣었지만 해가 다 가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참다 못해 시에 민원을 넣은 뒤에야 바로 해결이 됐다는 이야기다.
전등이 꺼지고 물이 새도 상인 개개인이 해결할 뿐 근본적인 방법이 없다는 오류시장의 상황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중앙 언론은 구 차원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나마 있던 지역언론은 지원과 관심이 끊기며 하나둘 떠나갔다는 이야기 또한 아프게 다가온다.
이권과 혐오 넘어 지역과 사람을 바라봐야
오류시장은 서울의 재개발, 재정비 사업 가운데 공공개발의 여지를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지분만으로 개발의 주도권을 잡을 수 없도록 한 규제가 힘을 발하는 가운데, 자본과 그 자리에서 삶을 꾸려온 사람들이 팽팽하게 대립한다.재개발이 늦어지는 동안 낙후되는 지역의 문제가 서울 구로구 한 가운데서 극명히 보여지는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팔짱만 끼고 있는 지자체의 무능을 알도록 한다.
무엇보다 수많은 오점을 노정하는 작금의 재개발, 재정비 사업 문제를 깊이 있게 돌아보지 않는 언론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어느 언론도 지자체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고, 지역의 자산인 오류시장의 상황을 시민에게 전달하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 '권리자가 알아서 하겠지' 같은 무기력하고 무신경한 태도만이 팽배하게 전해진다. 그로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 욕심 차리려는 알박기가 아니겠냐는 비난이, 상인들 때문에 흉물스런 장소가 개발되지 않는다는 혐오가 일어난다. 이 모두가 한국사회의 일면이며 축소판이기도 하다는 걸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따금 나는 오류시장을 찾아 식사를 하고, 떡을 사고, 상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온다. 그건 이 땅에 그저 짓밟히고 물러나선 안 될 생각이며 태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작고 희미한 목소리를 누군가는 응원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