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3일 한국시간 오후 8시. 보건의료 연구그룹 Health Socialist Club(이하 HSC) 구성원 6명이 화상회의 화면 앞에 모여 앉았다. 7개월이 훌쩍 넘은 '의료 대란'을 돌아보며,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제안 가능한 대안을 내 보기 위해서였다.
HSC는 그동안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시리즈를 통해 2024년 한국 의료 현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복기해 왔다. 이를 통해 현재 한국에는 첨예하게 정치화되고 있는 문제와 별개로, 그동안 말해지지 않은 지역 주민의 고통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사태 해결 역시 '환자와 시민의 관점에서'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데서 출발한다고 제안했다. 더해, 2024년 한국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 의료 현장을 의사의 특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대신 다른 노동자, 시민과 함께 보다 나은 노동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출발해야 할까. 그 방향은 지금까지 정부나 의사 집단은 물론,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오리무중'인 상태로 놓여있다. 여기서는 '전공의 없는 한국 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기획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지난 6개월간 떠오른 여러 질문에 대해 '답'을 달아본다. 대담에 참여한 HSC 멤버들은 모두 국내외 연구기관에서 건강과 사회, 그리고 이를 논의하는 데 꼭 필요한 기초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담에는 모두 HSC 소속으로 참여했다.
[6개월과 의료 시스템] 응급실 때문에 주목 받지 못한 문제들
박서화 : 만사 제쳐놓고 급한 문제부터 말해보자. 언론에 등장하는 '응급실 붕괴'를 비롯해, 당장 환자들이 느끼는 불편이 심각하다. 우리는 '환자의 필요' 그리고 '시민의 필요'에 대해 계속 주장해 왔는데, 지금 어느 필요부터 손을 대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가.
김진환 : 우선 한국 전체 인구를 두고 보자.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분명히 있겠지만 응급의료를 이용하는 사람은 한달에 50만명에서 70만명 정도이니(관련자료:
김윤,"진료역량 최상 권역응급센터의 중증환자 전원이송 증가로 지역응급센터 부담 확대…중증환자 사망 증가"_240910), 데이터를 두고 보면 사실 소수의 문제다. 정치화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지 않으나, 지금 정치화되는 방식이 누구의 문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급한 문제? 한국 사회는 누구의 필요를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는 문제가 가장 급하다. 의료 이용의 문제에 있어서 응급실과 관련한 부분이 과잉 대표된다면, 지금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어느 필요부터 손을 댈 것인가? 이것은 전문가가 정의할 문제는 아니다. 정치화되지 않은 필요가 지금도 곳곳에 있다. 이 필요의 우선순위 자체를 시민이 정의해야 한다.
문주현 : 사실 HSC의 이번 기획 역시 '폭발의 지점'에만 주목한 감이 있다. '전공의 이탈'과 이로 인한 문제는 중요하지만, 그전에도 문제는 있었다. 이를테면 환자가 길에서 사망하거나, 구급차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사건 배후에는 기존부터 지역 일차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중소병원의 기능도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 있다.
주민들은 각자 알아서 큰 병원과 '명의'를 찾았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주민들의 행동을 '수도권 쏠림'이라고 비난했다. 그동안 지역에선 분만실을 운영하던 산부인과가 폐업했고, 의사들은 화상을 입거나 중증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를 전문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 보내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게 됐다. 그렇게 계속 문제가 쌓여왔다. 지금 대학병원에 몰입한 논의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병원에 전공의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김진환 : 당장 지역에서 차출돼 간 공중보건의사 문제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공중보건의사가 '빠져나갔다'는 사실 자체는 주목을 받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땠나? 이번 사태에서도 지역 문제는 서울과의 연계가 있는 부분만 딱 잘라 주목 받았다. 관심이 끊긴 상황에서 주민들은 계속 아프고 죽었다. 이 말은 누가 하나? 지금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잘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한빈 :의료 문제가 단순히 지도 펼쳐놓고 여기는 어떻네 하고 정의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노숙인 진료에 참여하면서 보면, 거동이 불편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병원에 오기 어려운, 높은 지대에 산다. 그러면 걷기도 힘든데 호흡기 문제까지 있어서 숨차고 힘든 상황에서 병원 가기도 어렵다. 교통 역시 불편하다. '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편에서 했던 말이 이런 이야기다. 이런 사정이 과연 주목받았나? 의료 담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필요'로 인정되었냐는 질문이다.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6개월과 노동] "의사 권력은 사태의 중심이다"
박서화 :그렇다면 내부의 생산 체계를 보자. 문주현 선생님이 중요한 이야기를 짚었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 역시 기존에 있던 문제들이고, 결국은 기존부터 시스템 차원의 연계와 협력이 부족했다고 반성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을 의료 생산 차원에서 평가해 보면 어떤가?
문주현 : 우리가 노동 이야기도 하지 않았나. 간단히 생각해 보면, 이번 전공의 이탈 사태 역시 모든 시스템이 뒷받침돼 있었더라면 노동자의 파업권 측면에서 넘어갈 문제여야 했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이나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을 생각해 보자. 파업을 앞두고도 대부분은 일종의 협의를 한다. 시민들이 덜 불편하도록 출퇴근 시간을 피해 시간대를 조율하거나 최소 근무 인원을 확보하고, 사전 공지도 열심히 한다. 그런데 의료체계에 이런 과정이 있었나? 앞서 시민의 필요에 대해 언급했는데, 당장 정치화되는 필요에만 집중하는 담론은 이 차원에서도 나쁘다.
문다슬 : 하지만 그런 조율과 협력이 보건의료계 안에서 가능한가? 글에서도 말했지만, 의료 노동 내부에는 촘촘한, 그리고 강력한 위계가 존재한다. 연계와 협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하는 일을 노동으로 바라보고, 동료 노동자와의 협력을 도모하는 일이 전제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의료는 둘째치고 의사의 일을 '노동'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어색하다. 그렇게 접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연계와 협력을 두고 보면 결국 누가 어떤 일을 어떻게 나눠서 수행할 것인지가 핵심 아닌가? 노동에 대해 연구해 온 입장에서 보면 의료에서 노동을 말하는게 마치 진공 상태에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본시장만 있고 노동시장은 없는 영역 같다는 의미다. 혹시 부정적인 내용의 댓글에 대해 하나 언급해도 되나 (일동 웃음).
박서화 : 어떤 댓글인가.
문다슬 : 사직서를 내고 하루 만에 떠나는 게 의사만의 특권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물류센터나 공장에서도 그런 일이 많다고 하면서…그런데 비교의 축 자체가 틀렸다. 물류 노동과 공장 노동은 불안정한 노동의 대표 예시 아닌가. 이 노동자들이 하루 만에 떠나는 데는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점이 있다. 일자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한 번에 빠져나가는 사례와는 다르다. 물류센터나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몇 명의 '일용' 노동자들이 그만둔다고 해서 당장 그 현장과 시민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지도 않는다. 노동시장에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뉴스에 대서특필 하지도 않는다. 더욱이 이들에게는 사직서를 낼 기회 자체가 없다. 애초에 고용관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당황스러운 댓글이었다.
박서화 : 의사가 아닌 사람은 의료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위계적인 시선이 학술장 내에서도 여전히 팽배한데.
문다슬 : 맞다. 그런데 우리는 보건의료 체계를 잘 보기 위해 반드시 권력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의사 권력 말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고민하고, 스스로 의심해 온 문제다. '
노동에 던지는 질문들'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렇게 노동 현장이 아수라장이 되고, 타 보건의료 직군이 환자의 고통을 감당하는 중심에 위계 문제가 있어서다.
이한빈 : 의사 사회 일각에서는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에 틀린 건 없다. 다만, 그렇게 본다면 정부든 고용주든 대체 인력을 넣고 싶을 때 대체 인력을 넣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의사들은 대체 인력 넣겠다고 하니 화내는 꼴 아닌가.
김진환 :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사실 집단적인 행동을 끌고 나가는 정치적 힘은 전공의가 아니라 의대생에서 오는 면이 크다. 통상적으로 노동자들이 지금 발생할 즉각적인 피해를 막으려고 집단행동을 한다는 점과 대조해 보면,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은 어떤 계급성을 보여준다.
박서화 : 그런 '계급성' 언급할 때 '히든 커리큘럼(참고자료: '
의사에 던지는 질문들') 이라는 의과대학 교육 문화 역시 빠트릴 수 없겠다.
김새롬 : 맞다. 이 '히든 커리큘럼'이라는 게 용어가 붙어서 그렇지 특별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 조종사나, 운동선수나, 특수한 직군은 모두 나름의 규범과 가치 설정 방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일 자체의 시급성이 있고, 교육과 훈련의 강도가 높은 데다가 대부분 의과대학에 입학하면 의사가 되기 때문에 더 압축적인 편이라고 본다.
아까 '의사 권력'에 대해 말했다. 우선 의료 현장 권력구조를 생각해 보자. 의사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을 때 환자나 간호사가 "선생님 그거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 있나? 있다고 해도 아주 소수일 테다. 위계적인 관계 속에서 일하고 훈련받으면서 과연 사회적 필요에 반응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은 길러지고 있나? 현재 한국에서 의사 전문가로 훈련받는 과정은 사회적 대화, 노출, 상호작용에 대한 경험을 포함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 양성 과정의 문제가 노동에까지 파급되는 셈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사만 사회적 책무를 방기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들이 사회적 책무에 복무하고 있나? 솔직히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다. 다만 의사는 하는 일의 특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간이 더 있는 것뿐이라고 본다.
[6개월을 거울삼아] 의료를 시민의 담론으로
박서화 : 하지만 선생님은 보건의료에서 시민참여 전문가 아닌가. 이런 상황 속에서 시민사회가 계급성을 뚫고, 보건의료 담론을 노동처럼 시민사회 담론으로 가지고 올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김새롬 : 그 측면에서는 현재 환자의 이해관계와 일반 시민의 이해관계가 같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환자단체는 보건의료 체계를 고쳐서 쓰는 것보다 당장 치료를 받는 문제가 급하다. 외국에서도 다수 연구된 바인데, 이렇게 급한 인구 집단은 의사 전문가들과 유사한 행태, 사고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관련자료:
Gender and Emotion in the Advocacy for Breast Cancer Informed Consent Legislation,
Tracking the rise of the "expert patient" in evolving paradigms of HIV care). 환자들이 의사 권력에 포획되었다기보다, 지식과 제도로서 의료의 힘이라는 게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닐까 싶다.
또, 의료를 말하는 시민사회 단체가 있어도 여전히 의사나 전문가들이 중심을 차지하다 보니, 정작 핵심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의료에 가까운 단체라면 의사들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문제를 말하기 어려울 테고, 지금껏 한국에서 진보적 의료 운동을 표방하는 단체들도 의사 권력은 부차적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의료자본' 문제에만 매달리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핵심을 빼놓고 있는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영리적이고 상품화된 의료체계가 문제라는 데 동의하지만, 한국에서 의료의 문제가 정말로 의료자본만의 문제이고 의사는 구조의 피해자일 뿐인가? 이런 점에서 지금의 활동들도 특정한 축의 갈등만을 동원하려는 관성을 벗어나야 한다.
문주현 : 시민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 층위도 언제나 어렵다. 정의만 살펴봐도 국가와 대비되는 사회를 이르는 말부터 여러 단체를 이르는 말까지 다양하지 않나. 다만 시민사회를 자처하는 보건의료 분야 비영리조직이라면, 그 규모와 조직이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서화 : 그런데 이 집단들이 왜 시민의 관점에서 담론을 주도할 수 없었는지도 들여다봐야 하지 않겠나.
문주현 :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의사, 약사, 간호사, 환자 모두 개성이 뚜렷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에서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을 수 있고, 건강보험이나 의약품에 전문화된 조직의 특수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새롬 : 전반적으로는 보건의료와 가까운 영역을 일컫는 좁은 시민사회 영역이건, 아니면 보다 포괄적인 의미이건, 한국 시민사회가 지금 의료와 의사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끌어낼 만한 역량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또 다른 하나, 정부가 이런저런 맥락에서 '시민 참여'에 대해 말하는데, 지금 정부가 시도하는 방식은 참여보다는 동원에 가깝다. 참여란 시민이 직접 전선을 만들어야 참여다.
박서화 : 사회적 통제라는 측면에서 담론장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이한빈 선생님은 학계와 보건의료계를 아우르는 날카로운 비평으로 곳곳에서 유명하다. 이번 사태 내내 '전문가' 집단의 비평에 대한 비평을 해 본다면.
이한빈 : 첫 번째, 자기가 속해있는 집단에 많이 휘둘린다. 두 번째, 스스로를 약자나 피해자로 규정한다.
박서화 : 도대체 왜들 이러나?
이한빈 : 대학은 교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병원도 의사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그 안에서 내부 구조를 조정하고 바꾸는 일은 상당한 품이 든다. 본인이 책임이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걸 다 회피하고 싶은 것 아니겠나. 반면 바깥을 향한 의견 개진은 상대적으로 쉽다. 사실 의사들이 하는 소리 중에는 좋은 말도 많다. 문제는 자신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조직에서는 그 말을 안 하고, 밖을 향해서만 한다는 데 있다. 한 가지 더 언급한다면, 한국은 제도를 악용해 이익을 취하는 문화가 있지 않나. 비판하려는 시스템 안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면 적극적인 비판이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박서화 : 그럼 이제 좀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해 보자. 이런 노동환경, 어떻게 바꿀 수 있나? 글에서 지적했듯이, 당장 의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수도 있는 건가?
문다슬 : 당장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의사노조를 일종의 산별노조로 따로 만드는 것이다. 기존 보건의료 노조 안에 의사노조를 만든다고 했을 때 당장 걱정이 되는 것은 병원 내 의사와 다른 노동자들 간에 맺고 있는 비공식적인 '고용' 관계다. 예컨대 병원 노동자 중 일부는 의사 개인이 실질적인 고용주인 경우도 있지 않나. 병원 내부에 복잡한 고용관계가 있고 하니, 이를 최대한 타파하자는 현실적 제안이다.
김진환 : 전공의 노조 통합조직은 있다. 다만 병원별로는 없다. 그런데 병원별로 노조를 만드는 작업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스스로 해야 한다.
김새롬 : 풀어야 할 교착이 적지 않겠다.
김진환 : 물론이다. 예를 들어 교수가 되고 싶어서 밉보이지 않으려고 한다든가. 수련이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고 싶다든가 하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노조는 만드는 게 쉬웠겠나? 어떤 갈등도 없이 '짠' 하고 생겨나는 노조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7개월] 실책 인정하고 시민의 입장에서 해법 찾아야
박서화 : 노동 측면에서는 그렇고, 그럼 정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김진환 : 적어도 현재 상태에서는 모든 의사를 대표하는 하나의 단체와 이 '개혁'을 두고 대화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인정하자. 의사단체들은 지금 다 쪼개져 있고 합쳐서 하나의 안을 가지고 오라고 요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필요한 단체,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서 개별적으로 협의하는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이 장면을 짜낼 수 있는 주체가 정부밖에 없다.
박서화 : '전체적인 그림'은 어떤 모양인가.
김진환 : 정부는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고, 동시에 이 갈등으로 인해 나타난 시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해야 한다. '의대 정원 증원'과 '의료 대란'문제가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문제인데, 마치 하나의 문제인 것처럼 다뤄지고 있지 않나. 두 가지 사안을 연계하면 증원과 관련한 혼란에 '대란' 문제가 끌려 들어간다. '의대 증원'과 '의료 대란'을 별개 사안으로 다뤄야 문제를 풀 수 있을 거라는 뜻이다.
박서화 : 구체적인 제안을 한다면.
김진환 : 우선 지금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인 응급실 문제를 보자. 응급환자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데 정부는 계속 시민들에게 "경증 환자는 응급실을 양보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관련자료:
정부 "응급실, 중증환자에 집중하도록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환자가 스스로 경증인지, 중증인지 미리 알 방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참고자료:
그걸 알면 환자가 아니라 의사였겠죠?). 응급환자를 분류해 보면, 경증이지만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도 있고, 경증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경증이 아닌 환자도 있다. 정부는 환자를 적절히 구분해 주고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을 안내하는 '성숙한 정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란'으로 야기된 시민의 불편을 해결하려면 정부가 의료를 '직접 운영'할 역량과 각오를 갖추라는 말이다.
수술이 연기되는 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환자들이 지금 개별적으로 병원에서 '의사가 없으니, 수술이 연기됐다'고 통보받고 있는데, 연기가 가능한 수술의 범위를 정부가 앞서 제시하고, 적절한 연기인지를 평가하고, 국민들에게 관련된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어야 한다. 여기서 정부라고 할 때는 지방정부도 당연히 포함된다. 오히려 지방정부야말로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이런 조정을 더 잘할 수 있는 주체다. 난이도가 더 높아지기는 했지만, 코로나19 범유행 때 했던 일을 지금 못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김새롬 : 사실 딜레마가 있는 말인데, 지금 다들 '중앙'만 보고 있다. 그런데 의사는 전문가주의적 규범에 따라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 그러니까 환자한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작건 크건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의료대란 관련 정치에서는 의사와 환자 모두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허공과 싸우고 있다. 만약에 이 사태 초반에 지역 환자들과 의사들이 얼굴을 보고 이 사태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우리 지역에서는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면? 사태가 지금과 다르게 흘러갔을 거라고 본다. 지역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면, 지역 자체적으로 의사들과 환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서로 요구하고 대책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나.
김진환 : 그런 의미에서 지역 주민 그리고 시민에게도 공간이 있다는 점을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다만 염두에 둘 점은 적어도 지금의 국면에서 시민은 '책임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시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자. 내가 갖고 있는 고통을 해결해 내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시민의 힘이다. 정부건 의사건 시민이 생각하기에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주체에게 요구하라. 그래야 바뀐다.
박서화 : 마지막으로 기획을 마무리하며 한마디씩 해 보자.
문주현 : 부부 간의 갈등을 다루는 TV 프로그램 보면 하는 말 있지 않나. "조정 기간을 드리겠습니다. 4주 뒤에 뵙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다. 정부나 의사나 서로 상대에게 할 말은 다 하지 않았나? 이제 마무리하자. 잘 마무리하는 것이 양쪽 모두에 이롭다고 본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주체는 사람이다. 이번 사태 보면서 "저게 가능했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 많았다. 이번 사태도 그렇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다.
문다슬 : 지금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고민 가운데 하나가 "전공의가 노동자냐 피교육자냐" 아니겠나. 그런데 교육의 목적 역시 일부는 사회와 생산 체계에 나가서 무언가를 하는 데 있고 특히 의사 교육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 교육의 목적 역시 노동일 수밖에 없다. 지금 각계각층에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져도 마땅한 대답이 안 나오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이 부분을 오랫동안 무시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아직 의료 노동을 너무나 모른다. 6개월을 거울 삼아 답을 찾아가야 한다.
이한빈 : 아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전문가들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런 수단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더라. 진정성 있는 고민을 글로 잘 담기 위해 노력하겠다. 사회적 책임을 잘 지고 나가려 한다.
김진환 : 사태를 보면서 무력감이 많이 들었다. 한쪽에서는 정부, 다른 한쪽에서는 의사가 잘못했다고 주장하는데 시민의 공간은 너무 좁았다. 그 와중에 각자가 처한 사정에 따라서 체감하는 의료의 형태가 다르니, 의료의 문제를 시민이 '내 문제'라고 생각하기가 아주 어렵더라. 그렇다면 시민은 뭘 해야 하나. 시민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주체가 정부고 전문가들이다. 시민은 요구를 많이 할수록 좋다. 요구가 크게 있으면 정부고 전문가고 뭔가를 해낼 수밖에 없다.
김새롬 : 사회적인 문제에 언제나 나의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짜증 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공론장에서 냉소와 조롱은 멋있지 않다. 체념과 냉소를 떨치고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박서화 : 마무리해 보자. HSC를 시작하면서 했던 말 기억 나나. 우리는 코로나19 시기 한국 사회를 겪으며 "사회 안에서 터져 나오는 여러 문제들을 권력과 정치적 역학관계 안에서 조망하지 못한 연구자들, 사회 문제에 대응하는 지식생산의 책무와 전파에 게을렀던 학계. 현실의 고통을 다루기 위한 지식을 담당했어야 할 학술장 역시 어쩌면 이 참담한 공론장에 기여(관련자료:
HSC를 시작합니다)"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이 공동체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사실 이번 사태에서도 학술공동체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이 사태가 감염병이었다면 감염의 전파와 예방이라는 주제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왔을 테다. 그러나 지금,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 고통이 커져 가는 상황인데도 누구 하나 시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협력과 중재의 좁은 길을 열자는 의견을 자신 있게 내놓지 못한다.
지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 감사하게도 혹은 특권적이게도 지식을 가지고 노동하는 위치에 서 있지만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식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되는 순간이 많다. 지식을 사람의 삶을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면, 시민의 의문이 커질 때 그 질문을 사회적으로 구성하고 대안을 써 내는 일 역시 중요한 책임이 아닐까. 또, 글 쓰는 그룹으로서 2024년 현재 한국에서 터져나오는 시민의 고통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다면 존재의 의의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족함이 있었으나 우리의 최선을, 힘을 모아 해낸 것에 대해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 필자 소개: Health Socialist Club은 사회 정의와 형평의 관점에서 인구 집단 건강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 주제와 내용을 일반 시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게끔 글을 쓰고 자료를 만드는 연구모임입니다. Manager 김새롬/ Member 김진환·문다슬·문주현·박서화·이한빈. HSC의 블로그(https://www.notion.so/healthsocialist/Health-Socialist-Club-4f293bb8aab34b3c91dfed0ddd7f7ba3)에서 더 많은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공의 없는 한국 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들
(2)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3)
의료체계에 던지는 질문들
(4)
노동에 던지는 질문들
(5)
의사에 던지는 질문들
(6) 7개월, 질문 위에 서서 덧붙이는 글 |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을 마치며
시민의 고통 앞에서 7개월을 돌아봅니다. 말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점점 커지고, 그동안 대두된 문제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 시민이 말하고 설 공간은 너무나 좁았습니다. 시민을 뒷받침해야 했을 전문가, 그리고 정치권을 포함한 대표자들의 역할은 시민의 고통 앞에서 그 존재감이 미미했습니다. 해결에 대한 논의 대신, 수많은 냉소와 분열이 우리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말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희망은 냉소하지 않는 데서, 서로를 끝없이 설득하는 데서, 스스로 밟고 선 땅을 인지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데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냉소하지 말자, 서로를 설득하기를 포기하지 말자, 어떤 침묵은 극도의 무책임이다. 좁은 길이라도 함께 열어, 의료를 시민사회의 한 울 안에 품고 가자. Health Socialist Club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시리즈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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