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서울 한복판에서 '공동육아'라는 이름으로, 서로 돌봄하는 어린이집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참나무 어린이집입니다. 참나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키운 부모들이 공동육아의 살이와 공동체의 복원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이 글은 참나무어린이집의 부모 조합원, 무지개가 쓴 글입니다. 첫째아이는 참나무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도토리마을방과후에 다니며, 지금은 둘째아이를 참나무에서 키우고 있는 4세방 엄마 무지개(김규리)입니다.[기자말] |
"학원에는 안 다녀요."
올해 초등학교 입학한 첫째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이 아닌 마을방과후에 갑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4살부터 7살까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는 아직 한 번도 학원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직장동료나 친구들이 "아이는 오후에 학원 뭐 다녀?" "운동이나 공부 뭐 시켜?"하고 물을 때면 난감합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마을방과후'가 무엇인지, 왜 우리 가족과 아이들에게 좋은 곳인지 잘 설명하려 애써보지만, 늘 쉽지 않습니다.
학원 대신 가는 곳... 내 아이가 진짜 배웠으면 하는 것들
저희 집 두 아이는 부모가 일하는 동안 공부나 운동을 배우러 학원에 가지 않는 대신 '터전'에서 생활합니다.
'터전'은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초등 마을방과후를 부르는 말입니다. 8살 첫째 아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마을방과후에, 4살 둘째 아이도 형을 따라 3살부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어른(교사)들의 보살핌 안에서 친구들, 형동생들과 함께 놀고 생활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건강한 밥과 간식을 먹고, 터전 근처 산으로, 강으로, 놀이터로 또 동네 골목골목 나들이를 다니며 재미있는 놀이도 실컷 합니다.
처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첫째 아이를 보내려고 할 때 '놀면서 자라고 살면서 배우는'이라는 공동육아 철학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이들의 자발적 놀이와 생활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고, '독립적이면서 관계적인 어린이'로 자라도록 돕겠다는 내용이 마음 깊이 공감되었죠.
"공동육아의 어린이 상은 '독립적이면서 관계적인 어린이'라 할 수 있다. 독립적이면서 관계적이라는 것은 사회 속에서 개인이 존중받으며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과 사회가 만날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이 '매일'의 삶 속에 담겨야 한다." - <공동육아, 더불어 삶>,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2020
"엄마, 나 할 수 있어."
며칠 전, 4살 둘째 아이가 혼자서 점퍼 입는 법을 하모니(선생님)에게 배웠다며 시범을 보여줬습니다.
점퍼를 방바닥에 펼쳐 놓고 팔을 먼저 끼운 다음 점퍼를 머리 위로 휙 넘겨 입습니다. '혼자 점퍼입기'를 해내고 마치 영웅이 된 듯 웃는 표정의 아이를 보니 공동육아를 시작하게 했던 철학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혼자서 옷을 입고 벗는 법, 벗은 옷을 접어 정리하는 법, 낮잠 이불을 펴고 개는 법, 스스로 밥을 먹는 법, 다 먹은 밥상을 정리하는 법, 제철 채소와 새로운 반찬을 골고루 맛보는 법, 놀고 난 장난감을 정리하는 법 등 터전 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해나가는 것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선생님들은 아이가 해낼 수 있도록 끝까지 알려주고 기회를 주며, 힘들 때는 친구나 선생님에게 도와달라 말할 수 있는 법도 알려줍니다. 오히려 집에서 급한 마음에 엄마인 제가 먼저 다 해줘버리는 것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혼자 하는 힘이 생긴 아이들은 동생들을 돕는 역할도 맡습니다. 나들이 나갈 때면 6세, 7세 아이들이 동생들과 손을 잡고 나섭니다. 작은 아이가 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럽습니다.
첫째 아이가 7살이 되었을 때, 요일을 정해 동생들 점심 밥상을 닦고 숟가락을 놓아주는 활동을 하는 걸 보았습니다.
집에서는 볼 수 없던, 아이의 의젓한 모습에 감격하며 '이런 게 생활문화교육이구나. 아이가 진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부모도 처음 해보는 게 많다
터전에서는 작은 텃밭 농사도 짓습니다. 공동육아의 중요한 교육과정 중 하나가 생태교육이기 때문입니다. 채소 편식이 심했던 첫째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난생처음 먹어본 채소가 많았습니다.
어떤 해에는 모내기를 하고 벼에서 수확한 쌀로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몇 알 안되는 쌀알이었지만 아이들은 밥상에 음식이 오기까지 자연의 순환과 기다림을 배우고 느꼈을 것입니다.
아이는 절기마다 농사 때 했던 일들을 집에 와 얘기해 주었습니다. 나무젓가락으로 배추벌레를 잡았다고도 하고, 수확한 고추를 맛보았는데 "많이는 안 맵고 쪼끔 매웠다"라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죠.
처음에는 흙을 만지는 것도 싫어했던 아이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보도블록에서 지렁이를 발견하더니, 얘가 말라죽기 전에 흙 속에 데려다 주자며 덥석 지렁이를 잡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부모인 저도 이곳에서 처음 해본 게 많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김장철이 되면 부모들이 모두 모여 아이들이 먹을 김치를 담급니다. 유기농 배추, 무, 고춧가루 등을 준비해 배추 절이기부터 양념 만들기, 버무리기까지 그 옛날 동네 김장날처럼 함께 합니다.
김장을 마치고 나면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나누어 먹습니다. 어린이집에 와서 처음 김장을 해보는 부모들이 태반입니다.
작년에는 장 담그기도 배웠습니다. 아이들도 하는데 부모인 우리가 몰라서 되겠냐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도전했습니다. 태어나 된장, 간장을 만들어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지만, 이제는 '직접 장도 담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오늘도 아이를 등원시키고 어린이집 옥상에 있는 장독대를 살펴보았습니다. 된장에 생긴 곰팡이를 걷어내고 장 담그기 모임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기니 아마(어린이집 엄마아빠)들이 칭찬을 보내왔습니다.
모든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매일 '바깥나들이'를 나가는 것이 중요한 하루 일과입니다. 첫째 아이가 졸업하고, 지금은 둘째 아이가 다니는 참나무어린이집에는 새터산과 홍제천이 가까이 있어 정말 소중한 나들이 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동네 곳곳에 놀이터도 많습니다. 가끔은 동네 책방에도 놀러 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집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집엔 어떤 꽃과 나무가 자라는지 구경도 합니다. 월드컵공원이나 난지천공원 등으로 긴 나들이를 가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매일 나들이를 나가 세시 절기, 날씨,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느낍니다. 그리고 주변의 나무, 꽃, 열매, 곤충들을 보며 인간과 공생하는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동네 곳곳을 다니며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의 관계성도 익힙니다.
첫째 아이가 5살일 때, 아이는 "엄마, 아빠랑 같이 새터산에 가보고 싶어"라며 어느 주말, 저희 부부를 나들이 장소에 초대했습니다.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가던 나들이 장소를 엄마, 아빠와 같이 가보는 특별한 경험에 아이는 무척 신이 났습니다.
아이는 새터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나들이에서 알게 된 많은 것들을 저희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건 형아들이 만든 나무집이야."
"이 나무에는 선생님이 봐주면 올라가 볼 수도 있어."
"새터산에는 소나무가 많이 있어."
"엄마, 이건 까마중 열매야. 그리고 이건 회양목이야. 우리는 부엉이 열매라고 불러. 팔에 찌르면 조금 따가운데 진짜 그런지 해볼래?"
등하원하며 지나는 홍제천변이나 동네 골목에 핀 꽃들을 보면 엄마도 얼른 보라며 아이들이 저를 부릅니다. 아이들이 길가의 꽃과 나무 이름을 알려준 덕분에 저도 분주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세상의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경이로움을 마음껏 표현하는 건 아이들만이 가진 큰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그 재능을 아낌없이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싶습니다.
어린이집 떠나기 싫어하는 둘째 아이
오후 6시, 둘째 아이를 데리러 가면 열심히 놀고 있던 아이는 엄마를 보고 놀라며 일단 모른체합니다. 제가 "집에 가자~" 하면 기다렸다는 듯 아이는 "엄마, 나 아직 덜 놀았어. 10분만 더 놀고 갈래"를 외칩니다.
집에 빨리 가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싶은 엄마 마음도 모르고 말이죠. 그렇지만 저랑 똑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을 한 채 계단에 앉아있는 아마들을 발견합니다. 반가움과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웃음이 나옵니다.
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안에서 마음껏 놀며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자유로운 놀이의 힘을 느꼈습니다. 육아 전문가들이 말하는 영유아기에 필요한 발달이 놀이에서 길러질 수 있다는 것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죠.
아이들은 공동체 생활 안에서 따로 또 같이 노는 방법을 자연스레 경험합니다. 특히 같이 재밌게 놀기 위해서는 다른 친구의 말도 귀담아듣고, 놀잇감을 함께 나눠써야 하며,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걸 익힙니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돕는 교사가 함께 하는 놀이 안에서, 아이들은 나의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도 합니다. "나는 00가 불편해", "사과해 줘"와 같이 부정적인 마음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미안해", "괜찮아", "고마워", "같이 놀자" 등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상황을 풀어나가면서 의사소통 기술과 사회성도 기릅니다.
교사는 놀이를 제안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이들의 주도적인 놀이를 지켜봐 주고 필요에 따라 개입하여 확장해 줍니다. 혼자만의 놀이에 몰두한 아이의 영역과 흐름을 지켜주려 애쓰시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 하는 새로운 놀이가 어려워 피하기도 하지만, 또 어깨너머로 친구나 언니, 오빠들을 관찰하고 익히며 차근차근 도전하고 시도합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연습을 통해 새로운 놀이를 익혔을 때, 아이는 스스로 성취감을 만끽하며 한 뼘 자랍니다. 옆에서 응원하고 지켜보던 교사와 부모는 아이의 성장에 크게 축하를 보냅니다.
아이, 교사, 부모가 모두 행복할 순 없을까
얼마 전, 7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대화를 하던 중 지금 자기 아이가 태권도, 수영, 미술 등 종일 '노는 학원'만 다닌다며 영어나 수학 학원 중 뭐부터 보낼지 고민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차마 앞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게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영유아기에 마음껏 뛰어놀며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면 좋겠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공동체 안에서 질서와 규칙을 익히고,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면 좋겠습니다.
혼자 열심히 하면 되는 공부는 학령기에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공동체 안에서 배울 수 있는 사회성, 공감 능력, 소통 능력은 아이가 자라고 나면 훨씬 배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함께하는 부모들, 교사들과 서로 많이 만나고 이야기 나누며, 안전하고 안심되는 관계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부모들과 선생님들이 저희 집 아이들을 가까이 지켜봐 주면서 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줍니다.
저 역시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보고 대합니다. 아이들도 공동체 안에서 매일 만나는 저, 무지개를 믿고 편안하게 대해줍니다.
공동체가 사라져가는 고립의 시대에서 저희 가족은 공동체 안에서 부대끼며 삽니다. 저는 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하는 아이들이, 부모들이, 교사들이 서로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해서 더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더 많은 아이들, 교사들, 부모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놀면서 자라고 살면서 배운다'는 걸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부모들이 불안해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부디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와글와글 공동육아' 연재 읽기]
①아버지와 다르게 살려고 여길 선택했습니다
https://omn.kr/2aaoc
②아이들 안 반기는 세상, 근데 여기는 좀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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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우리 망했나 봐"... 손잡고 울먹이던 부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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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졸업식날 아이보다 부모들이 펑펑 우는 곳,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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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아닌 '나'로 육아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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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첫째 아이가 졸업하고 둘째 아이가 다니고 있는 참나무어린이집이 오는 10월 19일(토)에 2025년 신입생 등원설명회가 열립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문의와 참여를 기다립니다. http://chamnamo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