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lahu Akbar (알라는 위대하다) "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에서 시작된 물결은 페르시아와 비잔틴제국을 벌벌 떨게 만들었고, 중동 전체 구석까지 이슬람의 깃발이 없는 곳이 없었다. 고대부터 로마제국까지 늘 문명의 최전선에 있던 이집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642년 이슬람제국의 장수 아므르는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로마제국의 요새였던 바빌론을 함락하기 직전이었다. 그는 바빌론을 함락하고 나서 부대가 머물던 주둔지에 도시를 건설했다. 푸스타트(천막)이라 불리던 이곳은 오늘날 이집트의 수도이자 아랍의 최대도시인 카이로의 유래가 되었다.
이때부터 이집트를 거쳐간 수많은 왕조와 지배자들은 한 번도 카이로를 그 중심에서 빼놓은 적이 없었다. '1000개의 첨탑을 가진 도시'라 불린 이곳은 현재도 골목마다 세월의 때가 묻은 사원을 도처에서 만나고 짐을 실은 당나귀가 길을 건너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붙잡고 상인들의 흥정이 치열하게 진행된다.
일명 이슬라믹 카이로라 불리는 이 구역의 여행은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시타델에서 시작된다. 시타델은 말 그대로 성채라는 뜻으로 아랍어로는 알 깔리아라 불렸다.
튀니지에서 시아파의 기치를 들고 이집트를 정복한 파티마 왕조는 오랜 세월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셀주크 제국의 침략, 내분 등으로 분열을 거듭했고 지도자 칼리프는 허울뿐인 자리로 전락했다.
이 틈을 노려 이집트로 들어온 살라딘에 의해 왕조는 종말을 고했고, 그는 십자군의 공세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데 성공해서 영웅으로 사방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가 이집트와 시리아를 아우르는 왕조를 세우고 본거지로 성을 쌓으니 그곳이 오늘날까지 카이로의 랜드마크 격인 시타델이다.
살라딘의 성채에 오르면 황톳빛 가득한 사원들과 첨탑들이 저마다 자웅을 뽐내듯이 늘어서 있고 굽이치는 나일강의 풍경과 함께 저 멀리 피라미드가 희미하게 보인다. 수천 년 동안 점층이 쌓은 문명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다가오는 순간이다.
언덕 위에 10미터 높이의 성벽을 쌓아 만들어진 시타델은 19세기까지 줄곧 이집트 정치가 행해지는 중심공간이었기에 다양한 시대의 문화유산이 고루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타델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랜드마크가 있으니 무함마드알리 모스크다.
이집트의 통치자 무함마드알리가 세운 이 모스크는 화려한 실내장식, 샹들리에가 아름답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앞에 자리한 대형 시계탑은 12년 전 알리왕이 선물한 오벨리스크에 대한 보답으로 프랑스의 루이 필립왕이 선물했다.
그는 이집트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며 프랑스로 유학생을 보내며 자주국방을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성과도 있어서 일본 등 후발주자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식민화는 피할 수 없었다. 무리한 수에즈운하 건설로 인한 차관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한때는 권력자들의 엄중한 요새였지만 현재는 군사박물관, 경찰박물관 등 카이로 시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와 있다.
눈망울 또렷한 소와 양들이 줄지어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
매년 6월 이드 알 아드하가 열릴 때마다 이슬라믹 카이로 일대는 거대한 도축장으로 변한다. 아브라함이 아들대신 염소를 제물로 바친 것에서 유래한 이 희생제는 가난한 사람에게 고기를 베푸는 자선의식 중 하나다.
하지만 눈망울이 또렷한 소와 양들이 줄지어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 애처로워 선뜻 눈을 똑바로 뜨고 길을 건너기가 부담스러웠다.
축제가 끝나고 방문한 8월의 이슬라믹 카이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1382년 생긴 이래 1만 2천여 개의 점포가 아직도 번성하고 있는 칸 엘 칼릴리시장에 가면 그야말로 카이로의 활력이 생동감 넘치듯 이뤄진다.
금은방, 향신료, 보석상, 향수를 파는 가게는 물론 관광객의 지갑을 노리는 기념품까지 상인들은 손님들과 전쟁 같은 흥정을 벌이며 시장의 하루는 바쁘게 움직인다.
이 시장은 중세시대부터 그 정취를 유지하고 있는 성곽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800미터의 성벽과 문이 도시의 경계를 가르고 있고 술탄들이 앞다투어 건설한 마드라사(학교)와 사원이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듯 서 있다.
정문이라 할 수 있는 남문, 주웨일라 문은 처형한 죄인의 목이 수없이 걸렸고,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한 맘루크 왕조의 마지막 술탄도 여기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입장료를 내고 이 성문에 오르면 미로 같은 시장의 속내가 환하게 드러난다. 칸 엘 칼릴리 시장이 번성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동방에서 오는 향신료가 이곳으로 모이고 베네치아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서방으로 뻗어나간 중개지였기 때문이다.
향신료의 독점권을 쥐고 오랜 기간 폭리를 취해왔기에 오히려 유럽사람들의 신대륙 개척이 가속화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지런히 놓인 램프를 바라보며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누려본다.
주웨일라 문에서 북문인 푸투흐 문까지는 약 2.5km 정도로 칼라운 마드라사와 사원 등 핵심 건축물들을 곳곳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가끔, 상인들의 극성에 지칠 때는 잠시 카페에 들러 휴식을 취하며 조용히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다. 이집트에서 파라오와 피라미드에 지칠 무렵 이슬라믹 카이로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