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바다 사이에 모래로 이루어진 길이 형성되었다. 산과 들판에서 흘러내린 모래알들이 모여 언덕을 이루었고, 이 길은 바다와 강을 연결하면서도 동시에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원래 물과 모래는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가야 하지만, 모래언덕이 그 흐름을 막고 있다.
지난 18일 방문한 하천변에서 갈매기는 바다를 바라보고 한가로이 노닐고 가마우지는 강가에서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물줄기를 따라 오가는 바다생물과 민물고기들은 설 자리를 내주고 멀리 달아났다. 하천 물속은 썩어가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30여 년 전 은어를 잡고 천렵(냇물에서 고기를 잡는 것)을 했던 추억이 서려 있는 장소지만, 이제 그 모습은 상상 속에만 남아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에 위치한 연곡천 이야기다.
바다생물의 고향
강릉 연곡천은 오대산과 소금강 수림 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1급수를 유지해 토속 어종인 뱀장어, 메기, 붕어, 피라미가 자생하는 곳이다. 자신이 태어난 강의 물 냄새를 맡고 찾는 연어, 은어, 황어의 고향이기도 하다.
동해로 흐르는 강이나 냇가에만 산다는 꾹저구(망둑엇과에 속한 민물고기)가 많아 지금도 옛날의 향수를 이어받은 전문 음식점들이 연곡 읍내에 있다.
모래 길이 막힌 하천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은 고성의 명파천에서 삼척의 가곡천 지류까지 산과 계곡에서 흘러온 모래가 바다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에서 내려온 토사가 파도에 의해 해안선을 따라 긴 모래사장을 형성한다. 그러나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모래가 하천 하류에서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해, 시간이 지나면 거대한 모래언덕이 형성된다. 이는 하천과 바다의 상호작용이 차단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연곡천은 오대산과 소금강 지류에서 흘러온 모래가 모이는 하천이다. 원래 이 모래는 바다로 흘러가 해변을 형성해야 하지만, 그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모래 공급이 차단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하류에 퇴적된 모래의 양은 약 20만㎥로 추정된다.
해안침식을 연구하는 장성렬 박사는 "연곡천 하류에 쌓인 모래는 15톤 트럭 3만4000대 분량입니다. 이 모래가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간다면, 동해안 해변의 연안침식 문제 일부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며 "연곡천은 강과 바다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래톱을 제거해 모래 공급을 원활하게 하고, 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영진항 퇴적의 원흉
영진항은 항구 입구에 모래가 퇴적되어 1년에 3~4회 준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는 연곡천에서 바다로 흘러가야 할 모래가 항구 입구에 쌓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어선들이 무리하게 교행하다 충돌 사고가 자주 일어나며, 선박 하부가 지면과 닿는 사고도 빈번하다. 그러나 관계 기관은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모래를 퍼내는 임시 처방만 반복하고 있다.
홍성문 영진어촌계장은 "영진항은 동해안에서 항구 입구 퇴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입니다. 어선끼리 충돌하거나, 제때 어업을 못 해 발만 동동 구를 때가 많습니다"라며 "연곡천에서 내려온 모래톱의 중앙을 터주면 항구로 유입되는 모래가 사라질 텐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생태계가 무너진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기수지역은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기에 자연적으로 수질 정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이 지역이 차단되면 오염 물질이 축적되어 수질이 악화될 수 있다. 이미 물 흐름이 차단된 연곡천 하류는 오염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끼가 끼고 하천 바닥은 검은 오염물질로 뒤덮여 있다.
강릉시는 연곡천 하천 정비 명목으로 하천에 우거진 초목과 쌓인 토사를 제거하는 등 하상 정비 공사를 추진했다. 하지만 하상 구조가 바뀌면서 연어, 은어 등 물고기 자연산란장이 훼손됐다.
한 마을 주민은 "물길이 막혀서 물이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강릉시에 여러 차례 갯터짐을 요청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어요"라며 "2022년부터 연곡천 생태하천을 조성했지만, 물 흐름을 가로막는 모래톱을 제거하지 않으면 맑은 하천이 될 수 없습니다"라며 관계 기관의 대책 부족을 비판했다.
상류로 갈수록 오염이 심각해지고, 바닥은 메말라 있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할 모래는 차단되었고, 하얀 모래는 검게 오염되었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나서지만, 메마른 하천에는 먹이원이 없어 방황하고 있다.
연곡천이 좋아 터를 잡았다는 김아무개(79)씨는 "이렇게 막힌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모래가 썩고 냄새가 나서 물고기도 사라지고 그 흔하던 달팽이마저도 보이지가 않아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모래 퇴적은 바다로 공급되는 영양염류를 차단해 해양 생물에 악영향을 미친다. 모래에 의존하는 조개와 패류뿐만 아니라, 암반에 붙어 자라야 하는 해조류도 모래 퇴적으로 인해 암반에 부착할 수 없게 된다.
국립원주대학교 해양생태환경학과 이충일 교수는 "강에서 유입되는 영양물질이 바다로 흐르지 않으면 해양 생태계의 영양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라며 "이는 해양 생물의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라고 바다와 강물의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어의 고향, 연곡천 그 기능을 잃다
매년 10월부터 11월까지, 동해안으로 향하는 큰 하천에서는 부화한 연어들이 산란과 수정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의 중상류는 물의 흐름이 완만하고 모래와 자갈이 넓게 분포하여 연어가 알을 낳고 보호하기 좋기 때문이다.
연곡천은 연어가 올라오는 생태하천으로, 수산자원공단이 매년 연어 포획장을 설치한다. 포획된 어미 연어에서 성숙한 난과 정액을 인공 수정하여 건강한 어린 연어로 성장시킨 후 방류한다.
연어는 2~5년 동안 북태평양을 경유하여 2만km의 여정을 거쳐 동해안 모천으로 회귀한다. 바다에서 전 생애를 보내며 성장하지만 산란철이 되면 산란을 위해 강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먼 길을 찾아온 연어는 산란할 장소를 바로 앞에 두고 갈 길을 포기해야 한다. 연곡천으로 오르는 길목이 거대한 모래톱으로 막혀있고 좁다랗게 터진 물길은 오르기엔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연어와 같은 회유성 생물은 양쪽 생태계를 오가며 에너지를 전달한다. 산림과 강이 건강해야 바다가 건강해지고, 바다가 건강해야 산림과 강도 건강해질 수 있다"라고 강조하며 "하구에 쌓인 모래를 제거하여 연어가 회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강릉시와 수산자원공단은 생태하천인 연곡천 관리에 대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수산자원공단 동해생명센터 관계자는 매년 관할 지자체에 모래 준설을 요청하지만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연어가 오르는 시기에는 직원들이 연어길 터주기 작업을 하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한다.
연곡천은 연어 자원 조성을 위해 지속 가능한 관리와 보존에 힘쓰고 있지만, 천변 하구에는 동해생명센터에서 설치한 연어 포획 금지 현수막만이 길가에 걸려 있다.
영진어촌계원인 김아무개씨는 "연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데 연어 포획금지라는 문구만 걸려있고 그마저도 거꾸로 매달린 채로 있다. 연어 자원 보존에 관심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혀를 찬다.
연어뿐만 아니라 다른 바다생물들도 고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어 같은 회유성 어종들은 각 생태계를 넘나들며 이동하는 동안 수많은 생물들을 끌고 다니는 특성이 있다. 산란을 위해 연어가 하천으로 이동할 때 수달 같은 동물이 연어를 잡아먹기 위해 강가에 모여든다.
연어를 잡아먹은 육상생물은 연어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숲속으로 전달한다. 어린 연어가 성장을 위해 바다로 나갈 시기에는 강 입구에 수많은 물고기들이 몰려들고 그 물고기들을 잡아먹기 위해 갈매기 등 많은 새들도 몰려든다. 강과 바닷길이 차단된 연곡천은 회유하는 연어도 고기를 잡는 낚시꾼도 볼 수가 없다.
낚시하러 온 김아무개씨는 "예전에는 천으로 오르는 물고기가 많았고, 이 시기에는 많은 물고기를 낚을 수 있었는데, 물길이 차단되면서 강으로 오르는 물고기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연곡천은 동해바다와 강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 육지와 바다를 오가는 생물들과 모래 위에서 자생하는 다양한 식물들의 서식지다. 이제는 자연이 고향을 찾아 떠날 수 있도록 길을 터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