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으로 전세계에 K-문학의 열풍을 일으키고, 국내에서도 엿새 만에 1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우는 등 '한강 열풍'의 와중에 유독 언론과 세간의 입에 덜 오르는 작품이 있다. 2018년 제 12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별>이다.
후보로 오른 총 20편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단편소설로 선정된 <작별>은 당시 작가 오정희·전상국 그리고 평론가 김동식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존재와 소멸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경계"를 잘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5.18과 4.3 등 한국 현대사를 시적 언어로 녹여내며, "과거의 아픔과 마주할 용기"에 대해 음미할 기회를, 마치 느닷없이 찾아온 노벨상 소식처럼 '불쑥' 현대 한국인에 안겨준 작품들로 볼 수 있다.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을 경화·인선·정심이라는 세 여인의 시선으로 담아내며 작가 스스로 "인간성의 바다 아래로 내려가서 촛불을 밝히는" 시도를 했다고 밝힌 작품이다.
그러나 <작별>은 이처럼 한국 현대사의 '얼룩'들에서 모티브를 찾기보다 기계처럼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꿈'같은 스토리를 통해 존재와 소멸의 경계 지점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추적해가는 작품이다.
어느 날 벤치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눈사람이 돼 심장도 없어지고 그 자리에 미온만 남아 서서히 녹아 없어지던 한 여성의 이야기. 오래전 남편과 이혼을 하고 홀로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사는 그녀는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권유받았다. 매일같이 사무실에 사물처럼 앉아있다 지하철에 실려 귀가하는 삶을 반복하는 주인공은 자아와 자신의 몸뚱이와의 괴리를 느낄 정도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자신이 더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사물이라고 상상했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소설은 인간의 삶이 아닌 사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이 느닷없이 눈사람으로 변해 버린 뒤,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존재 자체가 녹아 없어지고 있는 상황을 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인생의 덧없음"과 같은 인간 사회가 오래도록 공유해온 상념을, 누군가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는 회고나 불경 한 페이지에 등장하는 자구 형태가 아니라 단편 소설의 형식으로 전달하려고 작가는 '눈사람 변신' 사건을 고안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 기발한 고안에 더해, 존재가 녹아 들어가는 눈사람의 정밀 묘사를 위해 작가의 탁월한 시적 언어가 활용된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들도 "사라지는 불가피한 운명 앞에서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 인간이 아닌지를 섬세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이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이별을 고하지도 행하지도 않음으로써 이별을 "짓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전하려 한 것과 달리, <작별>은 물처럼 흐르는 시간에 녹아들어 존재가 소멸해가는 눈사람이라는 공상적 설정을 통해,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존재와 '무' 사이의 공간 이동을 그린 정밀화가 되는 셈이다.
김유정 문학상은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김유정 작가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상으로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등과 함께 국내 우수 작가들의 등용문이 돼 왔다. 2007년 윤대녕의 <제비를 기르다>를 시작으로 올해 18회까지 수상자를 배출했다. 지난 18일 열린 올해 시상식에서는 배수아 작가가 독일 베를린 인근 마을에서 집필했다는 <바우키우스의 말>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학생 기자 송예린
덧붙이는 글 | 송예린 대학생 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에도 게재됩니다. (www.hallymmedia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