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0월 25일 김성덕(金盛德) 지사가 타계했다. 1897년 12월 21일 경북 상주(당시 주소: 상주면 만산리 360번지, 현 북문동)에서 출생했으니 향년 52세였다.
1919년 3월 1일 당시 22세로,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이때 지사는 고향이 같으면서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장재관과 서울에서 함께 지냈다. 장재관은 보성고등보통학교에 다녔다.
그해 6월 말은 3·1 만세 시위운동이 약간 소강 국면에 접어든 때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민족자결주의에 근거한 새로운 세계 질서 재편이 이루어지면 우리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라는 정보가 민중에 널리 공유되는가 하면, "우리 민족은 3·1운동으로 고조된 독립의 열망을 이어가야 한다"는 결의가 다져지던 시기였다.
상주를 떠나 서울에서 유학하던 두 고향 청년
김성덕과 장재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6월 29일 장재관이 숙소로 돌아오면서 '대한민국민회' 명의의 '강화회의 조인 축하문' 80매를 가져왔다. (뒷날 장재관은 일제 경찰에 "신원 미상의 사람이 길에서 주는 것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성덕이 읽어보니, '세계가 한국의 독립선언에 동정을 표시하고 있어 우리에게 유리한 국제 정세가 형성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2천만의 조선인은 이번 강화조약의 성립을 축하하며 아울러 국제연맹의 발현을 희망한다. 저번 우리 동포가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결과 다른 나라로부터 동정을 얻어 점차 이에 조선의 부활을 보고 김규식(金奎植)이 국제연맹에서 발언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들은 위의 연맹회의에 참석하는 위원 여러분들이 정의·인도를 근거로 약소국의 문제일지라도 공평하게 해결할 것을 희망한다.
김성덕은 그 중 20여 매를 인사동 민가에 배포하고, 전국 각지로 전파되기를 기대하는 뜻에서 관훈동 소재 관훈여관을 찾아가 투숙객들에게 16매를 나누어주었다. 장재관도 돌아다니면서 이 독립운동 고취 문서를 부지런히 돌렸다.
그 일로 두 사람은 체포되었다. 경성지방법원은 1919년 7월 18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적용해 김성덕에 징역 10개월, 장재관에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8월 21일 다시 열린 경성복심법원에서는 각각 징역 10개월과 1년에 집행유예 3년이 최종 언도되었다.
김성덕 지사 타계 19년 후 같은 날 정학진 지사 별세
1968년 10월 25일 정학진(鄭學鎭) 지사가 타계했다. 1912년 7월 25일 경북 상주(당시 주소: 상주면 서정 41번지)에서 태어났으니 향년 56세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구에서 동조 시위를 계획하다가 일제에 검거되어 고문과 투옥을 당하였다.
당시 지사는 18세로, 대구상업학교 3학년이었다. 광주에서 대규모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사는 그에 호응하는 운동을 대구에서 벌이기로 결심했다. 1930년 2월 15일을 거사일로 잡았다. 하지만 모의 단계에서 정보가 누출되는 바람에 일제 경찰에 검거되었다. 지사는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을 당한 후 석방되었다.
광주학생운동의 대구 확산을 도모하다
1931년 10월 지사는 '프롤레타리아 과학연구소 조선 제1호 지국'에 가입하였다. 이 조직은 "사회개혁을 통한 신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1930년 12월에 결성된 단체였다. 지사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연구와 보급을 목적으로 독서회 활동을 조직하는 한편, 비밀결사의 확대를 위해 노동자·농민·학생들을 만나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지사는 결국 1932년 1월 체포되어 형옥에 갇혀 1년 내내 고문을 당한 끝에 그해 12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죄목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정학진 지사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이다. 김성덕 지사의 묘는 그래도 상주에 남아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묘소도 남기지 못한 독립지사들의 현실을 확인하는 순간은 언제나 애잔하다.
덧붙이는 글 | 국가 인정 독립유공자가 1만8천여 분 계시는데,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소개하려면 1500년 이상 걸립니다. 한 달에 세 분씩 소개해도 500년 이상 걸립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 의거일 등을 중심으로 '오늘의 독립운동가'를 써서 지사님들을 부족하나마 현창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