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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plash Image ⓒ nate_dumlao on Unsplash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식당 안 수백 명 아이들이 각자 식판에 담는 메뉴가 똑같았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도 전혀 없었다. 밥 한 주걱에 소시지와 탕수육, 고기만두와 불고기, 그리고 디저트인 푸딩과 주스까지, 이렇게 식성이 한결같을 줄이야.

지난주 수학여행 때 묵은 리조트 식당의 뷔페 메뉴는 스무 가지가 넘을 만큼 다양했는데, 아이들이 먹는 건 대여섯 가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샐러드용 신선 채소, 가지볶음, 콩자반, 버섯 튀김, 미역 줄기 등은 고스란히 버려질 참이었다.

아이들이 채소와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학생 중에는 다이어트 등의 이유로 채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다. 배식대 위 고기반찬과 나란히 놓인 푸릇한 채소는 한낱 장식용일 뿐이었다.

"이렇게나 먹을 게 많은데, 굳이 맛없는 채소에 손이 갈 리 없잖아요."

아이들에게 채소와 생선 등은 차라리 '구황 식품'이었다. 전쟁통이나 기근으로 굶주릴 때나 어쩔 수 없이 먹게 될진 몰라도 평소 입에 댈 일은 없다며 키득거렸다. 뭐든 무조건 기름에 튀기고, 생선 위에 달디단 소스를 얹어도 아이들은 젓가락질 한 번 하지 않는다.

삶은 달걀보다 달걀 프라이를 먹고, 생미역이나 다시마보다 조미된 김을 선호한다. 아침 식사 때 제공되는 빵도 구운 식빵보다는 크루아상이나 카스텔라를 식판에 담는다. 곁들이는 음료도 오렌지 주스 앞엔 종이컵을 든 줄이 길지만, '덜 단' 당근 주스 앞은 늘 썰렁했다. 심지어 탄산음료는 없는지 묻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점심 식사도 죄다 고기반찬 일색이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을 동시에 수용하는 단체 식당의 메뉴는 어딜 가나 돼지불고기였다. 다른 반찬이라곤 김치와 콩나물이 전부였다. 나처럼 고기를 아예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는 사흘간 맨밥에 김치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A bowl of fried chicken pops
A bowl of fried chicken pops ⓒ alfonsoluis on Unsplash

저녁 식사 후에도 고기 파티는 이어졌다. 밥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파할 나이라지만, 식사 후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외부 음식들이 속속 배달됐다. 아이들이 주문한 배달 음식은 예외 없이 치킨이었다. 종일 고기만 먹어놓고 야식으로 또다시 고기를 찾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난 27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장 우려되는 점이 이것이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이 달고, 기름지고, 자극적이고, 쫄깃한 식감의 음식만 찾는다는 것! 스마트폰에 길들어져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과 운동량이 부족해 체력이 약해지는 것 등은 차라리 차후 문제다.

섣부르지만, 10대 아이들의 입맛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흔히 나중에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입맛도 변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그렇게 낙관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지금 20~30대 청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10대 아이들과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다.

비유하자면, 랩과 록 음악을 즐기는 10대가 60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트로트 음악을 좋아하게 될 거라는 인식과 비슷하다. 수학여행이든 학교 급식이든 아이들이 좋아하니 고기반찬 일색이고, 그 맛에 길들어지니 그것만 찾게 되는 악순환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논쟁은 의미 없다.

고기반찬 일색인 학교 급식을 탓할 건 아니다. 채소나 해산물이 주메뉴인 날은 잔반통이 순식간에 그득 찬다. 매일 교사들이 잔반을 남기지 않도록 급식 생활지도를 하지만, 사실상 하나 마나다. 먹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강요했다간 학부모로부터 아동 학대로 고소당할 수 있다.

잔반이 남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고기반찬만 제공하는 것이다. 불고기가 나오는 날엔 함께 제공되는 김치와 국, 그리고 두세 종류의 밑반찬은 배식대에 굳이 꺼내놓을 필요가 없다. 아이들의 식판 위엔 달랑 밥과 불고기, 이 둘뿐이다. 이날은 굳이 잔반통도 필요 없다.

일부 지방정부에서 도입했던 '채식의 날'이 흐지부지된 것도 아이들과 학부모의 민원 때문이었다. '채식의 날'을 일주일에 한 번 시행했다가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가 이젠 고기반찬을 줄이는 걸로 뒷걸음질 쳤다. 아이들에게 '채식의 날'은 '매점에서 점심 때우는 날'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따지려 들면 원인이야 수만 가지일 테지만, 어려서부터 집밥을 먹지 않은 세대라는 걸 첫손에 꼽아야 할 성싶다. 아침을 거르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태반인 데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날이 주말뿐인 현실에서 집밥이란 광고에서나 등장하는 단어다.

그나마 주말 저녁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해도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게 다반사라고 한다. 편리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모가 요리에 서툴러서이기도 하다. 신세대 부모일수록 배달 음식에 의존하는 경향이 뚜렷하고, 아예 집밥을 브랜드화한 '음식 상품'이 온오프라인에 즐비하다.

이제 김치를 담그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고, 반찬도 주문해서 먹는 집이 대다수다. 밥상을 차린다는 건, 상품의 포장을 뜯어 그릇에 담는다는 뜻일 뿐이다. 집에서 직접 하는 요리는 쌀을 씻어 안치는 걸 제외하면, 라면을 끓이는 등의 인스턴트 음식이 고작이다.

"저처럼 크게 아파봐야 식습관을 바꿀 거예요"

 Fry day fries
Fry day fries ⓒ christianbolt on Unsplash

시장에서 '음식 상품'의 경쟁력은 대개 맛이 좌우한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일단 맛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인즉슨, 달고 기름지고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몸에 좋고 가격이 합리적인 건 그다음이다. 하긴 공장에서 가공되는 음식이 몸에 좋으리라는 기대는 무망하다.

가정에서 그렇게 길들어진 아이들의 입맛을 학교 교육을 통해 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선은커녕 그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급하다. 그래야 '우리 학교 급식이 최고'라는 상찬을 받게 될 테니 말이다. 이젠 학교 급식이 배달 음식과 맛으로 경쟁하는 현실이 됐다.

되레 '희망'은 가정과 학교 밖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한 아이가 학교 급식을 끊었다며 말을 걸어왔다. 요 며칠 안 보인다 했더니, 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했다 퇴원하는 길이라고 했다. 문학과 역사에 유독 관심이 많아 종종 나와 토론을 벌이던 아이다.

고3 들어 부쩍 몸무게가 늘었다 싶었는데, 비만으로 인한 각종 질환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담당 의사가 처방 삼아 식이요법을 권했다는데, 지금껏 그가 입에 전혀 대지 않던 음식들이라 자못 놀란 눈치였다.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과일보다는 푸른잎채소를 먹으라고 했단다.

그는 입원을 계기로 자신의 식습관이 180도 달라졌다고 했다. 학교 급식을 끊고 매일 도시락을 챙겨오고, 죽고 못 살던 콜라도 단숨에 끊었다고 했다. 평소 식사량도 줄이고, 운동도 꾸준히 할 거라고 다짐했다. 의사의 진단이 '생명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지더란다.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단다. 육식과 가공식품 위주의 식습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했다는 거다. 음식에도 '중독성'이 존재한다면서 입맛을 중화시키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고 강조했다. 육식은 채식으로, 가공식품은 가공되지 않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중화된다는 주장이다.

"저처럼 크게 아파 봐야 식습관을 바꾸게 될 거예요. 인간의 한계 같기도 한데, 그전까지는 아무리 떠들어도 귓등으로 듣게 될 겁니다. 어쩌면 기후 위기도, 지역 소멸도, 전쟁 위험도, 막상 자신의 위협으로 닥칠 때까지는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것과 비슷한 맥락 아닐까요?"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도 친구들의 식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낙담했지만, 난 그를 통해 '희망'을 봤다. 평소 고기와 콜라를 입에 달고 살던 그가 채식의 효용을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조만간 건강을 되찾게 될 그의 몸이 증거일 테니, 학교 급식 메뉴의 변화에 작은 단초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부디 그의 쾌차와 건투를 빈다.

#육식위주식습관#학교급식#배달음식#채식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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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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