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고산성당에서는 뜻깊은 미사가 열렸다. 이름하여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 팔현습지와 이 아름다운 습지가 속해 있는 금호강과 또 그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의 평화와 안녕을 비는 미사다.
사실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는 금호강 수성구 고모동 쪽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습지인 팔현습지에서 열리고 있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봉헌되는 이 특별한 미사는 올 1월부터 시작돼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이 뜻깊은 미사를 이끌고 있는 이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생태환경위원장 임성호 신부다. 임 신부는 지난 10월까지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이곳 팔현습지에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해 왔다. 봄여름가을겨울의 팔현습지와 함께 이곳 팔현습지와 이곳에 깃들어 사는 뭇 생명들을 위한 평화미사를 봉헌해 온 것이다.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가 이곳에서 시작된 이유는 이곳에 불고 있는 개발바람 때문이다. 대구시의 제안으로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이 팔현습지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생태 구간에 보행 탐방 보도교 사업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팔현습지 하천숲 일대는 작고 야트막한 야산 두 개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으로 두 산과 강이 잇닿아 강과 산의 생태계가 자연스레 연결돼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도심과 아주 근접한 이곳에 법정보호종 야생동물이 19종이나 산다. 수달, 삵, 하늘다람쥐는 물론 심지어 깊은 산중에서 볼 수 있다는 멸종위기종 담비까지 찾아온다. 강과 산의 생태계가 온전히 연결된 공간이기에 금호강 중에서도 이곳에 야생동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살아간다. 이곳은 이들의 최후의 보루로 이런 곳을 생태학적 용어로 '숨은 서식처'(Cryptic habitat)라 이른다.
오랜 세월 강물이 깎아 만들어진 지형인 하식애(河蝕崖)와 자연스레 자라난 왕버들 군락지가 바로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즉 나라에서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법정보호종 야생동물들이 마지막 최후의 보루로 삼아 살고 있다는 '숨은 서식처'에 해당하는데, 이곳에 산을 따라서 높이 8미터에 길이 1.5킬로미터에 이르는 탐방 보도교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멸종위기종 야생동물들을 지키고 보전해야 할 환경부가.
따라서 엉터리 같은 환경부가 벌이는 참으로 웃지 못할 '삽질'에 분명히 우리가 '아니오'를 외칠 필요가 있고, 이곳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과 연대하기 위해 이 아름다운 미사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팔현습지 하식애에는 이곳 팔현습지의 터줏대감이자 깃대종인 수리부엉이 부부가 살고 있다. '팔이'(수놈)와 '현이'(암놈)라는 이들 부부가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미사가 봉헌돼 왔다. 그 세월이 거의 1년에 가까워온 것이고.
그러던 차에 지난 10월에 열렸던 국회 환경부(낙동강유역환경청) 국정감사에 불려나온 최종원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은 "이 문제의 보도교 사업을 철회할 생각이 없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우 국회의원의 질문에 "이 사업을 원하는 시민들이 있기에 철회할 수는 없다"며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정말 대구 수성구 사람들이 이 사업을 원하는 것이 맞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 이런 사업이 계획돼 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도 있어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가 습지 밖으로 나온 것이다. 수성구 소재 성당으로 달려가 수성구 주민인 이곳 신자들을 만나 정말 팔현습지 보도교 사업을 원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가 수성구 고산성당으로 달려온 이유다.
그래서 3일 오전 8시 30분 미사와 오전 10시 30분 두 미사를 봉헌하면서 질문을 한 것이다. "팔현습지 보도교 사업을 수성구 사람인 여러분이 해달라고 하신 것이 맞냐?"면서.
이날 성당 입구에서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팔현습지의 아름다움을 알릴 목적으로 팔현습지 사진전을 열고, 팔현습지에서 행하려 하는 보도교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감사 청구에 동의하는 서명전이 펼쳐졌다.
이날 미사에서 임성호 신부는 이곳 고산성당에서 팔현습지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칭이와 펄조개라는 이 큰 민물조개가 살고, 얼룩새코미꾸리라는 멸종위기 1급종의 귀한 물고기가 살고, 우리 '팔이'와 '현이' 두 수리부엉이 부부가 사는 이 핵심적 생태 공간에 환경과 생태를 지키고 보전해야 할 환경부가 개발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우리 신앙인들의 말로 하느님이 주신 안식처에 해당하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피조물들의 서식지에 삽질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 그래서 하느님의 아름다운 창조 질서가 서린 이곳 팔현습지만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줘야 하지 않겠나."
미사가 끝나고 신자들이 성당 문을 나서면 성당 입구에서 열리는 팔현습지 사진전과 서명 운동 현장을 만나게 된다. 임 신부의 강론을 듣고 나온 신자들은 너도나도 서명에 동참했고 사진들을 보면서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아직 남아 있었느냐, 꼭 한번 가보겠다"며 감탄했다.
사진을 다 둘러보고 서명까지 마친 수성성당의 신자 루시아씨는 다음과 같이 이날 생명평화미사에 대한 소감을 남겼다.
"대구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 아름다운 자연은 우리 것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어른들이 꼭 지켜줘야 할 대구의 보물이다. 그런 보물을 환경부가 망치려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또 이런 사업을 우리 수성구 사람들이 원해서 하는 사업이라는 소리에 또 충격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말하지만 수성구 사람으로서 절대로 이런 사업을 원하지 않는다. 팔현습지가 그대로 온전히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