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아이가 학교를 떠났다. 해가 갈수록 자퇴생의 수가 늘어나고, 자퇴를 결정하는 시기 또한 앞당겨지고 있다. 예년에는 대개 고2 때 결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고1의 1학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곳곳에서 마치 유행처럼 자퇴 이야기가 오간다.
자퇴의 이유도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예전엔 몸이 아파 학교를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 차이로 인해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가 힘든 경우는 학급을 교체하거나 드물게는 전학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든 저든 자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요즘 자퇴를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자퇴를 선택하지는 않겠지만, 고1이면 누구나 중학교 시절의 그것과 확연히 대조되는 성적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 성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를 연신 되뇌게 되는 거다.
더욱이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 등 대입 수시 전형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내신 성적이 사실상 고1 때 결정되는 게 현실이고 보면, 그들의 자퇴는 합리적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결심 앞에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담임교사의 조언은 하나 마나다. 차라리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말이 더 효과적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닌 교육 현장의 편법과 불법
이미 고1 때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 정해진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잠깐 귀띔한다. 이른바 '모수'가 큰 공통 과목을 고1 때 이수하게 되어 있어서다. 고2와 고3 때는 교육과정상 대부분의 수강 과목이 선택 교과로 편성되어 내신 등급을 올리기가 여간 쉽지 않다.
특히 상위권 아이들의 경우엔 고1 성적이 대학의 '간판'을 결정한다. 1등급이 4%, 2등급이 11%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선택 과목의 수강생 숫자가 14명 이상이 되지 않으면 1등급이 산출되지 않는다. 보통 한 학급당 학생 수가 25명 안팎이라고 하면, 1등급을 받으려면 무조건 1등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여 아이들은 '모수'가 큰 고1의 공통 과목에서 등급을 올리지 못하면,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고 여긴다. 명문고를 자처하는 일부 인문계고에서 '모수'를 늘리기 위해 하위권 아이들의 선택 과목을 '마사지하던' 관행도 그런 이유로 생겨났다. 제도의 허점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교육 현장의 편법과 불법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자퇴의 이유가 무엇이었든, 가는 길이 다를 뿐 명문대 진학이 목적지인 건 동일하다. 고등학교 졸업 자격 취득을 위한 검정고시를 치른 뒤 수능에 응시하거나 다시 출신 중학교에 고등학교 재배정 신청을 하는 길이 있다. 성적의 '리셋'을 위해 1년이라는 시간을 기꺼이 투자한다는 거다. 최근 '중3 자격'으로 고등학교에 재입학하는 고1들이 부쩍 늘었다.
다시 고1 생활을 해야 하는 걸 두고, 그들은 재수한 셈 친다고 선선히 말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고, 공부의 효율도 높다고 여긴다. 수시와 정시, 두 가지 선택지를 다 쥘 수 있는 장점도 있어 자신의 선택을 '남는 장사'라고까지 자위한다.
스스로 합리적 선택이라고 둘러대지만, 말처럼 녹록지는 않다. 상당한 의지와 결기가 필요할뿐더러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을 무시할 순 없다. 자퇴 직전, 고등학교 시절 사귄 친구가 평생을 간다는 말에 솔깃해하며 주저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성적이 엇비슷한 친구들은 모두 경쟁자라 여기는 아이들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수하며 기숙학원에 등록해 대입에 다 걸기 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상당한 재력이 뒷받침되는 가정에서나 선택할 수 있어, 자퇴가 되레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경우다. 그들의 성공담은 인터넷 광고와 입소문을 타고 고1 교실에까지 널리 퍼져 있다.
기실 그들을 향한 아이들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내심 부러우면서도 불만 가득한 낯빛 또한 역력하다. '돈의 위력'에 기댄 그들의 향상된 수능 점수가 자신의 대학 진학의 장애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학과 학과마다 내걸린 수능 최저 등급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정부의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 방침에 의대생과 전공의보다 더 크게 반발하는 이들이 고3 수험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기존의 의대를 지망한 'N수생'에다 명문대 공대생과 멀쩡한 직장인들까지 수능에 응시하는 상황에서 수능 최저 등급 맞추기는 당장 생존이 걸린 사안이 됐다. 고3 수험생에게 지금 직면하고 있는 의료 붕괴의 참혹한 상황은 차후 문제다.
내신 성적이든 수능 최저 등급이든, 어차피 상대 평가 체제에서는 '모수'가 많을수록, 대신 자기보다 성적이 높은 이들은 적을수록 유리하다. 누구든 자기의 성적이 신통치 않다면 상대방의 성적이 떨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성적이 엇비슷한 친구들은 모두 경쟁자이자 '적'이다.
"걔 때문에 자칫 제 등급이 내려가게 될지도 몰라요."
반 친구의 자퇴 소식에 몇몇 아이들은 '현실적인' 고민을 쏟아냈다. '모수'가 줄어들어 손해를 입게 됐다는 뜻이다. 특히 상하위 등급이 갈리는 언저리의 성적인 경우, 한명 한명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하소연했다. 모르긴 해도, 자기보다 성적이 높은 친구가 자퇴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학교생활은 오로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내신 성적 향상을 위한 무한경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입에 보탬이 안 되는 활동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수능에 다 걸기 하는, 이른바 '정시 파이터'들은 협동 학습과 과제, 심지어 수행평가에도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학교는 '급식을 제공하는 독서실'일 뿐이다.
학교엘 다니든 자퇴하든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저 어느 곳에서 무한경쟁에 참여하고 있느냐의 문제일 테니 말이다. 단언컨대, 온존한 학벌 구조에 기댄 대학 입시를 철폐하지 않는 한, 당장 한 줄 세워 등급을 가르는 상대 평가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 한, 학교 교육의 미래는 없다.
복마전이 되어 가는 학교 현장에서 나날이 아이들의 성정은 삭막해져만 가고, 교사들은 무력감에 지쳐 간다. 자퇴의 도미노를 막아설 권위도 없고, 그들을 설득할 논리도 마땅찮다. 그저 자퇴를 결정한 아이의 '건투'를 빌 뿐이다. 여기서 '건투'란 명문대 합격이 아니라, 올곧은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니 부디 오해 없길 바란다.
뒷맛 개운치 않은 한국은행 총재의 지적
사족. 얼마 전 한국은행 총재가 대입이 수도권 집값 상승과 지역 소멸 등의 주요인이라며 '지역별 비례 입학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인구 규모와 경제적 격차로 인한 기회 불평등을 대입 정원에 반영하자는 주장이다. 일견 타당하지만, 대입 정원을 핑계 삼을 것 없이 애초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자퇴조차 돈이 있어야 선택지가 되는 마당에 '지역별 비례 입학제'는 이른바 지역 토호들의 꽃놀이패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대학에서 생색내는 '지역 균형 선발 제도'가 지역의 최상위권 아이들의 특권처럼 활용되는 현실이다. 더욱이 그렇게 명문대에 진학한 뒤 서울을 삶의 터전 삼는 이들을 과연 지역 인재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우리 교육의 당면 문제를 교육부 장관이 아닌, 생뚱맞은 한국은행 총재가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찮다. 통화 정책을 관장하는 한국은행 총재가 교육 정책에 대해 일갈하는 모습을 교육부 장관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라는 신선놀음에 빠져 도끼 자루 썩는 줄도 모르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