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복지부는 의료급여(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의 외래 본인부담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바로 기존 정액제를 정률제로 바꾸는 것인데요, 이렇게 되면 수급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해 필요한 의료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시민들의 우려에 대해 복지부는 부담이 늘어나는 대상자 수와 그 증가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계획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번 연재를 통해, 복지부 해명과 달리 정률제 도입이 왜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개악일 수밖에 없는지, 정부는 왜 이러한 개악을 시도하고 있는지, 진짜 필요한 의료급여제도 개혁은 무엇인지 등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기자말] |
*<의료급여 정률제, 이래도 개악이 아닌가요?> 연재 순서
(1) 의료급여를 아시나요?
(2) 의료급여 정률제, 왜 개악일까요?
(3) 몽니 부리는 복지부, 왜 그럴까요?
(4) '과다의료이용=도덕적 해이' 프레임을 해체하려면?
(5) 낙인과 차별을 만드는 제도가 '진짜' 문제 아닌가요?
(6) 의료급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 '의료급여'는 그 '의료급여'가 아닙니다
'의료급여'를 아시나요? 말 그대로 풀이하면 의료라는 현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아마 "건강보험 급여 보장성이 낮다", "실손보험 때문에 비급여 진료가 남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때 '(요양)급여'란 건강보험 가입자와 피부양자에게 검사, 치료, 예방 등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서비스를 뜻하는 것이고요. 또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제공하는 '장기요양급여'라는 말도 종종 접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와 전혀 다른 의미의 고유명사로 '의료급여'가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공적 의료보장제도로서의 의료급여인데요. 대상자 수가 전체 인구의 약 3% 남짓이다보니 이런 제도가 존재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분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심지어 제 주위에 보건의료정책을 전공한 사람들조차 낯설어 하니까요. 의료급여 수급자와 의료기관 종사자 정도를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현실입니다.
전 국민 의료보장제도는 현대 복지국가의 기본 책무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흔히 '전 국민 건강보험'이란 말을 쓰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사실과 다릅니다. 한국의 공적 의료보장체계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로 이원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의료급여제도는 건강보험료와 치료비를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의 의료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부조의 일환으로서, 공적 의료보장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의료급여가 낯설고 헷갈리는 이유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빈곤층 의료보장제도'라는 사실이 전혀 연상되지 않는 이름을 붙인 까닭이 말입니다. 무엇을 가리키는지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이름이 좋은 명칭일텐데, 그런 점에서 의료급여는 불친절한 용어입니다.
실은 의료급여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까지는 '의료보호'로 불렸는데요, 지난 2001년에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려는 취지로 법명이 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시민사회가 제안했던 '기초건강보장법' 대신에 정부안인 의료급여법으로 개정법명으로 결정되었죠.
정부는 왜 이런 '무색무취'의 단어를 택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여하튼 사람들이 쉽게 알아듣기 어렵고 따라서 잘 와 닿지 않는 이름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정부의 의료급여 제도개편을 비판하는 연재 글을 시작하는 서두에 의료급여를 아시냐고 물은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용어도 헷갈리고 무엇보다 제도 자체를 모르는데 어떻게 이와 관련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기 입장을 정하고, 힘을 보탤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최후의 의료안전망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급여 정률제 도입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각자도생 사회에서는 실직, 파산, 사고, 발병 등 여러 예기치 못한 불운이 겹치면 누구라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튼튼하고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입니다. 이를 통해 경제적 곤경에 처한 이들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데 다들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의료급여 역시 헌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34조)를 보장하는 것을 본연의 역할로 하는 사회안전망 중 하나입니다. 의료급여법 1조에는 "생활유지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에게 발생하는 의료문제에 대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보건의 향상과 사회복지의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의료급여제도의 기본 정신에는 '곤궁하다고 해서 더 아프거나 더 일찍 죽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회적 의지가 담겨 있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또한 법률 조문에 표현되지 않았지만, '보편적 건강보장'이라는 정책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의료급여제도는 빈곤과 불건강(질병)의 '악순환'을 끊는 것을 근본 목표로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병과 불건강은 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키고 경제 활동을 제약해 소득 감소·상실을 초래함으로써 빈곤 상태를 유발·악화시킵니다. 또 반대로 빈곤은 의료이용을 제한하고 주거, 교육, 영양 등 건강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건강 상태를 악화시키기에 악순환인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보호할 국가 책임이 제도적으로 구현된 것이 바로 의료급여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의료보장이 곧 건강보장인 건 아니지만,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유력한 수단이 의료라는 점에서 의료급여는 빈곤층 건강보장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아울러 빈곤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질병으로 인한 빈곤화를 예방하면서 '모든 이들의 건강(health for all)'을 추구하는 최후의 '의료안전망'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지닙니다.
사회 공동체의 존재 가치를 일깨우는 제도
이와 더불어 사회보장의 측면에서 볼 때 의료급여는 사회적 연대와 통합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가치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모두 빈곤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죠.
무상의료의 대표 사례로 알려져 있는 영국 국가공영의료체계(NHS)의 출범을 이끌었던 베번은 비용 부담 없이 의료 이용을 할 수 있는 것을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라고 표현했습니다. 내가 가난해져도 병원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주는 안도감과 자유감이 사회 공동체의 존재 가치를 일깨우며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의료급여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소중한 제도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이원화된 체계가 최선인 것은 아닙니다. 앞선 말한 영국과 같이 단일한 의료보장체계였다면 애초에 이런 논의가 불필요했을테니까요.
한국처럼 사회보험 제도로 운영되는 나라에서도 하나의 공적 체계 내에서 보험료나 의료비 등을 지원·감면해주는 방식으로 가난한 이들의 의료이용을 보장해주는 게 일반적입니다. 미국이야 민간 의료보험 중심 체계이다보니 메디케이드(Medicaid)라는 별도의 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를 둘 수밖에 없지만요.
제도적 분리는 비수급자들이 의료급여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뿐 아니라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구별된 제도는 필시 사회적 낙인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데요. "국민 세금을 축내는" 이들이라는 모멸적 인식과 시선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의료급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언젠가 이 제도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보다 "나는 절대로 (낙인의 대상이 되는) 수급자가 되지 말아야지"라고 하는 회피적 심리 기제가 더 크게 작동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권력 약자'들이라서 가능한 '밀어붙이기' 전략
이런 이유들로 해서 의료급여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관심의 크기가 작을수록 정부는 마음대로 제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됩니다. 수급자 건강보장이라는 제도의 기본 취지보다 재정 절감 문제에 더 신경을 쓰면서 말이죠. 대개 복지 축소는 수혜자들의 강력한 저항을 촉발하기에 정부가 섣불리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지만, 의료급여는 사정이 다릅니다.
대상자 수도 많지 않은데다 그 대부분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노약자와 장애인, 빈곤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탓에 직접 결사체를 조직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이런 집단적 취약성을 고려하여 수급자 대표가 정책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제도적 장치 또한 부재한 실정입니다.
다음 연재 글에서 상세하게 살펴볼 예정입니다만, 저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급여 정률제는 정책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정합성조차 부족하다고 평가합니다. 즉, 정부가 제시한 정책 목표(과다의료이용 통제)를 달성하는 데에도 적합하지 않은 수단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에서 계속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부는 전혀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수준 미달의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까닭은 '그래도 되기' 때문이겠지요. 정치적으로 감수해야 할 위험 부담이 적기 때문입니다.
의료급여와 관련된 정책 논의에서 꼭 유념해야 할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도적 보장성의 후퇴에도 별다른 저항과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그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권력 관계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는 수급자들의 사회정치적 발언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건강 정의'를 위한 싸움에 동참하기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부의 '밀어붙이기' 전략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성공할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급여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의료안전망이기에 이는 결코 수급 당사자들만의 싸움일 수 없습니다. 또한 이는 모든 사람이 차별없이 보편적 의료 이용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건강 정의(Health Justice)'를 추구하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온라인 성명·탄원에 동참하거나 자신이 속한 사회적 관계망에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때로는 직접 집회에 참가하여 함께 구호를 외치는 일 등 다양한 형태의 실천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작은 연대의 행동들이 모이고 쌓여 큰 사회적 힘을 만들어낼 때 의료급여 정률제 도입 철회라는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