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이던 2017년 검찰은 '직권재심 청구 태스크포스'팀을 설치하고, 과거사 사건에 대한 '재심대응 매뉴얼'을 구성했다. 이 매뉴얼의 주요 내용은 '1, 2심(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유죄 인정 증거가 새로 발견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고를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당시 문 총장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눈물 섞인 사과를 했다. 이후 검찰은 이 매뉴얼에 따라 과거사 재심 사건에 대해 소위 '기계적 상소'를 지향하며 과거사건을 대했다.
심지어 2018년 11월 27일 문무일 총장은 여의도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30여 명을 만나는 자리에서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에 종결하고 말았다는 과거사 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검찰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였다면 형제복지원 전체의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지고 이에 대한 적절한 후속조치도 이뤄졌을 것"이라며 "피해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현재까지 유지되는 불행한 상황이 발생한 점에 대하여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윤석열 정권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임기 초기인 2023년 5월만 해도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며 "입장 바꿔 생각하면 모두 '내가 저 입장이면 참 억울하겠다'라는 사안에 대한 판단이 드는 사건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지는 공직자의 결단의 자세'로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원석 검찰총장 역시 20203년 10월 23일 국회 출석에서 "앞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겠다. 헌법 가치 수호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보호를 위한 검찰의 역할을 흐트럼없이 수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과거사건, 특히 납북귀환어부 사건 정도를 제외하고는 법무부와 검찰이 재심 대응 매뉴얼을 원칙대로 지킨 경우가 많지 않다.
불법수사 확인됐는데 '상고'... 검찰의 문제적 태도 변화
그 대표적 사건 중 하나인 고 최창일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오늘 있었다(관련 기사 :
판사는 깊이 사과했는데 검찰은 여전히 침묵).
재일교포간첩 사건의 피고였던 고 최창일씨 유족은 지난 2020년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올해 5월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유죄를 선고한 원심이 파기되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를 선고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진술은 수사기관에서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한 진술'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검찰은 명백한 불법수사가 법원을 통해 확인되었음에도 특별한 추가 증거 없이 불복, 상고했다. 결국 이 사건은 11월 14일 대법원의 검찰 상고 기각으로 무죄가 확정되었다. 고 최씨 사건의 경우 이미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불법감금, 고문 등에 대한 조사가 완료되어 진실규명이 결정되었고,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재심 등을 권고했다. 검찰의 상고는 지난 2018년 문무일 전 총장 시절 '과거사위원회의 조사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입장과 전혀 다른 대응이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 변화는 비단 고 최씨의 사건 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31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항소심 무죄를 선고받은 고 한삼택씨 사건(일명 김녕중학교 간첩사건) 역시 검찰은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서부터 불복하여 재심개시불복 항고를 하였고, 1심 무죄 선고 이후에도 불복하여 항소를 강행했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이미 2023년 2월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고 한삼택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불법체포, 감금, 가혹행위 등에 대해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며, 국가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피해와 명예회복을 위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상태였다.
검찰의 항소와 불복은 국가가 저지른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 국가가 조작한 피해자의 범죄 사실을 지속적으로 주장함으로써 피해자와 유족에게 여전히 '범죄자'라는 낙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다. 반성과 사과도 없으며, 과거 잘못된 기소와 재판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든 것에 대한 부끄럼이 없는 검찰이다.
과거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역시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했지만, 결국 현재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는 진실화해위원회와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밝혀진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는커녕 검찰 스스로 만든 '과거사 재심사건 대응 매뉴얼'도 준수하지 못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사건을 변호했던 변호인단은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검찰의 잇따른 불복 소송은 '또 다른 국가폭력'이라고 비판하며, 검찰의 2차 가해를 규탄한다고 했다. 공정과 정의로운 검찰의 입장이 정권 때마다 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