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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풍경
교실 풍경 ⓒ 1ndex on Unsplash

언뜻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교사에게 주어진 업무 중에 가장 힘든 건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처벌하는 일이다. 학년 초 교사마다 학생부 업무 맡기를 꺼리는 이유 중에 하나다. 사건은 하루가 멀다 않고 일어나지만, 처벌의 교육적 효과에는 누구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른바 '신상필벌'이 교육의 핵심 요소라는 걸 부정하진 않지만, 상이든 벌이든 아이들의 성장과 성찰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규정에 따른 처벌 과정이 마치 잡무 처리와 같은 느낌마저 든다. 요즘처럼 '교육적 처벌'이라는 말이 형용모순처럼 느껴진 적이 없다.

일상이 무너진 아이들

오늘도 생활교육위원회가 열렸다. 얼마 전까지 선도위원회로 불렸던 학교 내 법정 기구다. 학교폭력과 교육활동 침해 사안을 제외하고, 아이들의 학교생활 중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탈 행위는 이곳에서 다뤄진다. 구체적인 처벌 내용은 학교폭력 등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위원회는 교감을 위원장으로 하고, 학생부장과 상담 교사, 학년의 부장과 담임 교사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사안의 경중과 아이의 특성을 두루 고려해 처벌의 내용과 수위를 결정한다. 대개 아이와 함께 보호자도 호출하여 사안에 대해 안내하고 가정에서의 협조도 구하게 된다.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인한 장기 결석이 문제가 됐다. 아무리 아파도 어떻게든 학교로 등교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과거엔 졸업식 때 3년 개근상 받는 건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지금은 한 반에 많아야 서너 명이다. 반마다 질병으로 인한 지각과 조퇴는 일상이고, 결석도 흔하다.

문제가 되는 건 '미인정 결석'인 경우다. 이것도 예전엔 '무단결석'으로 불렸다. 아무런 이유나 사전 통지 없이 등교하지 않는 경우가 해당한다. 보통 인문계고등학교에선 생활기록부상 '미인정 결석' 기록은 대학 진학에 적잖은 해를 끼치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된다.

고등학생의 생활기록부상엔 대부분 '질병 결석'이다. 진짜 아파서이기도 하지만, 딱히 아픈 곳이 없어도 '미인정 결석'을 피할 수 있다. 약국에 가서 종합감기약 사는 건 물론, 병원에서 처방전 받는 것조차 식은 죽 먹기다. 다음 날 등교해 담임 교사에게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도 '미인정 결석'이 이어지고 있다는 건, 그냥 학교 다니기가 싫다는 뜻이다. 담임 교사가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 등교를 독려하고, 부모를 따로 불러 상담해도 하루 이틀만 지나면 말짱 도루묵인 경우다. 심지어 전문 상담 교사가 부러 가정방문을 해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

"학교에 나올 수는 있는데, 수업은 힘들어서 못 받겠어요. 그냥 종일 홈베이스나 보건실 등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의 당황스러운 요구 조건에 생활교육위원회의 교사들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학교에 나올 이유가 하등 없다. 수업 시간 교사와 또래 친구들과의 상호 작용이 학교생활의 전제일진대, 그걸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는 편이 낫다.

아이는 당장 자퇴를 바라지만, 보호자는 자퇴만큼은 안 된다고 통사정한다. 학교에선 '학업중단숙려제'라고 하여, 자퇴를 결정하기 전에 학교 안팎에서 진로 상담을 받으며 숙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잠시 자퇴가 유예될 뿐이다.

가정방문까지 갈 것도 없이 아이와 잠깐 대화를 나눠 봐도 학교와 가정에서의 일상이 무너져 있음을 대번 알 수 있다. 어쩌다 학교에 오면, 종일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잔다. 허기질 때 잠깐 매점엘 가고, 점심시간에 급식소를 가는 걸 제외하곤 일과 중에 그의 모습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평소 친구들과 갈등을 벌이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으니, 교사들도 그를 투명 인간 취급하며 그러려니 여긴다.

낮에 푹 잤으니, 밤에 잠이 올 리 없다. 대낮의 흐리멍덩했던 눈빛이 밤이 되면 초롱초롱 빛난다. 방과 후에 알바를 하기도 하고, 퇴근 후엔 인터넷 게임을 하며 밤을 지새운다. 부모는 아침에 깨우다 지쳐 출근하고, 또 그렇게 '미인정 결석' 일수가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성인이 될 그가 마주하게 될 현실

"부모님이 가정에서 자녀의 생활 습관을 바로잡아주시지 않으면, 학교에서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학교 교육은 가정 교육의 바탕 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활교육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보호자에게 건네는 이야기지만, 늘 '공자님 말씀'이 되어 허공에 흩어지고 만다. 보호자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 더더욱 학교에 매달리고, 교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일상이 무너진 채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만시지탄이다.

담임 교사와 전문 상담 교사, 생활지도 담당 교사에 이르기까지 학년 초부터 지금껏 상담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의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언제부턴가 교실에서도 그에게 선뜻 다가가는 친구들도 없다. 아이들끼리 조만간 그가 학교를 그만둘 것 같다는 뒷담화만 무성하다.

관련된 교사마다 그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다른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는 형국이다. 그나마 개선의 여지라도 엿보인다면 견딜 만할 텐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라 쉬이 지친다. 내색하진 않아도, 모두 그가 하루빨리 학교를 그만두기를 바라는 눈치다.

위원들끼리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고 규정에 따라 처벌이 내려졌다. 그러나 처벌로 그가 '개과천선'하리라고 기대하는 이는 없다. 처벌에 따르지 않거나 이행한 후에도 문제 행동이 계속되면 다시 생활교육위원회를 열어 가중 처벌이 내려지게 된다. 가중 처벌의 종착점은 퇴학이다.

이미 부모가 어찌하지 못하는 아이가 학교를 그만둔다는 건, 마지막 '안전핀'이 뽑힌다는 의미다. 주위에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없진 않지만, 일상이 무너진 아이가 그곳에 적응하길 바라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위탁 교육 기관조차 수탁을 포기한 경우임에랴.

자퇴든 퇴학이든 학교의 처지에선 골칫덩어리 하나를 떼어 내는 셈이지만, 교사들은 하나같이 착잡한 심경을 토로한다. 맹수가 득시글거리는 정글의 한복판에 손에 아무것도 쥐여주지 않은 채 등 떠밀고 있다는 죄책감 탓이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도 없으니 그저 속만 끓이는 거다.

"너무 괘념치 마세요. 학교가 할 만큼은 다 했잖아요. 이제부턴 가정과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 아닐까요?"

동료 교사가 건네는 위로에도 착잡함을 가눌 수 없는 건, 곧 성인이 될 그가 마주하게 될 강퍅하고 신산한 현실이 눈에 훤해서다. 학적에서 지워지고 나면, 더는 그를 두고 애면글면하지 않아도 된다. 책임질 일도 없고 관심도 시나브로 사라질 테다. 안 보면 멀어지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교육개혁을 부르대지만, 오늘도 학교의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아이들에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들에게 수능의 '킬러 문항'과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긴 그들은 어릴 적부터 교육개혁의 '기회비용'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수능이 끝난 뒤 대입 일정과 정보를 안내하는 뉴스로 연일 호들갑스럽다. 언론마다 최상위권 수능 등급 컷을 예상하는 기사는 아예 전가의 보도다. 이에 학교도 부화뇌동하는 모양새다. 학교가 대입 진학 실적에 매몰될수록 '문제아'에 쏟을 관심이 줄어드는 건 당연지사일 테다.

#생활교육위원회#미인정결석#학업중단숙려제#교육개혁#대입진학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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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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