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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문에 나온 한 기사가 저를 고교시절 기억으로 되돌려 주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닌 1990년대 초반은 교복 자율화 시대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서서 이옷 저옷 입었다 벗었다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시절.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무스'도 선생님 몰래 가방에 숨겨다니던 비교적 자유로운 시절이었죠.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엄마의 옛날 사진에서만 보았던 교복이 몇십년 만에 학교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 때는 마침 난데없는 고급청바지 바람이 불어 닥친 무렵.

한창 유행했던 'X스?'나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XX떼 XXXX X버'같은 청바지가 당시로서는 엄청난 돈이었던 10만원에 육박하던 때였죠. 하지만 우리들에겐 아깝지 않았습니다. 참고서값, 자율학습비 등에 쫄면값까지 아껴 모아두었다가, 몸에 딱 붙은 브랜드 청바지 사서 입고 나서면 우와!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학력고사-제가 바로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랍니다-준비에 여념 없어야 할 고등학생들이 외모와 옷차림에 정신 못차리는 '비정상적'상황을 보다 못한 교장선생님께서 '전 학생 교복 착용'의 단안을 내리신 겁니다.

처음엔 학생들의 반응이 나쁘진만은 않았습니다.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해군 복장을 연상시키는 하얀 세일러칼라가 달린 교복을 상상했던 거죠. 사실 10만원짜리 고급 청바지를 누구나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나마 있는 애들도 매일 그것만 입고 다닐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패션쇼'하는 것도 하루이틀 재미죠…
몇몇 학생들이 대여섯 개의 후보작(날아가는 하얀 색깔의 세일러복 포함-인기 폭발!!!!!)을 입고 강당에서 패션쇼를 하고, 학생과 학부모들의 인기투표를 거치는 요식절차가 있긴 했지만, 결국 교장선생님이 미리 점찍어 두신 더없이 얌전한 플랫컬러달린 흰색 블라우스와 플리츠 스커트가 낙착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3년 동안 그 칙칙한 곤색 치마를 입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1학년 때는 3년 동안 입어야 한다는 엄마의 극성에 커다란 스커트를 끌고 다니듯 입어야 했고, 3학년 때는 훌쩍 커버린 키에 커진 가슴 등등을 견디지 못해 꽉낀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다녀야 했죠.

키가 커져서 스커트가 짧아진 줄도 모르는 남자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스커트를 짧게 접어 입는다며 호통을 치기도 하셨습니다. 한창 뛰어다닐 친구들한테(남자애들만 뛰어노는 거 아니랍니다. 여자애들도 말뚝박기같은 놀이 한다구요) 때아닌 '얌전'을 강요하는 플리츠 스커트를 입혀 놓았으니 여간 불편하지 않았겠죠. 그래서 생겨난 게 바로 '체육복 패션'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교복 치마 밑에 체육복을 입는 겁니다. 교내에선 반드시 교복을 입어야 하고 딱 붙는 치마가 불편하긴 하고…
결국 생각해 낸 패션이 이 우스꽝스런 패션입니다. 체육시간에는 위에 걸친 치마만 벗고 나서면 되니 그 이상 간편할 수 없죠. 지금도 그 때 그 패션을 하고 떡볶이네 순대네 사먹으러 다니던 사진을 보면 참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 신문에 '여학생 교복 치마-바지 선택 권장'이란 기사가 실렸습니다. 여자애들도 치마 입고 얌전히 앉아 있지만은 않는다는 걸, 남자애들만 말뚝박기 하는게 아니라는 걸 선생님들도 아셨나 봐요.
벌써-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을 정도로 이제서야 날이 따뜻해졌습니다.

머지 않아 운동장에서 바지 교복입고 뛰어 노는 발랄한 여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체육복패션'도 나쁘지는 않았었는데….
그렇죠, 아줌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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