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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의한 언론자유의 침해인가, 조선일보의 자업자득인가.

북한쪽이 남북적십자회담의 공동취재단 일원으로 간 조선일보 기자의 장전항 입경 거부 사건을 놓고 '언론자유와 그간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북한쪽은 28일 오전 장전항에 도착한 남북적십자회담 남한쪽 대표단 16명 가운데 신문 공동 취재기자로 합류한 김인구 기자를 '조선일보'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입경을 거부했다. 결국 김 기자는 28일 오후 현대 금강호편으로 귀환길에 올랐고 29일 오전 동해항에 입항할 계획이다.

조선일보는 28일자 사설을 통해 이번 사건은 "'서로 다름' 속에서 공존 상생하자는 '6.15 정신'의 근본취지를 탁색시키는 것"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또한 중앙일보도 같은 날 '북의 남한언론 길들이기?'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북한의 이번 조처를 "자기네 '구미'에 맞지 않는 언론사라고 해서 거부하는 것은 우리 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이번 사건을 놓고 언론계와 언론학계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양비 양시론'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쪽의 '조선일보' 길들이기도 문제이고, 그렇게 북한에서 반응하도록 보수우익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조선일보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는 것.

한국기자협회는 이 사건과 관련해 "(북한이) 그동안 북한에 적대적이던 조선일보를 못마땅해 한 것은 이해가 간다"며 "그러나 남한 언론의 다양성과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본질로 하는 특성을 이해해서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를 허용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신문협회의의 입장도 기자협회의 입장과 비슷하다. 신문협회는 28일 성명을 통해 "특정 언론사의 입북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북쪽의 고유 권한이라고 하더라도 공동취재기자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적절한 조처가 취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김학수 교수는 '언론자유 침해'라는 측면에 비중을 두고 이번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김 교수는 "입경 거부는 말이 안된다"며 "고엽제 후유의증 군인들이 한겨레신문사에서 난동을 벌인 것이나, 북한이 조선일보의 입경을 거부한 것이나 똑같이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교수의 의견과는 달리 조선일보가 북한에서의 취재를 거부당한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민주언론운동실천연합의 한 간사는 "왜 북한에서 (조선일보의 취재를) 거부를 했겠는가"라며 북한의 태도가 당연하다고 반응이다.

대한매일신문의 한 기자는 "북한의 태도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그러나 조선일보는 황석영 씨의 인터뷰 거부 선언, 양민학살 관련 단체의 취재거부 선언에 이어 북한의 입경 거부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지금까지의 자신의 취재 행태를 냉정하고 돌아보고 옷깃을 여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이번 조선일보 장전항 입경 거부 사태와 관련한 정욱식, 김동민 등 두 명의 기자회원이 보내온 글이다.

조선일보 기자 입경 불허를 보며
북한 편협한 태도 문제... 조선일보도 자기 반성해야


정욱식 기자 civil@peacekorea.org

북한이 27일 남북적십자회담 공동취재단에 포함된 조선일보 기자의 입경을 또 다시 거부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은 26일 "조선일보 기자의 입경을 허락할 수 없다"라는 전통문을 남한 당국에 보낸데 이어 27일 하선을 불허함에 따라 김 기자는 현재 장전항에 정박 중인 금강호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조선일보 방북 불허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8년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이 처음 이루어졌을 때도 조선일보와 KBS 취재진들의 입북을 거부한 바 있다. 또한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들의 방북을 불허하였으나 김대중 대통령의 강력한 뜻에 따라 입북을 허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보수언론과 야당이 강력 반발을 보이고 있어, 자칫 정상회담을 계기로 급진전되기 시작한 남북관계에 돌출 변수로 작용할 우려마저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의 입북 거부 사건이 전해진 직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야당의원들은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북한 기자에 대해 입북을 거부한 것은 대표단 전체를 거부한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북측의 의도대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라고 강력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직접 당사자인 조선일보는 28일 신문에서 이 사건을 1.2.3면에 걸쳐 상세하게 보도하였다. 이 날 사설에서는 "북한 당국은 지금 남한언론 길들이기와 특정견해 소외시키기를 치밀하게 진행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먹혀들거나 우리가 그것에 말려들 때 우리는 조선일보의 취재활동 여부를 떠나 우리사회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가치들을 '북한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하나 하나 스스로 버리는 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중앙일보 역시 "北의 남한 언론 길들이기?"라는 제하의 사설에서"(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남북 두 지도자가 확인한 지금에 와서까지 종래의 폐쇄적 조처를 계속한다면 이는 앞으로의 화해·협력시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쁜 징조임을 북측은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주목할 점은 이번 사건을 통해 그 동안 반공반북주의를 고수한 대표적인 언론과 북한과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대립 축이 정부에서 남한의 냉전주의 세력으로 전이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적극적인 화해협력정책을 펴고 있는 정부를 궁지에 몰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어 정상회담이후 움츠려든 보수파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조선일보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된 97년 6월 24일 조선일보 사설과 이후 조선일보의 논조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파의 주장대로 '남한의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이 문제'라면 '북한을 인정하지 않은 극우반공주의 세력'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97년 6월 24일 사설 "김정일 물러나야"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결론부터 앞세워 김정일은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물러나야 한다. 김정일 정권은 사태(북한의 대기근을 말함)의 모든 책임을 지고 정권을 새로운 개혁-개방 잠재그룹에 이양해야 하며 지금까지의 주체사상 체제를 북한판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북을 지금같은 생지옥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은 수해도 아니고 '제국주의자'도 아니고 남한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김정일과 그 핵심 실세들의 잘못된 국가경영 탓이며, 오늘의 생지옥 상 하나로 김정일정권의 존재이유와 정당성의 근거는 1백% 소멸했다. 이런 정권 또는 그 10분의 1만 닮은 정권이 만약 남한에 있었다면 운동권 과 진보적 지식인과 일부 종교인들은 아마 벌써 '타도'를 외치고 분신소동들을 벌였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반김정일적 시각은 프랑스 지식인의 성명을 빌어 북한정권의 인권탄압을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로 규정하고 있는 1월 18일 사설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선일보는 탈북자문제를 비롯한 북한인권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김정일을 히틀러나 폴 포트에 비유해온 것이다.

남한의 대표적인 반인권적인 언론이 북한인권문제에 그토록 관심과 애정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북한정권과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을 비난하기 위한 더 없이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www.peacekorea.org [평화언론모니터] 참조).

이렇듯 조선일보는 단순히 북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사실상의 김정일정권 타도투쟁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보수언론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비난에 못지 않게 조선일보 스스로 반성해야할 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일보는 28일 사설에서 "남북간의 '6.15 선언'은 서로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대전제하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 것처럼,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내기에 앞서 자신의 보도성향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남한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으나, 조선일보 스스로가 남한사회 내부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파시즘적 속성을 갖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조선일보의 선정적인 반북주의 보도 성향이 정상회담이후 변했는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조선일보는 언론의 자유와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오히려 변화에 대한 요구를 '북한의 구미에 맞추라는 뜻이냐'며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와 다양성은 보도의 객관성과 시각의 가치지향성, 그리고 타자에 대한 존중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이 한 언론사를 상대로 적대적인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않으면서 방북 자체를 불허한다는 것은 화해·협력 시대에 걸맞지 않은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극우반공주의 세력들은 북한의 이러한 태도가 변하지 않는 자신들이 '자초한 결과'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선일보 기자의 잠입 실패 감상법
북한의 입국 거부와 조선일보의 궤변


김동민 기자 wanju@hanil.ac.kr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정상회담 때도 북한이 입국을 거부하다가 막판에 허용이 되어 겨우 따라가 취재를 할 수 있었는데, 이번 금강산 적십자회담 취재는 제동이 걸린 것이다.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던 북한이 이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북한의 처사를 잘했다고 칭찬할 일은 못된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일보의 항변과 해석에는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28일자 사설 <조선일보 기자의 입국 거부>에서 조선일보가 북한을 부정적으로 보도했다고 해서 취재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서는 안된다면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둥, "남쪽의 자유민주 사회는 의견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체제"라는 둥,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둥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여놓았다. 정말이지 고소를 금치 못하겠다.

묻노니, 조선일보는 "다름을 인정"하고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했으며,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왔는가? 단연코 말하건대 그러질 않았다. 만약에, 정말 만의 하나라도 과거에 그리 하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지금부터라도 그리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조선일보 구독운동에 앞장서겠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조선일보가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자유민주 사회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빚어진 폐해를 깨닫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할 것 같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사고방식이 여기에도 꼭 들어맞는
다.

의견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다양성이란 전체적인 구도에서도 고려해야 하지만 한 매체의 지면에서도 반영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파시스트 정치이념을 사시로 하는 특수신문이 아니라 종합일간지다. 조선일보가 어떤 신념에 입각하여 주의 주장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다른 의견도 존중하고 지면에 반영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리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매도하고 무참하게 짓밟았다. 그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장집 교수에 대한 왜곡보도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러고도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들먹일 수 있는 일인가? (이 지점에서 조선일보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의견을 지면에 반영한다고 항변할는지 모른다. 조선일보를 사랑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태도를 보더라도 조선일보는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논할 자격이 없다. 국가보안법이 바로 그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침략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댄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과연 북한이 현실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보는가? 조선일보는 오히려 '주전론'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북한의 군사력을 만만하게 보기 때문이 아닌가? 북한의 위협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형법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
음에도 불구하고 국보법을 보물처럼 여기면서 양심의 자유니 표현의 자유니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북한을 성토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고상한 언어를 욕되게 하지는 말라. 이 사설의 말미는 "조선일보의 취재활동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가치들을 '북한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하나 하나 스스로 버리는 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이것은 대단한 과장이요 현실호도가 아닐 수 없다. 단지 조선일보의 보도를 문제 삼았을 뿐인데 이렇게 연결시켜 놓았다. 대단한 기지다.
북한이 무어라 불만을 토로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것을 떠나, 3월 10일의 베를린선언 이후 정상회담까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조선일보는 시종일관 재 뿌리기 보도로 지면을 채워왔다.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 근본적으로 부정적이었으며 북한에 대한 불신과 혐오의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6월 14일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며>란 사설을 실었는데, 내가 보기에 정작 변화가 필요한 곳은 조선일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정적인 보도와 논평들은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 차원이 아니라 대단히 악의적으로 보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조선일보 기자의 잠입 실패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조선일보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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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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