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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저씨는 고추도 작잖아!"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너무 바빠 할 수 없이 탄 택시. 운전기사는 외국인처럼 보이는 아가씨가 타니, 이리저리 차를 돌려 더 먼길을 돌아갔다. 그러자, 그녀는 "아저씨, 운전 엉망이야!"라 항의를 했고, 택시기사 아저씨는 "으이, 씨팔!", 그리고 다시 그녀의 입에서는 "새끼!"라는 욕이 나왔다.

이에 다시 맞서는 아저씨, "얼굴도 못생긴 게 웃기고 있네."
그러자, 간 큰 그녀는 돈을 내고 택시에서 내리면서 아저씨의 거시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는 고추도 작잖아!"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인가?

그녀의 이름은 세 개다. 미희 나탈리 르므안느, 조미희 그리고 김별, 세 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가장 잘하는 불어, 모국의 한국어, 새로 배운 영어. 라면을 마요네즈에 버무려먹고, 김치도 마요네즈에 찍어먹는다. 동거는 좋지만 결혼은 싫다. 화장하는 건 더 싫다. 게이를 좋아한다. 왜? 다른 남자들보다 훨씬 친절하고 옷 잘 입고 말도 잘 통하니까..

이런 것들이 우리가 그녀에 대해 알아야 할 전부일까?

그녀는 두 살 때 벨기에로 입양되어 벨기에인으로 살다가, 1993년 자신의 뿌리를 찾아서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왔다. 그녀는 해외입양인 단체 모임인 '유로 코리안 리그', '유로 코리안 네트워크', '해외 입양 단체' 등을 만들어 150여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친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 찾기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며, 단편영화를 만드는 영화인이며,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세계 20만 해외입양인들의 권익 증진과 비자법 개선, 고국과의 연계 등을 위해 일하는 액티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하얀색 두건에 이국적인 액서서리를 여러 개 달고 나타났다.
작고 가녀린 얼굴, 큰 키, 마른 몸. 적당히 그을린 피부, 나는 그녀의 얼굴을 알지만, 그녀는 나를 모른다. 내가 그녀를 알아보고 일어나 미소를 던졌다. 그녀 또한 짧은, 하지만 따뜻한 미소로 내게 다가왔다.

- 특이한 액세서리를 많이 하고 있군요. 특히 이 동전 목걸이가 마음에 들어요.

"이건 상평통보 엽전이에요, 물론 가짜고요, 2만원에 광화문근처에서 산 거예요. 전 이 목걸이를 항상 하고 다녀요. 저의 입양번호가 6261인데, 이 상평통보는 1662년에 만들어졌대요.
배열은 틀리지만, 1.2.6.6. 같은 숫자가 들어간 이 동전은 꼭 저의 존재같아요. 나머지는 친구들이 준 반지와 팔찌예요."

- 89년, 91년, 그리고 93년 이후로 한국에 살고 있는 거죠? 살아보니까 어떤가요?

"이태원에서 프랑스 친구와 함께 살고 있어요. 유럽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유명한 반면, 한국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죠. 그저 '자동차와 아기를 수출하는 나라'정도로 알려져 있었어요.
지금은 물론 더 많은 것들이 전해졌지만, 내가 한국입양아가 아니었다면, 굳이 한국에 오지는 않았겠죠. 한국은 좋은 나라예요. 하지만 그만큼 이해하기 힘든 나라지요. 모든 것이 빠르고, 사람들은 느리고, 평등한 것 같지만, 차별도 심하고, 하지만 이제는 꽤 적응이 되었어요. 55퍼센트?"

- 참, '나는 55퍼센트 한국인'이라는 책을 냈지요? 어떻게 책을 내게 된 건가요?

"1988년에 독립영화 <입양>을 제작했고, 그 영화가 대상을 받았어요, 한 프랑스 매체가 저에게 관심을 갖고 인터뷰를 했지요, 저에게 한번 책을 내보는 게 어떠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이미 그때는 입양에 관한 여러 책들이 있었고, 전 겨우 20살이었어요. 인생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책을 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죠. 한국에 와서 정말 입양인들을 위한 일도 해보고, 내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지금쯤 책을 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출판사인 '김영사'쪽에서도 저나 해외입양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죠."

- 당신의 책을 읽었어요. 슬프면서 또 재미있더군요. 책을 통해서, 또 그림과 영화를 통해서 당신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일단, 저 자신보다는 해외입양아들을 위해서 책을 썼어요. 또 해외입양아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이해를 위해서 썼고요. 하지만 보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즉 세상에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리고, 그것이 이타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동질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 그럼 다음 번에 책을 출간하게 된다면, '나는 70퍼센트 한국인이다'라는 식의 제목이 나올 가능성도 있나요?

(웃음) "아니요, 다음 번에 책을 출간한다면, 전 세계에 있는 해외입양아들이 Before and After, 즉, 한국을 오기 전, 그리고 한국에 다녀간 후의 일들에 대해 쓰고 싶어요. 많은 입양아들은 그들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기 위해 모국에 다녀가요. 그들은 기대를 갖고 와서 실망을 하고 가기도 하고, 아무 기대도 없이 왔다가 기쁨을 찾아가기도 하지요. 그들과의 대화와 그들이 보내주는 편지 등을 묶어서,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 한국 안의 입양아들, 한국 밖의 입양아들을 재조명해보고 싶어요."

-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나요? 앞으로...

"한국이요."

- 그럼 한국남자와 결혼해서요?

"아니요, 프랑스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 설명이 필요한 것 같군요.

"한국남자를 사귀어 보았어요. 아무리 열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가족들까지 열려 있지가 않더군요. 그 사람들 대부분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중요하죠. 전 불어가 모국어예요. 언어와 문화차이는 극복하기에 가장 힘이 들지요. 대부분의 한국여자들이 결혼할 때 여러 가지 조건들을 내세우듯이, 저에게 불어를 하는 남자는 우선 1순위라는 이야기일 뿐이에요."

- 그럼 아이를 낳을 건가요?

"아니요, 전혀 낳고 싶지 않아요. 전 아이를 훌륭히 키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제가 아이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에요, 전 아이들을 정말 사랑해요. 다만 제가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그런 불행을 또 한 번 만들 수는 없어요."

- 만약 결혼한 사람이 아이를 원한다면요?

"이혼이지요."

이혼이라는 말을 너무도 단순하고 쉽게 하는 그녀에게서, 복잡한 어둠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그녀의 조그만 얼굴을 가득 물들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에 대한 아픔일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일까?

(이어진 기사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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