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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번 것만을 가지고 사는 가치관이 정립되어야겠다. 땀을 흘리지 않고 쉽게 재물을 얻으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재물을 얻으려고 하여도 안된다. 명예를 가지고 재물을 취하려 해도 안된다. 재물은 땀을 흘린 대가여야 한다. (중략) 앞으로 우리의 경제가 특혜를 받는다든지 요행에 의하여 움직여도 안된다. 우리는 정당한 위험부담을 하고 내 손으로 떳떳하게 벌어서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
어느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부적절한 주식 투자로 물의를 빚고 있는 송자 교육부 장관이 지난 98년 7월 어느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삼성전자 사외이사 재직 당시 회사 돈을 빌려 취득한 주식으로 16억원의 시세 차익을 올린 송자 장관의 말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사외이사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땀'은 커녕 자기 돈 한 푼 움직이지도 않고 '재물'을 탐할 수 있었을까.
사외이사도 실권주를 배분받는 한 사람이었다거나, 회사 돈을 빌린 것도 당시의 관행이었기에 별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대답은 우리의 뒤집어진 속을 바로잡아 주기에는 어림없다.
송자 장관이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있던 98년부터 2년 간은 우리 경제가 IMF 위기를 겪은 이후 대기업 사외이사제의 올바른 운영이 유난히 강조되던 시기였다.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갖고 경영을 감독해야 대기업의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 마당에 송자 장관은 회사 돈을 이용하여 앉아서 16억원을 버는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그런 사외이사가 어떻게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주주들의 이익을 옹호할 수 있었겠는가. 송자 장관의 행동은 막대한 재물을 얻는 대신, 사외이사의 생명인 독립성을 포기해버린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설혹 법률적으로는 실권주 배정에 따른 행위여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덕적으로는 이미 쉽게 결론이 내려지는 일이다. 다른 자리라면 혹시 모르겠다. 이 나라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그리고 조만간 부총리로 승격될 자리가 아닌가.
애당초 송자 장관이 교육부 장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이 많았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대학교 총장 재직 시절 이미 자신과 가족의 이중국적 경력으로 인해 거센 퇴진 운동을 받았던 그가 나라의 교육을 책임진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선뜻 납득되지 않았다.
그만큼 김대중 정부가 인물난에 허덕여서일까. 아니면 인사가 대통령과의 친소(親疎)관계에 너무 좌우되어서일까.
인사권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인사를 방치해둘 일은 아니다. 아무리 정치판이 혼탁하고, 아무리 특혜가 판치는 사회라 해도, 우리 아이들의 교육만큼은 깨끗하고 도덕적인 인물에게 맡겨달라는 것이 과연 지나친 요구인지, 인사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의 말과는 정반대로 땀흘리지 않고 재물을 탐한 책임을 지고 본인 스스로가 진퇴를 분명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는 위치라면 말이다.
그래야 '내 손으로 떳떳하게 벌어서' 살기 위해 언제나 '위험부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뒤집어진 마음속이 가까스로 진정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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