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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26일 경기도 국정감사에서는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과 증인으로 출석한 임창렬 도지사 간의 언쟁이 있었다.

질의에 나선 김 의원은 임 지사가 경기은행 사건 재판에서 뇌물수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음을 상기시키며 형량을 물었다. 이에 대해 임지사는 답변을 거부하고, 자신은 무죄추정의 상태라며 유·무죄를 판결하는 것은 국회가 아니라 법원이라고 반격하였다.

두 사람의 언쟁이 계속되자 여당 의원들이 임지사를 엄호하고 나섰고, 이에 김의원이 "도둑놈 비호하는 게 국회의원이냐"고 반발하자 정회가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나는 김문수 의원의 질의가 적절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집행유예 상태에 있는 도지사가 경기도의 환경노동문제를 제대로 챙길 수 있는지를 따질 수는 있는 문제이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서는 이날 국정감사의 범위에서는 벗어났다고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국회라는 곳이 정해진 의제만을 기계적으로 준수하는 곳은 아니다. 설혹 의제를 벗어나는 질의가 있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인 국회 운영 방식이었다.

정작 당혹스러웠던 것은 임창렬 지사가 보여준 너무도 당당한 태도였다. 물론 법률적으로 임지사의 말은 맞다. 아직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이므로 임 지사는 무죄추정을 받는 신분이며, 그의 유·무죄를 가리는 곳은 법원이지 국회가 아니다. 그리고 선출직이다. 누가 그같은 사실에 시비를 걸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임 지사가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있게 답변을 거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거북하기만 하다. 자신에 대한 무죄추정 원칙을 내세우는 그의 모습에서는, 경기도민에게 누를 끼치고 국정에 누를 끼친데 대한 송구스러움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99년 7월, 임 지사와 부인 주혜란 씨가 경기은행 퇴출을 막아 달라는 청탁과 함께 각기 1억원, 4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 임 지사의 사퇴는 시간문제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부부가 함께 검은 돈을 받은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어떻게 얼굴을 들고 도지사의 직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복잡한 법률적인 문제 이전에 단순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임 지사는 버티기로 일관하였다. 옥중결재를 고집하며 지사직을 지켰고,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에도 여론의 사퇴압력을 물리치고 도정(道政)에 복귀하였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금까지 지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검은 돈을 받았는데도, 그리고 당사자들도 그러한 사실을 시인하고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었는데도, 아직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고 누가 해임할 수 없는 선출직이라는 이유로 임 지사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지사직을 지키고 있다.

최근 부도덕한 벤처기업과의 유착을 놓고 금융감독원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일개 간부의 도덕적 해이만을 나무라고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98년 지방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각별히 신임하며 공천했던 인물이 죄를 짓고도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는데, 그리고 여권 내의 누구도 그것을 나무라지 않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금융감독원같은 기구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고 있는 것은 부질없는 일 아니겠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의 정부'의 도덕적 긴장을 지키려했다면 임지사를 진작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어야 했다. 선출직인데 누가 어쩌겠느냐는 말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국민의 정부'의 도덕적 해이는 금융감독원의 일개 간부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권력의 지근(至近)거리에서부터 진작에 시작되고 방치되어 왔음을 임 지사의 당당한 태도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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