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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워요... 많이. 많이. 밤새 떨어요..."
3일 늦은 밤 대전 신탄진내 한 제지회사 기숙사에 기자가 들어서자 'D,씨(32. 베트남 산업연수생)는 몸을 움추리며 어눌한 한국말 솜씨로 몇번 씩 같은 말을 반복한다.
철제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해 만든 이 회사의 숙소에는 바닥에 전기 보일러가 깔려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와 방안 공기가 서늘했다. 회사측에 춥다는 얘기를 해보지 그러냐고 하자 "했어요"하며 빙긋 웃기만 한다.
'벌써부터 추운데 엄동설한 혹한을 이 방에서 어찌 넘길까,하는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남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온 지 1년 6개월을 맞고 있는 'D,씨는 문제의 '베트남 한국말 교재'를 대전에 처음 보급한 장본인이다. 즉 대전에서 유일하게 교재의 원본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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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수원에 있는 베트남 친구에게 거금 만원을 주고 사왔단다. 생각했던대로 책은 값어치를 톡톡히 했다. 인근 신탄진 베트남 동료는 물론 대전 대화동 1.2공단 동료들이 복사하고 복사해서 급속도로 해적판(?)이 번져 나갔다. 기자가 입수한 해적판을 건네 보이자 표지에 써 있는 글을 가르키며 자기이름 이란다.
'D'씨의 자취방에는 이 책외에도 서로 다른 4권의 한국말 교본이 꽂혀 있었고 베트남 연수생마다 최소 2-3권의 교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많은 교본중에 특별히 이 책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 제일 도움돼요! " 대전 대화동 1공단에서 염직회사를 다니는 팔만완(25.베트남인,8개월 거주)씨는 교재를 펴서 "너무 피곤해요. 쉬고 싶어요"라고 쓰여진 문장을 가르키며 "이 책...(보고) 첨 배웠어요"한다.
내친 김에 회사에서 관리인들이 욕도 하느냐고 묻자 둘러 앉은 예닐곱명이 하나같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함께 동행한 '외국인 노동자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장규석(34)씨는 "한국인 관리자들이 단체사람들 앞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거리낌없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해댄다"며 "우리마저 없을땐 얼마나 심하겠냐"고 귀뜸한다.
한 베트남 연수생은 니야씨를 때려 숨지게 한 한국인 노동자 비 아무개씨를 잘 안다며 비 아무개씨가 죽은 '니야'말고도 다른 여러 베트남 여성 동료들의 팔을 비틀고 심하게 때렸다며 연신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되뇌였다.
어렵게 수소문해 화제의 교재를 직접 쓰고 만든 베트남 저자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베트남 인력 송출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레기완(27)씨는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한국에 나와 있는 베트남 연수생들을 만나며 실생활에 필요한 용어를 가르쳐 주고 싶어 혼자 만들어 보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 때문에 이 책이 오마이뉴스 기사에 쓰여진 것처럼 모든 베트남 산업연수생들이 보는 교재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보도이후 파급되고 있는 영향을 의식한 듯 "이 책이 베트남 연수생들에 대한 인권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그러기를 원치 않고 그런 일도 없다"고 말했다.
레기완씨가 만든 한국어 교재는 모두 70페이지로 첫 단락은 명사,동사,부사,접속사 등을, 둘째 단락은 인사말 등 기본회화를, 그리고 나머지 단락 30여 페이지는 회사의 노동환경과 거주 환경개선, 인간적인 대접을 요구하는 내용의 회화체로 구성돼 있다.
한편 '외국인 노동자를 생각하는 모임'(대표 김규복 목사)은 4일 오전 11시 대전지검을 방문, 지난 달 26일 한국인 노동자에게 맞아 숨진 베트남 여성근로자 <'니야, 치사사건>과 관련 "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단 한명의 베트남인 진술도 듣지 않는 등 수사가 미진하고 풀리지 않는 여러 의혹이 있다"며 "전면적인 재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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