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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누군가를 기다리며 사는 것 같다. 솔로들은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며 살고, 옛사랑을 기다리며 산다. 이산가족들은 이북의 부모형제를 기다리며 살고, 혁명가들은 잃어버린 동지를 기다리며 산다.

11월 22일(수)부터 11월 25일(금)까지 서울시립대학교 소강당에서 열린 극예술연구회의 제66회 정기공연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연극의 두 주인공 Vladimr(디디)와 Estragon(고고)이 '고도'라는 사람이 오길 평생을 기다린다. 디디와 고고, 두 부랑자는 자신들의 처지를 바꿔줄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데 그는 결코 오는 일이 없다.

팜플렛에 나온 작품해설에서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1906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난 사무엘 베케트는 프랑스에서 1945년부터 극작 활동을 시작, 1952년 <고도를 기다리며>를 발표함으로써 부조리(Theater of the Absurd)라는 이색적인 장르의 극형태를 창시함과 동시에 독보적인 족적을 남겼다.

세계 양차대전의 소용돌이와 고도로 발달된 현대문명 때문에 인간의 존재와 삶의 문제들이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생각들이 증대 된 시기에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실존철학과 함께 나타난 연극사조가 부조리극이다. 부조리극은 사실주의에 안주해왔던 전통적인 연극기법에 반기를 들고 소위 '反연극'의 기법을 통하여 부조리한 상황을 제시한다.

인간 자신의 주체성 그 자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즉 관객의 불확실하고 이상한 조건이 실존한다는 것을 관객으로 하여금 직면하게 하는 문제의 제기 그것이 베케트 문학의 테마이다. 그런 탐색은 절망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것으로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대단히 고결한 진취적인 정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공포가 없는 것이고, 헌신적이고 비타협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 무료한 시간들을 신을 벗으며,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지껄이며 보낸다. 지나가는 행인 포조와 럭키를 만나 시간을 때우기도 하지만, 언제나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따분해한다.

밤이 될 무렵(밤이 되면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이므로 그동안은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 소년이 나타나서 고도가 오지 않음을 전한다. 디디가 소년에게 고도에 관하여 질문을 하지만 그의 형체에 대해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디디와 고고는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고 그들은 그 기다림의 연장선에서 가려해도 갈 수 없고, 죽으려해도 즉을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포조와 럭키 역시 어느날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어도 늘 갈은 길을 걸으며 그 어딘가를 향해 간다.'

디디와 고고는 모두 불행하지만 자신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말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목이나 메자. 고도가 안오면 말이야. 만일 온다면 살게 되는 거지."
또한 포조는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그리고 또 떠나는 거요" 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주인이 아니며 그저 목숨이 붙어 있는 유예기간 동안 고통스럽게 살아갈 뿐이라는 것이 이 극에서 얘기하는 것이다. 이 연극은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돌을 굴리지만 이내 다시 떨어지고 마는 시지프스의 운명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한 단면이 아닐까!

연출과 무대감독을 맡은 김기호(산업디자인학과 94) 씨는 "우리들 중 누가 얼마나 자신의 존재와 삶의 문제에 있어서 삶의 질서와 자아의 주체성을 찾고 있다 단언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차피 이제 삶의 부조리는 어쩌며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디디와 고고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부조리한 상황이라 하지만 어차피 우린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라고 이번 연극을 소개하고 있다. 무겁게 보이는 주제이지만 실제로 연극은 코믹스러운 면이 많았다. 특히 포조의 뻔뻔스러운 연기는 관객들의 끊임없는 웃음을 자아냈다.

극예술연구회에서는 정기공연 제18회와 제48회에서 이미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 적이 있다. 3번째로 공연한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포조의 하인 럭키의 독백이었다. 5분정도 쉴틈없이 침 튀기며 쏟아내는 시대에 대한 경고메시지는 무섭기도 했다.

"컴퓨터와 디지털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은 더욱 더 마르고, 마르고 또 말라" 라는 럭키의 대사처럼 이젠 우리의 눈물도 다 말라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연극 속에서 '고도'는 사람의 이름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말에서의 고도(孤島), 즉 외로운 섬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들은 저마다 가슴 속에 자신들만의 섬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나는 오늘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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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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