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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이스라엘을 여행하고 키부츠에서 생활한 이야기들을 <샬롬! 이스라엘>을 통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이스라엘에도 지하철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지하철이 발달되지는 않았다. 가장 발달된 대중교통수단은 에게드 버스이고, 지하철은 거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지하철이 있는 도시는 하이파뿐이기 때문이다.
하이파에 있는 까르메리트 지하철은 도심의 파리 광장 역과 카르멜 지구의 간하엠 역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전동차 두 대의 시스템이다. 정거장도 6개 밖에 되지 않는 이 까르메리트 지하철이 끝에서 끝까지 달리는 시간은 약 6분에 불과하다. 노란색으로 된 아치형 입구로 들어가 지하로 내려가면 승차권 자동 판매대가 보인다. 98년 당시 요금은 4.3셰켈로 1500원 정도의 가격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의 지하철비는 너무 싼 것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동 개찰기에 승차권을 통과시켜서 들어가면 플랫폼이 나오는데, 그 플랫폼이 계단으로 되어있다.
엉? 이게 무슨 지하철이람?
플랫폼은 낮은 경사로 이루어진 계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1~2분이 지나니, 전동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빨간 전동차가 들어와 서는데, 재미있는 것은 전동차 안에도 계단이 있다는 것이다. 전동차 안에 계단이 있는 이유는, 광장에서 카르멜지구로 올라가는 길은 비탈진 산길이고, 그 산길을 전동차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선으로 올라가다 보니, 지하철 플랫폼도, 전동차 안도, 모두 계단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한 정거장, 한 정거장, 산 쪽으로 높이 올라갈수록, 경사가 심해져서, 플랫폼의 계단경사도 높아지고, 전동차의 경사도 높아진다.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까르메리트 지하철은 파리광장, 솔렐 본느, 하네빔, 골롬보, 마사다, 간하엠의 여섯 정거장을 지나간다. 하이파를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까르메리트가 주는 색다른 지하철 경험을 놓치지 말자!
카르멜지구에 도착하면, 이 곳의 세련됨에 놀라게 된다. 고급 호텔과 은행들이 즐비하고, 도로변에는 예쁜 옷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이탈리안 분위기의 파스타집과 레스토랑, 이 곳은 꼭 우리나라의 홍대 앞이나, 압구정동과 흡사하다.
이 곳에는 하이파대학과 테크니온대학이 있는데, 하이파대학은 이스라엘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좋은 인문대학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대학과는 달리 하이파대학은 캠퍼스가 없다. 버스를 타고 내리면, 이 곳이 학교인지, 터미널인지를 분간하기가 힘들다. 열 몇 개가 넘는 버스정류장 간판이 주욱 늘어서 있는 모습은 꼭 버스 터미널 같고, 바로 앞의 상점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이파 대학은 건물이 하나이다. 이 건물지하에는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이는 터널식 도서실(library)이 있다. 내가 식견이 좁아서 그런 것이겠지만, 하이파대학의 도서실은 정말 놀라웠다. 유리창으로 넘어 보이는 도서실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그 도서실은 정말 끝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유명한 인문대학답게 내 눈앞에 보이는 도서실은 말 그대로 책들의 저장고였다.
지하의 루벤, 에디스 헥트 박물관에서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고고학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상으로는 30층이나 된다. 건물의 최상층에는 하이파 시가지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하이파대학은 그 것 자체가 높아서 30층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시가지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밤이라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하이파 대학 빌딩 중간의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배가 고픈 나와 신디는 하이파대학 지하 매점에 가서 슈니첼(닭살을 얇게 떠서 튀긴 일종의 치킨까스)을 빵속에 야채와 함께 넣은 것을 사먹었다. 테이블에 앉아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더니 플래쉬가 번쩍 빛이 났다. 갑자기 그 매점에 앉아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왔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매점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방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대학의 학생들은 대체로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다. 16세 정도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18살이 되면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 정도 군대를 가기 때문이다. 20살이 넘어서 제대를 한 후, 학생이 되거나, 또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학교에 입학하기도 하고, 학생이 되는 경로가 우리나라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이스라엘의 젊은 친구들은 군대를 가는 것은 국가를 위한 국민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도 역시 군대에서 보내는 2년에서 3년 동안의 시간을 무척 아까워한다. 이스라엘의 군대는 우리나라보다 더 자유롭다. 시골 동네의 쇼핑센터, 그 곳에는 한 달에 서너 번씩 군용 버스와 트럭 몇 대가 주차한다. 군인들은 두세 시간 정도, 쇼핑도 하고,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락도 하면서, 사람들 속에서 군인으로서의 조그만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군에서 제대를 하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더 열심히 돈을 번다. 단, 키부츠에서 생활하는 키부츠닉은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많지 않다. 키부츠에서 교육비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학생들은 25살, 26살의 늙은(?)나이에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도 많았다. 비록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다들 열심히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학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나라가 다르고, 제도가 다르며, 그만큼 그들의 의욕과 마인드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이라 히치하이킹도 잘 안되고 무서울 것 같아, 버스를 탔다. 버스안에서 나와 신디가 모두 1시간 정도를 졸았다. 누군가 어깨를 흔든다. 버스를 타자마자 버스터미널이 어디냐고 물어본 나에게 친절한 대답을 해준 이름모를 하이파대학의 여학생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한다며 웃는다. 그녀의 친절한 미소 속에서 하룻동안의 하이파 여행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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