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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울 팝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이야기 음악회가 김천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을 알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아 이거 보통 건수가 아니구나!"였습니다.

사실 그렇게 가정적이지 못한 제가 가끔은 아내에게 점수를 좀 따고 싶어서 이것저것 제의를 하곤 합니다.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떠냐?', '피자를 먹으러 가자?', '둘이서 노래방을 가보자'는 둥의 제안을 합니다만 그렇게 반짝이는 즐거움을 주진 않습니다. 많은 점수를 얻기에는 약간 부족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하지만 김천에서 오케스트라음악회를 볼 수 있고 더구나 그 유명한 유진 박의 전자 바이올린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겐 아주 매력적인 "건"으로 다가왔습니다.

더구나 평소 공연예술을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생각했지요. 그래서 마치 큰 전쟁에서 이긴 장수처럼 집에 전화를 해서 오늘밤 팝스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가자고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 솔직히 고전음악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또 즐기지도 않습니다. 기껏해야 비발디의 사계 정도 흥얼거리는 정도... 그러니 아내에겐 선물이 되겠지만 저에겐 고충이 될 수도 있는 이 오케스트라 공연이 그나마 팝스와 이야기 음악회라는 문구가 저에겐 위안을 주더군요.

그러나 그 동안 고전음악을 사람들과 친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 온 서울 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여러모로 저의 고전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던져 버리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앞서 말했다시피 고전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전문적인 비평은 엄두도 내지 못하며 다만 고전음악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본 느낌을 말하는 정도로 이 글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12월 7일 오후 7시에 김천 예술 문화 회관에서 열린 하성호가 지휘하는 서울 팝스오케스타라의 첫 연주곡은 칼렌 서곡으로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곡이라 참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영광의 탈출, 워터멜론 맨을 거쳐 Love is many splendored thing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아 그래서 팝스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고전음악 공연이 무척 지루할 것 같아 프로그램을 쥐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 곡 끝나면 몇 곡 남았으니 시간이 얼마 지나면 마치겠다라는 계산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친숙한 곡 선택, 그리고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들을 수 있는 지휘자의 구수한 입담 등으로 다음 번엔 또 어떤 곡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공연에서 놀란 것은 우리가 흔히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손뼉 치는 순간을 착각하는 것도 실례라고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곡 연주 도중에 그것도 지휘자가 관객을 향해 돌아서서 박수를 유도하는 몸짓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고전음악을 들으면서 트로트를 듣듯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는 희한하지만 흥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공연의 압권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가운데 유진 박이 무대 중앙으로 나와 전자 바이올린으로 유행가 "바꿔"를 연주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유진 박은 바이올린을 마치 기타를 연주하는 자세로 연주하곤 했으며 지휘자가 느닷없이 관객 속에 있는 초등학생을 불러내서 지휘대에 세우고 지휘를 하게 한 것은 정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을 가지게 주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카타르시스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성호가 연주하는 서울팝스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밝혔듯이 김천시민에겐 너무 수준 높은 "세 박자" 와 "아빠의 청춘"의 연주를 마지막으로 공연을 마쳤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래서 간사하다고 할까요? 너무 어려운 고전음악도 우리 같은 문외한에게는 문제지만 너무 쉬워서 흥은 나지만 한 곡목이라도 어려운(?) 곡도 연주했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무슨 요리든지 양념이 필요한 것처럼 이런 예술 공연에도 양념이란 것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트로트는 한 곡 정도로만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 공연을 보고 나서 느낀 점은 과연 고전예술이란 것이 꼭 항상 근엄한 신사의 모습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순박한 이웃집아저씨가 되는 것도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여하튼 참 흥겨운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린아이들이 칭얼거리는 소리와 고질적인 핸드폰 울리는 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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