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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주연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영화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인 이 영화를 보면 두 남녀가 왜 잠을 이루지 못하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애틀에서 잠을 못 이루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

워싱턴 주의 주도인 시애틀은 커피로 유명한 곳이다. 속으로 '아~하~'하고 이미 짐작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커피가 유명한 만큼, 커피의 수요도 그만큼 높다. 그러니 시애틀에서 맛있는 커피를 여러 잔 마신 후, 밤마다 잠을 못 이루게 되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커피가 유명하다 보니,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도 많이 생겨났다. 우리에게 친숙한 스타벅스(StarBucks Coffee)의 본고장도 시애틀이다. 스타벅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페라면, 시애틀에서는 스타벅스보다 더 유명한 카페가 있다. 바로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Seattle's Best Coffee)이다.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는 1970년에 문을 열었고, 스타벅스가 그 뒤를 이어 1년이 지난 1971년에 그랜드 오픈을 했다. 스타벅스가 1980년대 이후 세계적인 카페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성공적인 마케팅때문일 것이다. 스타벅스는 GE, 제록스 등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마케팅 성공사례로 일컬어지는 흔한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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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즈 베스트 커피 명동점
ⓒ 배을선
그렇다고,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가 시애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타벅스가 오픈한 전세계 지역에는 2~3년 뒤에 항상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가 들어서니 말이다.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는 긴 이름 때문에 줄여서 SBC라고 불린다.





<서울에도 SBC가 있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근처에는 서울판 SBC가 있다. 강남역의 서울즈 베스트 커피(Seoul's Best Coffee)라는 곳이 한국의 SBC로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SBC의 원조인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결국 커피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야 말았다.

2년전부터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던 스타벅스, 홀리스(Holly's), 시애틀 에스프레소(Seattle Espresso), 하우스 브랜트(HausBrandt) 등이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이하 SBC)와 함께 커피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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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벅스 커피 명동점
ⓒ 배을선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주연했던 영화<유브 갓 메일>에서 맥 라이언이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진 커피잔으로 커피를 마시는 장면 때문에 스타벅스라는 카페가 한국사람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왔다. 스타벅스는 한국에 이미 10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다.

SBC와 스타벅스.
국내에 첫 문을 연 SBC 명동점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스타벅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타벅스가 초록의 느낌을 많이 준다면, SBC의 느낌은 알록달록했다는 것뿐이다. 경쟁사로 보이는 두 카페지만, 스타벅스의 매니저는 SBC를 제집 드나들 듯한다. 인터뷰 중인 SBC의 매니저에게 "저렇게 놀러와도 되느냐?"고 물으니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두 미국 카페의 분위기가 모두 자유롭고 여유로운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시스템을 알아야 주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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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템을 알아야 주문하기가 쉽지요!
ⓒ 배을선
SBC와 스타벅스에서는 시스템을 알아야 주문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햄버거집에 왔다고 생각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어떤 커피를 먹을 것인지를 정하고, 얼마나 큰 컵에 먹을 것인지를 정하고(Short-8 oz / Tall-12 oz / Grande-16 oz), 카페에서 먹을 것인지, 가지고 나갈 것인지('테이크 아웃', '테이크 어웨이', '투 고'라는 말이 여기서 아주 적절하게 쓰인다)를 정하면 된다. 배가 고픈 사람이라면 계산대 옆에서 조명발을 받으며 반짝이는 유럽식 쿠키나 미국식 치즈케익 등을 주문하자. 출출함을 때울 간단한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할 것이다.

계산을 했다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커피가 나오는 테이블 앞에서 줄을 또 서야 한다. 바로 이 점이 햄버거집과 다르다. 계산하는 직원과, 커피를 만들어주는 직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간혹 직원들도 헛갈려서, 뭘 주문했냐며 물어 보거나,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할 때가 있으니, 자신이 뭘 주문했는지, 영수증은 꼭 챙기고 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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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어 보이는 케익들, 군침은 돌지만...
ⓒ 배을선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커피를 가지고 나갈 사람이라면, 직원들의 배려가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질 것이다. 커피를 담은 종이컵이 뜨거워서 손님이 화상을 입을까봐 두 개의 종이컵을 포개주기 때문이다.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즐길 사람이라면, 테이블이 없어서 기다릴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 두 카페에 오는 사람들에게 주문은 자리확보에 밀린다. 자리부터 잡고, 주문을 하고, 중간에 좋은 자리가 나오면, 좋은 자리로 또 한번 옮기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한국적인 것이다. 카페에서도 살아있는 풍수지리설의 참맛을 체험할 수 있다.



<재떨이 찾지 마세요. No Smoking Area!>

모든 애연가들에게 있어 카페는 안식처이다. 커피와 담배는 술과 담배처럼 좋은 인연(잘 어울려 보이지만)이기도 하며, 나쁜 인연(함께 즐길수록 몸에는 치명적이라니...쯧쯧)이기도 하다. 카페에서 담배를 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SBC와 스타벅스에서는 어림도 없다. 금연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술집을 제외한 모든 실내가 금연이듯이 이 두 카페 역시 철저한 미국식 금연구역이다. 그래서 애연가들은 이 두 카페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된다. 맛있는 커피를 먹자니, 가고 싶기도 하고, 담배를 피자니, 한편으로는 망설여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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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프서비스, 치우는 것도 손님이 다 해요. 물, 빨대, 휴지 다 있지만, 재떨이는 없네요!
ⓒ 배을선
그런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카페, 즉 두 카페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카페가 여기에 있다. 바로 홀리스, 시애틀 에스프레소와 하우스브랜트이다. 이 세 카페는 SBC와 스타벅스의 맛과 멋 등, 전체적인 풍을 흉내내면서,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을 나누어 차별화를 선언했다. 또한, 시애틀 에스프레소와 하우스브랜트에서는 손님이 주문을 하면, 테이블까지 커피를 서빙해 준다. 홀리스는 곳곳에, 시애틀 에스프레소는 대학가 주변에, 하우스 브랜트는 역삼동에 직영점이 한 곳 있다.

<궁금... SBC와 스타벅스에서는 꼭 재즈가 흘러야 한다!>

참 이상도 하지. 두 카페에 가면 다른 음악은 들을 수 없다. 오직 재즈가 흘러나올 뿐이다. 커피와 재즈, 그렇다면 홍차와 클래식이 안성맞춤일까? 커피를 마실 때 재즈음악이 가장 안정적이고 산만하지 않으며, 시끄럽지 않다고 한다. 뭐 이유를 대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SBC와 스타벅스 모두 시애틀 본사에서 재즈씨디를 제공받고 있다고 한다. 본사에서 재즈음악을 시즌별로 녹음해 전세계 매장으로 보내고, 매장에서는 제공받은 씨디만 틀 수가 있다고 한다.

<시애틀 커피가 도대체 왜 인기인가?>

셀프서비스, 그렇다고 커피값이 싼 것도 아니다. 평균 4000원대의 커피값이면 사실 한 끼 식사비. 두 사람이 가서 커피 두 잔에 치즈케익을 하나 주문해도 만원이 훌쩍 넘는다. 거기에 담배도 못 피우지... 그래도 사람들은 그 곳으로 간다. SBC와 스타벅스 커피가 도대체 왜 인기인가?

SBC의 홍보담당 매니저인 크리스 씨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첫째는 '맛' 때문이다. 시중에 까페라떼 커피제품이 나와 있지만, SBC의 풍부한 커피 맛과 종류는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방커피에도 질렸고, 밋밋한 원두커피맛에도 싫증난 사람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맛! 맛! 맛!"

둘째는 호기심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이라고나 할까? 처음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들은 미국인들, 그 다음이 미국에서 공부한 유학생들, 외국인들이었다고 한다. 향수와 추억을 되살리는 공간으로서의 카페가 이제는 평범한 대중들이 호기심때문에라도 한번씩 와 보는 장소가 되었다. 그 곳에 가면 뭔가 특별한 게 있을까?

셋째, 유행! SBC와 스타벅스 풍을 흉내낸 카페가 하나둘씩 생겨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미국식 카페는 미국식 패스트푸드점처럼 유행이 되어간다. 맥도날드, 버거킹에서 간단한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거나, 토니로마스, 아웃백 스테이크에서 꽤 비싼 저녁식사를 하고, SBC에서 커피를 먹는 일이 이제는 유행이 되어간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시애틀의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서울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온갖 상념들이 서울의 뇌리를 쥐어뜯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 잠자리에 들면서 드는 상념 - 시애틀즈 베스트 커피 명동점의 규모는 4층 건물에 170석이 마련되어 있고, 정직원만 30명이다. 무엇보다 명동점은 전세계 SBC 체인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체인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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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매장인 SBC 명동점
ⓒ 배을선
스타벅스만 해도 벌써 10개의 체인점이 있고, 2004년까지 한국내 100여개의 체인점을 개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 있는 두 카페의 규모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 테이블은 항상 부족하다는 것, 그래서 자리쟁탈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날카로운 의식없이 유행이라는 녀석을 쫒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왠지 씁쓸하다. 한국이 전세계 기업들의 '장사하기 가장 쉬운 곳'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체인점의 수가 국제화를 재는 척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 방의 불을 끄면서 드는 상념 - 커피는 물론, 커피메이커인 여러 기계들과 인테리어 제품들, 냅킨과 종이컵까지 오리지날 미국산이다. 시애틀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나라가 커피생산국도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커피가 수입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냅킨과 종이컵까지 꼭 수입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그 쓰레기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맛도 좋고, 유행도 좋다. 그리고 호기심도 좋다. 그러나 쓰레기는 안 된다. 그러니 SBC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커피를 주문할 때, 종이컵대신, 머그(Mug)에 달라고 주문하자고. 머그에 나오는 따끈따끈한 커피, 쓰레기를 줄여서 좋고, 머그에 마시니 커피맛도 더 깊다.

- 이불을 뒤척이면서 드는 상념 - 한편으로는 그들의 마케팅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미국 시애틀의 파이크 클레이스 마켓의 스타벅스 1호점에는 테이블이 5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스타벅스 명동점은 200명 수용의 4층짜리 건물이다. 본국보다 남의 나라에서 더 장사가 잘 되어 보이는 미국의 커피 장사를 생각하면, 왜 우리나라의 녹차와 전통과일차 등은 커피같은 시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다. 맛이라면, 쓰기만 한 커피보다야 달짝하고 진한 전통과일차들이 더 맛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우리가 문화민족이다 보니 장사꾼 마인드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일까?

아.. 서울은 잠을 못 이루고,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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