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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한 작가의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신경숙. 1963년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문예중앙'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 소설집 '겨울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 장편소설 '깊은 슬픔'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을 펴냈다. 1993년 한국일보 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5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인 문학상을 1997년에 받았고, 21세기 문학상을 1999년에, 이번 2001년 이상문학상을 타게 되었다. 상복이 있을 만큼 재능이 있는 작가가 아닌가.

그의 소설 '외딴 방'에 실려 있는 작가에 대한 설명을 좀 더 보자.

'신경숙은 오늘 우리 모두가 목말라하는 내면의 깊은 요구를 고도로 아름답게 정제된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신기원을 열어왔다.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외딴 방'은 신경숙 문학의 또 다른 시원을 밝혀줄 이정표로 자리 매김될 것이다. 열 여섯에서 스물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문학의 꿈을 키웠던 소녀 신경숙의 사랑과 아픔의 흔적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사위어가는 노을처럼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의 슬프고도 적요한 운명을 단정하게 형상화하고 하고 있다.'

이번에 작가는 전자책 사이트에 연재하던 장편 소설 '어두워지기전에'를 마치고, 종이책으로 만들기 전에 필사 퇴고를 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첫 창작집 이후 10년 만의 일이라고 했다.

작가 신경숙은 '혼불' 최명희에 대해서도 각별한 마음을 지닌 이다. 그러나 두 작가가 같은 성격의 책을 쓴다고 볼 수는 없다. 최명희는 모든 작업을 만년필로 퇴고에 퇴고를 하는 작가이지만, 신경숙은 워드 작업으로 책을 쓴다.

책방의 서가에서 무심히 그이의 책을 펼치면서 나는 그냥 첫장의 문장 몇 줄을 보고는 책을 덮을 만큼 나는 이미 최 명희의 다듬어진 우리 말에 취해 있어 모든 문장의 기준을 '혼불'에 맞추고 있으니 신경숙의 문장이 마음이 다가 오지 않았다.

이제 글쓰기의 기쁨과 고행으로 말할 수 있게 필사해서 퇴고하겠다니 얼마나 다른 글이 만들어질 것인지 나는 필사 퇴고로 완성된 그 책을 지금부터 기다린다.

그러면 신경숙은 어떤 기구로 필사를 대학 노트에 옮길 것인가.
볼펜인가, 연필인가, 만년필인가.
만년필 이야기를, 그이 신경숙에게 하고 싶다.

한참 전의 일이었다.
신경숙이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나는 연필 끝에다 침칠을 하곤 했다. 쓰다보면 금새 글씨가 흐려졌다. 다시, 침칠하여 공책 한 쪽을 쓰다보면 침이 말랐다. 몽당연필이며 잘 써지지 않는 연필을 붓뚜껑에 끼고 썼다. 필통은 몽당연필의 동네였다.

어느 여름 날 햇살 좋은 개울가에서 평평한 돌멩이에다 나무 가지 끝에 흐르는 시냇물을 찍어 글씨를 썼다. 햇살이 돌의 속멩이의 속살까지 파고 들어가 글씨는 쓰는대로 말랐다. 하늘 '天'이 마르면 '地'가 간 곳이 없어진다. 좋은 연필을 하나 가지고 싶었다. 써도 써도 닳지 않는 연필을, 손에 쥐기 편한 쇠막대기 하나 있었으면.
1960년대 초. 국민학생이었던 내 소망은 간절했다.

중학생 시절에는 일제 파이롯트 만년필이 사치였고, 미제 파카 만년필은 꿈이었다. 몽브랑이라는 이름이 그리운 이처럼 다가올 만큼 내게는 사춘기도 지났건만 '몽브랑'은 이름만이 떠도는 소문이었고, 실물은 안개 속의 오리무중이었다.

만년필 가게에서, 백화점에서 어디에도 만날 수 없었던 시절, 그 참이었는데 우연찮게 몽브랑 만년필을 만나게 되었다. 회사의 부서장이 우연찮게 그가 가지고 있던 몽브랑 만년필을 내게 주었다.
그도 누구에게 받은 것라며 내게 건넸다. 쉽게 받고 쉽게 줄 수 없는 '물건'이라는 만년필을 생전 처음 받아 보았으니 써도 써도 닳지 않는 연필을 갖고 싶었던 소망이 국민학교 시절 이후 20년이 지나서 이루어졌다.

만년필 뚜껑에는 '산정의 눈' 흰별 모양의 심벌마크가 있었다.
첫 보기에는 이스라엘 국기의 속에 든 선을 없애고 밖의 선을 부드럽게 두른 듯이 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들었나?" 할 만큼 나는 만년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다. 만년필의 펜의 감각도 내가 기대하고 있던 느낌이 아니었다. 촉의 감각이 굵었고 섬세하지 않았다. 쓰다 보면 잉크가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 내가 바라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기준은 이랬다.
영어를 쓰던 한글을 쓰던 종이 위에 촉을 대면 매끈하게 흐르듯 글씨가 써져야한다. 잉크는 줄곧 잘 흘러야하며 한 동안 쓰지 않는다고 잉크가 말라서는 안 된다. 만년필의 모양은 묵직하고 잡히는 느낌이 손안에 차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가지고 있을수록 글씨가 쓰고 싶은 그리운 사람을 만난 기분을 풍기면 오죽 좋을까.
내게 온 만년필은 그런 기준에서 전혀 맞지 않았다. 일반 보급형이었으니 몽브랑을 대표하는 만년필이 아니었다.

70년대의 시절이 지나고 80년대가 왔다.
몽브랑 만년필을 몇 개 가질 만큼 연륜이 내게도 쌓였다. 내가 몽브랑 마이스터스틱 149를 겨우 갖게 되었을 때, 물건을 소유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았으니 걸작품이라는 뜻을 가진 몽브랑의 가장 대표적인 만년필이며 피스톤식 잉크 흡입 방식만년필로 18k펜촉으로 검정색으로 집에서 자리 잡고 앉아 여유를 가지고 글을 쓸 때 좋았다.

중간 크기의 마이스터스틱 146는 사무용으로 휴대성이 뛰어나서 30대 이후의 연배가 사무용으로 쓰기에 적격이었다. 제일 가는 대의 마이스터스틱 144는 여성 취향으로 30대의 여성이 멋과 실용면에서 만년필을 가지고만 있어도 글을 쓰고픈 유혹을 주니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쓰는 즐거움을 준다.

몽브랑 마이스터스틱 149의 제작 공정은 장인의 손을 거쳐야 한다.
만년필을 만드는 공정은 대량생산체제이니 공장 자동화의 단계를 거치게 마련이지만 이 만년필 촉은 모두 152번의 마무리되는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니 쓰는 촉감이 좋은 것은 이런 정성을 느끼는데서도 이루어진다.

글을 쓰면 잉크를 갓 넣고 쓸 때의 기분대로 잉크가 종이의 섬유를 어름을 지치는 스케이트 날처럼 흐른다. 149의 몸집은 굵다. 두툼하게 잡히는 굵기는 중압감까지 느끼게 한다. 겉보기에는 불편한 듯이 보이나 오래 글을 쓸 때는 굵은 대의 만년필이 손에 피로를 덜 준다.

만년필 시대에 글을 쓴다했던 작가들 많은 이들은 몽브랑 149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전자제품으로 통일 천하를 이룩한 일본인들까지 몽브랑을 뛰어넘는 만년필을 아직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149를 칭찬하는 말로 '환상의 명기'라고도 하고 '유행을 뛰어넘는 디자인'이라고 까지 한다. 예를 들면서 일본내의 일류 작가와 몽브랑을 연결시키면서 몽브랑 칭찬을 한다.

'혼불'을 보면 작가 최 명희가 집필하고 있는 만년필도 몽브랑 마이스터스틱 149이다. 몽브랑은 처음부터 좋아지는 만년필은 아니다. 쓰는 이의 손맛에 길이 들어 자꾸 써야만 좋아지는 만년필이다. 펜촉은 주인의 버릇에 따르고, 주인은 그런 만년필의 성질을 이해하여야 만년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몽브랑을 쓸 때는 이런 점에 주의를 하여야한다.

잉크는 몽브랑 잉크를 쓴다. 잉크를 만들 때는 제작사에서는 자기 회사의 제품 만년필의 성질에 맞추어 만드니 자사 잉크를 쓰는 것이 좋다.

만년필을 쓸 때는 뚜껑 관리를 잘하여야 한다.
뚜껑은 몸통 머리에 모자 씌우듯 꼭 끼어야 한다. 설 끼었다가는 뚜껑과 몸통이 분리되어 딱딱한 바닥에 떨어지는 날에는 고치는 값이 만만치가 않다. 만년필을 쓰다가 바닥에 떨어져서 촉이 망가지는 일이 있다. 촉 값이 만년필의 반값이 된다.

가볍게 촉이 벌어졌다면 손으로 달래가며 조정하면 다시 어지간히 회복이 된다. 촉이 금촉이기에 유연성이 있다. 상태가 심각하면 백화점안의 몽브랑 코너나 교보의 문구센타에 수리를 부탁한다. 공연히 자기 손으로 고치겠다고 촉은 만년필에서 분해해서 꺼내면 사용자의 손으로는 다시 결합을 할 수가 없다. 사용자가 마음대로 촉을 분해하게 되어 있는 구조가 아니다.

만년필을 품에 넣고 다니며 정이 들다보면 자신의 분신이 되어있는 것을 느낀다. 만년필을 만든 장인 정신과 자신의 정신이 일치하면서 우리는 뭔가를 이룬다.

최 명희가 몽브랑으로 '혼불'을 썼듯 신경숙은 어느 만년필로 '어두워지기전에'를 필사 퇴고 할지 궁금하다. 설마 볼펜이나 연필로 하더라도 작가의 혼이 서리면 그 또한 누가 말리랴만, 자기 만년필을 가지고 정성스레 필사하는 작가 신경숙을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1906년 독일에서 '심블로'라는 이름으로 만년필을 제조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몽브랑 만년필의 시초였다. 1910년 회사 이름을 몽브랑사로 바꾸면서 심볼 마크를 흰별 모양으로 썼다. 만년필 뚜껑에 새겨진 6각형의 흰별은 몽브랑 봉우리를 덮고 있는 만년설의 결정체를 상징하며, 만년필 펜촉에 새겨진 4801이라는 숫자는 몽브랑 봉우리의 높이인 4801m를 뜻한다.
몽브랑의 펜촉은 18K금, 14K금으로 만든다. 펜촉을 이리듐이라는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 산화로 부식되거나 쉽게 닳지 않는 반영구적인 수명이다. 펜촉의 종류는 둥근 펜촉, 넓은 사각펜촉, 곧은 펜촉 등 3가지이며, 이 펜촉은 다시 굵기에 따라 8가지로 나뉜다.
둥근 펜촉은 M(1.00mm), EF(0.5mm).F (0.8mm)가 있으며, 펜을 곧게 쥐고 쓰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곧은 펜촉은  B(1.2mm),BB(1.5mm), 각도 있는 자세로 쓰는 사람을 위한 사각 펜촉으로 OM(1.0mm),OB(1.2mm), OBB(1.5mm)가 있다. 우리에게는 EF,F가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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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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