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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어찌해야 좋을까. 이 나라의 집권당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한발씩 건너가고 있다.
근래 들어 국가보안법 개정을 유보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누더기로 만드는가 하면, 사립학교법 개정을 유보시킨 민주당이 이제는 민주당-자민련-민국당 3당간 공조를 추진하고 있다.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어디 한번 하나씩 짚어보자. 김중권 대표는 국가보안법 개정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이후로 유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위원장의 서울 방문 일정 자체가 아직 불투명할뿐더러, 김중권 대표가 그렇게 중시하는 자민련과의 공조를 통한 법개정 역시 언제나 가능할 지 기약이 없는 상태이다. 과연 보안법 개정이 현정부 아래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이제는 못미더워하는 시각들이 많다.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던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도 민주당은 법무부의 부처이기주의 앞에 굴복하여 핵심적 조항들이 뒤바뀌어 버린 누더기 법안을 만들고야 말았다. 시민·인권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음은 물론이다.
의원총회까지 통과되었던 사립학교법 개정안도 최고위원들에 의해 제동이 걸려 개정이 사실상 무산되었다.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사학재단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사학비리 근절과 학교의 자율성 회복이라는 학교현장의 숙원은 다시 해결되지 못하는 상태로 남게되었다.
민주당에 김중권 대표체제가 들어선 이래 분명 개혁의 흐름은 차단되었고, '강한 여당'을 내건 야당흔들기, 의원 빌려주기, 3당 연정같은 정략적 발상만이 민주당을 덮고 있다. 한마디로 야당에만 강하고 개혁에는 약한 것이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다.
이 나라의 집권여당이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제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니까 개혁이고 뭐고간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말했던 '주류(main stream)'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생각만 앞서고 있는 듯하다. 이 총재가 예견해주었던 '주류의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 민주당도 주류 우선의 행보에 나섰는지 모르겠다.
여기까지만 해도 참고 봐주기 어렵건만, 이번에는 느닷없이 민국당과의 정책공조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22일 최고위원 간담회를 열어 "그동안 민국당 의원과 이루어져 오던 개별협조를 정책공조 차원에서 하자는 것으로 보고 환영한다"면서, "원내 과반수가 못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정국운영을 통해 경제회생을 이룩하기 위해 정책공조가 바람직하다"는데 공감대를 이루었다고 한다.
민국당이 어떤 정당인가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현정부의 검찰은 그 당의 대표를 수뢰혐의로 기소하여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게 하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이제와서는 갑자기 연정의 파트너라니, 정말 어지럽기만 하다.
민주당-자민련-민국당의 3당 연정을 주도하고 있는 세 사람은 민주당의 김중권 대표,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 민국당의 김윤환 대표이다. 이들 3인 사이에 교감이 오고가고 있는 모양이다. 3인이 걸어온 그간의 정치행로를 돌아볼 때, 이들이 추진하는 3당 연정이 어떠한 성격의 것인가를 미루어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구정치를 상징하는 3인에 의해, 현집권세력이 설계하는 연정은 추진되고 있다. 이것이 무슨 국민의 정부이고 개혁을 말하는 정부인가. 그들 사이에 무슨 정책적 공통점이 있다고 정책 공조를 말한단 말인가. 공통점이 있다면 그저 권력을 따라 움직여온 정치행로가 있을 뿐이다.
구정치세력의 부활과 담합속에서 정권의 안정을 누리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이 나라의 정치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반(反)개혁적인 사고이다. 민주당은 자신의 정권안정을 위해 총선민의로 사실상 퇴출당한 자민련과 JP를 부활시켜주고, 이제는 정치적 수명이 다해가던 허주(虛舟)를 정치적 수렁에서 건져주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 집권 민주당이 하고 있는 일이다.
개혁입법이라는 정말로 해야될 일들을 젖혀놓은 집권당이, 정작 해서는 안될 일들만 골라서 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민심이반에 대한 우려와 국정쇄신 요구가 터져나왔을 때, 집권세력은 '강력한 정부', '강한 여당'을 외치며 끝내 자기쇄신을 거부했다. 그 업보가 이제부터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묻는다. 민주당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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