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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서 모자가게를 한다는 장애여성 후배를 만나서 잠깐 인터뷰를 하고 밤 10시나 되었을까? 홍대 근처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지하철 탔다.

인터뷰를 위해 가져간 사진기와 녹음기 그리고 디지털캠코더까지 양쪽에 Ⅹ자로 보조 가방을 메고 있었던 터라 사람이 붐비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목발을 짚은 나에게 쉬이 장애인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평소에는 '장애인도 서서 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며 큰소리를 쳐온 나였지만 명동 4호선에서 동대문 운동장 2호선 환승역까지 수많은 계단과 많은 사람들에 치여서 그런지 그날은 냉큼 자리에 앉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꽤나 거하게 취한 아저씨 한 분이 내 앞에 섰다. 목발을 포개어서 기대어 졸고 있는데 내 알루미늄 목발을 한참 응시하고 나를 위아래로 한번 흟어보고 나서 주머니를 주섬 거리더니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큰소리로 "어 돈이 없네, 미안해서 어쩌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잠결에 잠시 멍했던 나는 곧 알았다. 아저씨가 나를 지하철에서 앵벌이를 하는 장애인으로 알고 그런 소리를 한 것을.

참 미묘한 감정 상태로 홍대역에 다 와 내리려하니 그 아저씨 마침내 지갑을 털어 동전 한 움큼을 주어 내밀면서 "이것밖에 없다, 이거라도 받아가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 상황을 넘길까 고민하다가 내가 한 말," 아저씨 난 그런 사람 아니에요"라며 휑하니 지하철을 내렸다. 내리고 나서 난 한참을 그대로 서 있어야만 했다. 울고 싶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하고.

사실 한국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일반적 통계를 거부하는 절대 휘귀종 장애인 대학원생인, 그래서 활동이 왕성한 나에게 이런 일은 빈번한 사건이다.

친구와 길거리를 가다보면 아줌마 할머니들이 쯧쯧 혀를 차시면서 내 주머니에 지폐를 찔러 넣어 주시는 것이 다반사요, 신촌에서 부티가 좀 나는 레스토랑 같은 곳을 들어갈라치면 어김없이 주인들의 저지를 받곤 한다. 물론 그들은 나를 앵벌이로 보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우리학교 마크나 이름(참고로 연세대를 학부로 졸업했다)박힌 옷이나 책가방을 가져가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눈빛은 '대견', '신기' 심지어 '존경'으로까지 변해간다.

지하철에서 나는 제법 깔끔하게 입고 있었다.(대부분의 장애인이나 장애인 부모들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언제나 옷을 단정하고 부티나게 입힌다) 문제는 보조 가방이었다.

보조가방이 지하철에서 장애인분들이 들고 다니는 돈함으로 보였을 터였다. 지하철에 내려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 약 20분간 집으로 걸어오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름 깨나 있는 세칭 '일류'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닌다고 우쭐해 있던 내 자신이 일순간 지하철에서 동냥이나 하는 모습으로 발가벗겨지는 순간이요, 그 순간을 애써 "나는 그런 사람 아니다"며 모면하려는 학벌엘리트의 얄팍한 자존심을 내거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였다.

나는 그 술취한 아저씨가 장애인을 비하했다고, 나를 비하했다고 화를 내거나 비난할 수 없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멀었다고 그 잘난 지식인들처럼 사회를 폄하할 수도 없다.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108만원으로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월 233만원)의 46%에 불과하며 실업률 역시 일반인의 7배 수준인 28.4%에 이르는 현실.

취업을 해도 1인당 평균소득이 상용근로자(작년 6월 기준 월 183만7000원)의 43.1%(79만2000원)에 불과한 우리 시대 장애인들의 자화상일 뿐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400만 장애민중의 현실을 만나, 내가 그 민중의 한 사람임을 그 아저씨는 깨닫게 해주었다. 거만하고 자만해 할 때마다, 대학다니는 엘리트임네 잘난 척할 때마다 그 아저씨가 한 말들과 내밀었던 한 움큼의 동전이 늘 기억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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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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