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5월 9일, 제21회 전국장애인체전이 부산에서 시작되었다. 그 날 부산 구덕경기장에는 이른 새벽부터 검은 정장을 한 건장한 사람들이 주위를 통제하고 경기장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름 아닌 대통령 부인 이휘호 여사의 경호팀들. 국내 장애인 체전에서 명예대회장인 대통령부인이 격려사를 하는 것이 일상 관례로 되어 있어, 이날도 체전 개막에 때맞춰 이희호 여사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희호 여사 경호 점검팀이 조사와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행사장인 부산 서구 서대신동 구덕운동장의 전체 16개문 중 외2문과 외4문의 중앙문 출입을 오전 7시부터 통제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들 문은 휠체어 장애인들의 편리한 출입을 위해 휠체어 경사로와 리프트가 설치된 통로여서 이 통로가 막히는 바람에 이른 아침부터 모이기 시작한 장애인 300여 명이 2시간 가량이나 운동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애를 태웠다.

특히, 출입을 금지당한 장애인 중에는 오전 10시 30분 개막식 행사에 참여할 장애인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행사진행 차질을 우려한 장애인들이 청와대 경호팀과 체전상황실 관계자들을 상대로 격렬하게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 경호팀은 대통령 부인 등의 경호문제로 문을 개방할 수 없다며 2시간이나 버티다 결국 오전 9시에 문을 개방했다.

이에 대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신수현 사무국장은 "청와대 경호팀이 장애인들의 축제에 장애인 참석을 막고 나서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며 "귀빈 경호도 중요하지만 오늘 행사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장애인인 점을 감안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사에는 영부인뿐만 아니라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 안상영 부산시장 등이 참석했다.

애를 태우면서 밖에서 기다려야 했던 한 장애인은 "장애인 대통령이라고 그나마 믿고 뽑아 줬더니 군사정권보다 더 한다"며 핏대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경호를 명목으로 밀어붙이기식 경호를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며 특히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혐오 반응을 표출,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지난 2월 8일 여성부 출범에 맞춘 한 문화행사에 주무부서 요청을 받고 장애인을 참석시키려던 한 장애인 단체는 말 그대로 황당한 일을 당했다.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사장 김활용)는 새로 출범하는 여성부에서 출범을 축하하여 열리는 KBS 열린음악회에 여성장애우를 초대한다는 연락을 받고, 여성장애우담당간사는 여러 장애우를 섭외하였고 그중에 시각장애를 가진, 연구소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하고 있던 김모(시각장애 1급)양을 명단에 올려 놓았다.

담당간사는 음악회에 참석하기 바로 전, 전화로 맹인안내견이 동행함을 알렸는데, 그러자 여성장애우를 초청하겠다고 했던 여성부는 왜 미리 그 말을 하지 않았느냐며 맹인안내견과 함께 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영부인이 참석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실습생은 자신의 눈(眼)인 맹인안내견 때문에(?) 그날 음악회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해당 단체의 항의 과정에서 지시 라인이 청와대 경호팀임이 알려졌고 '개가 내빈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맹인 안내견이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현 이희호 여사 경호팀과 아울러 청와대 경호팀의 왜곡된 장애인 인식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이희호 여사는 이 날 격려사에서 이번 대회에 참석한 선수 한사람 한사람의 모습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해달라고 했는데... 그 격려사가 너무나도 공허하게 들린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