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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는 유한하고 윤전기를 갖추려면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다. 다양하고 진보적인 여론에 목말랐던 대중은 할 말은 많았지만 자본력의 한계 앞에서 분루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의 등장은 이러한 진보세력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 건강한 민주주의의 보루가 다양한 여론이라면 이론상 무한대의 채널이 들어 설 수 있는 인터넷은 언로의 한계를 영원히 타파하고 여론의 다양성을 지켜줄 수 있는 꿈의 발명품으로 보였다.

뉴스위크의 오늘자 기사는 이런 기대가 한낱 꿈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회사인 <쥬피터 미디어 매트릭스>는 AOL/타임워너, MSN, 야후, 냅스터 등 거대 인터넷 포털 4개가 미국인이 인터넷 서핑에 들이는 시간의 거의 절반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더욱 주목할 사실은 2년 전인 1999년 해도 무려 110개가 넘은 사이트들이 오순 도순 60% 가량의 인터넷 트래픽을 나누어 가졌던 데 비해 지금은 불과 14개 회사가 이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미국의 인터넷 여론독점지수가 불과 2년 만에 무려 8배 가량이나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스위크는 민주적 여론시장의 궁극적 도구처럼 보였던 인터넷이 단 몇 년 사이에 이처럼 충격적인 변화를 보인 것은 거대 미디어 회사들이 끊임 없는 인수.합병으로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조차 여론의 지배력을 대폭 강화해온 탓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아이러니는 거대 미디어 재벌들이 대규모 인수.합병을 하면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설득했던 논리가 바로 인터넷이라는 방어막이 있기 때문에 기존 신문, 방송의 합병에도 불구하고 여론독점현상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FCC는 미디어 재벌의 이런 논리를 받아들여 <바이어컴>이 CBS와 UPN 두 개의 공중파를 소유하도록 허가했고 차후에 신문과 방송의 동시 소유까지 허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던 것.

그러나 이번 보고서로 이러한 기대가 순진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보름 전에 <디지털 민주주의 센터>라는 민간기구를 창설한 제프 체스터는 현재 인터넷이 다양성이 만개했던 초창기의 모습을 모두 잃고 '빅3' 방송사의 독점이 심화되기 시작했던 지난 '60년대와 점점 비슷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는 의회가 사이버 스페이스의 독점 심화 현상을 저지하도록 강력한 로비에 나설 계획임을 밝혔다.

보고서는 재래식 미디어의 합병이 인터넷의 여론독점을 심화시키는 이유가 합병기업의 자회사들이 컨텐츠를 서로 폭넓게 공유하고 제휴사의 컨텐츠를 자사 사이트에서 상호 홍보해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독점 심화 문제를 지적한 뉴스위크의 기사 역시 모회사인 워싱턴 포스트, NBC 그리고 MSNBC 등 3개 회사가 뉴스교환과 상호홍보 협정을 맺었음을 지적하면서 뉴스위크 자신을 포함한 재래 미디어의 합병이 사이버 스페이스의 여론 독점을 심화시키는 주역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나라를 구성하는 수 많은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여론이 기능하는 민주적 시장으로만 알았던 미국이 사이버 스페이스의 여론 독점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조.중.동이 7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의 여론 시장에도 커다란 교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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