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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옆의 사진을 보시지요. 스웨덴의 예테보리를 방문중인 부시 대통령을 겨냥해 유럽의 시위대들이 벌이고 있는 엉덩이 시위 장면입니다.

그러면 다음 사진을 보실까요? 주요 일간지 국제면에 소개된 이 사진은 스페인 사라고사의 시위대들이 자전거 전용로 보존을 주장하며 벌인 나체시위 모습입니다.

나체시위의 원조인 유럽의 동물보호단체가 주축이 된 모피옷 반대시위에는 유명 모델까지 동참해 시내 한가운데서 나체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해외토픽란에 가끔 소개되는 이런 사진들을 보면 한국의 독자 입장에서는 유럽의 시민단체 회원들은 모두 노출증 환자인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법도 합니다. 한국에 비해 성과 노출에 관대한 유럽의 문화를 감안해도 유독 시민단체들만이 걸핏하면 나체시위를 벌이는지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나체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지금 이 사진을 보는 오마이뉴스 독자의 모습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도대체 스페인의 소도시 사라고사에서 벌어진 자전거 전용로 보존 시위를 한국에 있는 독자들에게 까지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옷을 벗고 길거리로 나선 이 단체의 회원들은 잠시 창피함을 무릅 쓴 대가로 통신사 카메라의 눈길을 끌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시위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들 단체가 옷을 벗지 않고 전 세계 신문과 방송의 광고를 구입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려 했다면 아마 수십개 대기업의 후원을 얻어낸다 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들의 나체시위는 가난한 시민단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경제적인 홍보수단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해외토픽란에 등장하는 나체시위 사진을 발견하면 이들의 벗은 몸만 보지 말고 몸에 적힌 시위 구호에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시민단체나 노조 역시 홍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서울의 도심에서 아무리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해도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면 지방 소도시의 작은 집회만치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단 한명이 시위를 벌여도 메이저 언론사의 취재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도심의 대규모 시위 이상의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대규모 시위대 동원을 포기하고 눈길을 끄는 퍼포먼스나 1인 시위 등으로 돌아선 것은 언론의 취재가 있을 것이라는, 또는 기어이 언론취재를 이끌어 내고야 말겠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시민단체의 운동은 한마디로 홍보에서 시작해 홍보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쯤되면 경실련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시민단체들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악의적 왜곡보도에 그렇게 당하면서도 정작 조선일보 반대운동에는 왜 미온적인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을 이용한 홍보 유혹에서 시민단체들이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이들의 운동목표 역시 조.중.동 편집진의 입맛에 맞게 타협을 거듭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혹시나 홍보 욕심에 눈이 멀어 정작 운동의 적인 보수언론의 장단에 춤을 추고자 하는 시민단체가 있다면 차라리 옷을 벗어던지고 종로 한가운데서 나체시위를 벌일 것을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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