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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월 사형집행이 이뤄지기까지 미국의 사법제도와 사형 찬성, 반대론자까지 혼란에 빠뜨렸던 개리 길모어. 그는 살아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거부하고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합법적인 살인의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지목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으로 인해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무너져버린 한 인간의 불행한 삶을 그의 동생이 담담하고 냉정한 필체로 그려냈다.

영화 '세븐'을 보면 흥미로운 범죄자가 등장한다. 영화는 비오는 암울한 날씨를 배경으로 기괴한 살인사건의 범죄자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이 범죄자는 놀랍게도 성경에 언급된 7가지 죄악에 따라 진행된다.

어떤 증거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예상할 수도 없는 살인사건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면서 사건의 수사를 맡은 두 형사는 난감한 상황에 빠져든다. 어렵사리 도서관의 기록을 통해 범인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그의 아파트를 습격하지만 범인은 형사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도주해버린다.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사건. 돌연 경찰 복장을 하고 온 몸에 피칠갑을 한 범인이 제발로 경찰에 자수하고 여섯 번째 살해자의 시체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대신 두 형사가 함께 갈 것을 요구한다.

황량한 벌판에 도착한 세 사람. 곧 이어 택배 트럭이 나타나고 박스를 조심스럽게 전달하고는 돌아간다. 그 박스 안에는 놀랍게도 형사 중 한사람의 임신한 부인 머리가 들어 있었고, 흥분한 형사는 범인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이미 범인은 스스로를 교만이라는 죄목으로 처형해야 한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형사에게 방아쇠를 당기라고 요구한다. 형사로서의 책임과 아내를 잃은 남편으로서의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던 형사는 결국 방아쇠를 당기고 이로써 범인이 계획했던 7가지 죄악에 따른 살인 행위도 훌륭하게 성공한다.

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좀 다른 경우이지만 스스로의 죽음을 사형이라는 합법적 살인제도를 활용해 성공시킨 실화가 하나 있다. 1977년 미국 유타 주립교도소 사형장에서 총살형을 당한 개리 길모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개리 길모어는 1976년 미국 유타주의 한 주요소 종업원을 살해하고 다음날 이웃 마을의 모텔 주인을 총으로 살해한 뒤 체포된다. 그 당시 미국 내에서는 국가의 합법적인 살인행위인 사형집행을 반대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지난 10년간 한 건의 집행도 이뤄지지 않았었다.

개리 길모어 역시 항소라는 절차를 밟았다면 충분히 사형집행을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던 셈. 그러나 개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거부했다. 그의 이런 선언에 미국의 사법당국은 물론 사형집행 반대론자와 찬성론자 모두를 혼란속에 몰아넣고 말았다.

당시 개리는 사형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바이고 자신의 의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마지막 살인을 도와주는 셈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개리의 이런 자기 파괴적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려왔다. 부인을 속이고 결혼한 아버지는 특히 개리를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의심하면서 잦은 폭력을 행사했고 개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자식들은 이런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던 것.

결국 폭력을 견디다 못한 개리는 밖으로 나돌았고 소년원을 드나들며 범죄자의 길로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가족사는 개리 뿐만 아니라 개리의 형인 프랭크 2세와 동생인 게일런의 삶마저 망가뜨려 프랭크 2세는 은둔자가 되었으며 게일런은 다른 사람의 칼에 찔려 죽고 만다.

국가의 합법적인 살인을 이용해 자신을 살해했던 개리의 이야기를 책으로 옮긴 사람은 다름 아닌 개리의 막내 동생 마이클 길모어다. 게리의 사형 이후 극도의 혼란과 상처에 휩싸여 있던 그는 이제야 냉정하면서도 담담한 문체로 당시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말았다.

어쩐지 섬뜩하고 불우한 이 이야기가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사실이 아니라 불과 수십년 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점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놀라운 폭력의 역사와 가부장제도의 횡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스스로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비극적 종말.

공공연한 가정 폭력이 자행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도 어쩌면 개리 길모어의 불행한 개인사 속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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