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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오전 8시 40분에 이태원체육관에 도착한 기자는 곧바로 김갑식(55 이태원체육관) 관장 차에 동승하여 춘천으로 향했다. 김 관장이 운전을 했고, 프레드릭이 조수석에, 기자는 조수석 뒷 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차가 강변도로를 지날 무렵, 갑자기 의구심이 생겼다.

전날 밤에 '2001코리아오픈춘천국제태권도대회' 심판원으로 내한한 "제자 '프레드릭'을 태워주려고 간다"기에 단순히 두 시간 정도의 심층취재를 예정하고 춘천행에 동승했는데, 뒷좌석에 걸린 여러 벌의 정장이며, 부인 양인옥(53) 씨의 인사말 등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 관장이 춘천에서 며칠간 묵는다는 사실은 확실한데 집행부에서 떠난 그가 경기장에서 그 많은 시간을 보낼리도 없고, 그렇다면 제자를 태워다주고 춘천의 빼어난 절경을 유람이라도 한단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중에 차는 이미 가평과 의암호를 지나 목적지인 춘천 호반체육관에 도착해버렸다(?) 결국 프레드릭과의 인터뷰는 미완성으로 끝난 채 차에서 내려야만 했다.

그런데, 그 의문은 현지에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이정연(36 대한태권도협회 경기분과위원) 씨에 의해 간단하게 풀리고 말았다. 김갑식 관장의 수제자이기도한 그는 '대회조직위원회'가 원활한 경기 운영의 레벨업을 위해서 그를 경기관련 책임자로 특별히 초청한 것이라는 것이다.

비록 국제대회라고 할지라도 국내에서 개최되는 대회는 관련기관의 집행부 책임자들이 감독자로 나오는게 관례이므로 조직위원회의 김관장 위촉은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김 관장은 이렇게, 늘 지나친 겸손으로 기자를 골탕 먹이는 편이다).
이정연(36)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반대편 쪽에서 김 관장은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이쁜 박사범'이란 애칭으로 유명한 박수현(기록부) 씨와 '경포미인'으로 통하는 최승옥(기록부) 부위원장은 김 관장과 팀웍을 이루는게 즐겁다며 싱글벙글이었다.

그 와중에도 김 관장이 몸소 팔을 걷어 붙이고 경기장 시설을 확인하기 시작하자 그의 수제자인 이정연 씨가 "체질이다. 아랫 사람에게 시킬 수도 있는데, 몸소 나서시니 우리가 더 어렵다'며 애교섞인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이정연 씨가 자타가 인정하는 경기분야의 달인(?)이 된 것도 그의 스승인 김갑식 관장의 확실한 지도 덕분이라고 한다.

6월 27일 드디어 '2001코리아오픈춘천국제태권도대회'가 시작 되었다. 54개국 1624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열전 6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인 스승은 경기운영 총책으로 프랑스인 제자는 국제심판원으로의 활약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스승이 지척에서 지켜본다는 생각 때문인지 상하 노란색 심판유니폼의 심판원 프레드릭의 눈빛은 유난히 빛이 났다. 점심식사 시간에 식사를 하던 '프레드릭'이 우연히 기자를 발견하고는 동료 외국 심판원들에게 "스승을 취재하는 기자"라고 소개하면서 스승 김갑식 관장을 자랑 하기도했다.

경기 5일째인 6월 29일 오전 '프레드릭'은 격려차 서울에서 온 김관장의 부인 양인옥(53) 씨를 보자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승 사모님의 볼에 상쾌한 키스를 하는 애교를 보이기도 했으며, 7월 1일 오후에는 사진업자가 샘플로 걸어 놓은 사진(사제지간의 모습)액자를 김 관장에게 선물하는 등 두 사람의 따뜻한 사랑은 사제간이라기보다는 부모와 자식 사이 같다는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기자가 프레드릭에게 "모습은 프랑스인인데, 생각과 행동은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인 같다"는 질문을 하자 프레드릭은 모든게 "김 관장님의 훌륭한 지도 덕분"이라며 스승을 추켜세웠다. "과연 700명이 넘는 '까를로스'의 수장 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요즘같이 사도상이 무너졌다고 푸념하는 세태에 프랑스인 제자의 한국인 스승에 대한 공경심을 본 기자의 심정은 태권도가 단순히 손과 발로만 하는 격기가 아니라 그 속에 잠재된 무한한 무형의 내면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었다.

대회가 진행된 6일 동안, 프레드릭은 자신의 임무를 다 한 후에는 수시로 김 관장의 뒷 자리에 와서 있었다. 김 관장도 그런 제자가 사랑 스러웠는지, 어느 후배가 기념품을 주자 '프레드릭을 지칭하며 하나를 더 주문하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했다.

선수대기실에서 혹은 상황실에서 때로는 무대위에서의 김 관장은 늘 일하는 모습 뿐이었다. 왠만한 일은 손수함으로써 아랫 사람들이 보고 배우게끔 하는 겸손한 그의 모습을 참으로 오랜만에 보았다. 매일 바뀌는 세련된 정장으로 태권도계의 '베스트 드레스'라는 평을 듣는 그가, 매 시상식 때마다 무대의 중심에 올라 장내 멘트를 하는 모습은 또 다른 그 만의 멋이 있었다.

7월 2일 시상식이 끝나고 폐회식이 시작 될 무렵, 그는 조용히 대회장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승용차에 사랑하는 제자 프레드릭을
태운채 유유히 바람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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