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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가상 공간에서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믿고 있는 때로는 차갑게 느껴지는 요즘 세상에 서커스는 따뜻한 인간이 펼쳐내는 살아 숨쉬는 종합 예술인 까닭일까? 곡예사들의 땀방울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는 최석훈 님의 말처럼 기자가 만난 동춘서커스단 박세환 단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8월 30일, 흑석동에 있는 동춘서커스단 사무실을 찾은 기자는 올해로 39년째 서커스의 외길을 걸어 온 박세환 단장을 만났다.

꾸밈이라고는 전혀 없는 순수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그는 최근 상승세를 타던 동춘이 한 곡예사의 사고로 사기가 떨어졌다며 침통해 했다.

곡예사가 공연중에 바닥에 떨어져 혼수 상태로 있어, 단장 이하 모든 단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동료 곡예사의 병원비를 보태고 있지만 역부족이란다.

그러나, 서커스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 되자, 어디에서 힘이 났는지 당당한 자신의 카리스마를 보였다.

다음은 동춘서커스단 박세환 단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작년부터 동춘서커스에 국제부가 창설 되었는데, 그 배경에 대해서 설명을 해달라

"작년 6월 평양교예단이 한국에 왔을 때, 평양교예단이 지상곡예는 중국에서 공중곡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전통 서커스를 지키는 것 못지않게 국제화로의 도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중국서커스단과 러시아서커스단을 스카웃 해서 합동공연을 했는데, 예상대로 노하우가 생겼다. 제가 지금 곡예협회 이사장인데, 지금의 합동 공연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는 2003년 한국에서 '세계서커스 박람회'를 개최하려고 한다"

- 단장님께서도 아시다피 작년에 동춘에 국제부를 창설한다고 했을 때, 곡예협회 관계자들 조차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 만큼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출입국관련법'을 몰라서 벌금을 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수확도 많았다.

일반 흥행업자들이 러시아서커스를 초대해서 공연 했을 때는 입장료가 고가(15만원-1만원)였다. 그래서 서민들은 러시아서커스를 접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동춘은 러시아서커스단, 중국서커스단이 합동 공연을 했는데도 관람료가 1만원 이하였다. 뿐만 아니다. 공연장 인접지역의 소재지 통장(리장)을 통해 배부한 할인권을 지참한 관객들에게는 40% 정도의 할인 혜택까지 주어졌다.

그래서 관객들이 공연이 끝난 후, 퇴장 할 때, 부담없는 관람료로 온가족이 즐겁게 봤다며 고마워 할 때 큰 보람이 있었다."

- 동춘에 국제부를 창설해서 러시아 1개팀, 중국 2개팀이라는 대가족이 생겼다. 역으로 외국으로부터 동춘서커스가 초대 된 적이 없는가?

"동춘은 73년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의 초대가 수시로 있었다. 특히, LA와 뉴욕, 보스턴 등이 제일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애로가 많았다. 보수는 많았지만, 이것 저것 따져보니 경제성이 없었다. 의상비 등 부대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일시에 거금을 투자 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서도 관심을 갖고 초대를 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계약된 것은 내년 3월에 20일간 일본 아사히신문이 후원하고, 요꼬하마시에서 주관하는 '한국의 날'에 참여한다."

- 다른 국가에서의 초대는 일시에 투자 할 자금력이 없다고 했는데?

"요꼬하마의 경우는 조건이 좋다. 우선 개런티가 러시아나 중국의 유명한 서커스단의 두배나 되고, 흥행성이 좋을 것으로 판단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성을 떠나서 조국을 떠난 재일교포들에게 우리의 서커스를 선보이고 싶다."

- 한국서커스의 원조가 일본 서커스인데, 그 일본이 동춘을 초대한 것이 아닌가?

"참 좋은 질문이다. 한국서커스가 일제시대에 태동했으니, 당연히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한 일본측이 대단히 치밀했다. 작년 9월과 올 4월 12일, 두차례 동춘 공연장을 방문 조사(?) 한 후에 결정을 통보했을 정도였다."

- 평양교예단과 비교를 했다는데?

"그렇다, 일본 흥행업자들도 평양교예단을 세계 최고라고 극찬을 했다. 그러나 동춘이 평양교예단 보다 좋은 재주가 많다는 것도 인정 했다."

- 일본이 동춘을 초대한 배경에는 지난 1999년 12월 NHK 방송에 박단장께서 출연한 영향이 있지 않았나?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일본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속편 까지 보도되었다."

- 아직도 서커스하면 처량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사람이 많은데?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는 그랬다. 그 때는 마땅한 볼거리가 없기 때문에 서커스가 대중 예술의 '총아'였다.

그래서 18개의 단체가 있었다. 또 흥행이 잘되다보니 너도 나도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양적으로는 풍부했으나 기준 미달의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그런 단체 때문에 다른 단체도 도매금(?)으로 인식 되었다.

또 동춘 처럼 많은 연예인을 배출한 유명한 단체도 결국 애처로운 이미지는 마찬가지였다. 우선 각지를 순회해야 하는지라 극장 설치가 용이한 천막극장을 사용 하다보니 그 환경이 열악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겉모습인 천막극장은 예전의 것과 비슷 하지만 무대뒤의 단원 시설은 '최신식'이다. 특수컨테이너로 제작된 방이 가족별 개인별로 구분 되어 있고,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이다.

또 자체 식당에는 일반 고급식당에서 볼 수 있는 주방설비가 갖추어져 단원들에게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보수도 A급 곡예사의 경우, 웬만한 회사의 중역 보다도 많다."

- 작년 평양교예단의 서울공연이 있은 후, 국내 서커스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데?

"그건 참, 답답한 이야기다.(긴 한숨을 쉬면서...) 모든 대중예술은 다 발전을 했는데, 유독 서커스만 낙후돼 있다. 서커스는 우리나라 대중 예술의 원조이다.

1996년도에 강봉균 씨가 행정조정실 실장으로 있을 때, 국민들이 진정을 해 행정쇄신위원회 배병우, 곽수일 위원 등 6명의 위원이 서커스활성화에 대한 방안을 마련, 상설극장 및 금융지원을 확정 했는데 중도에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지난번 특정 예술인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명동에서 시위를 할 때, 가소롭기까지 했다. 고급집에서 고급차까지 지니고 사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서 거리에 나섰는데, 진짜 도움을 받아야 할 서커스 단체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서러웠다."

- 평양교예단 서울공연 1주기를 취재 하면서 관계기관에 서커스에 관한 지원을 물어봤는데, 미진하나마 일부 지원하고 있다는데, 실제 지원금은 얼마인가?

"96년부터 98년까지 3년간 문예진흥원에서 2500만원씩 나오다가 현재는 지원이 전무하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지역에 공연하는 경우에 한해서 1천만원이 지원된다."

- 단장께서 보실때는 얼마 만큼의 지원을 받아야 흡족한가?

"오페라의 경우 1회 공연을 해도 몇천만원씩 나가는데, 서커스의 경우, 년중무휴가 아닌가? 1년에 10-15개 지역을 순회 공연을 하고 있으며, 월 80여회의 공연에 년간 약 1천회의 공연을 한다.

단일 단체가 70여년간 년중무휴로 공연하는 곳은 동춘서커스 밖에 없다. 그 자체만으로도 정부의 지원을 받을 명분이 되지 않은가? 정부에서 최소한 월 2천만원 정도 보조만 해줘도 제가 3천만원 보태고 하면 현상 유지는 가능한데, 현실은 너무 벅차다. 동춘의 최저 유지비가 월 5-6천만원 이다.

그러나 동춘이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월 1억 정도의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1회성 보다는 꾸준한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기획을 세울 수 있다. 부진한 후진양성을 위한 서커스아카데미 등 산적한 문제가 많다.

벤처기업 등에서 말하는 천문학적인 돈잔치를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뿐 아니라도 일반기업에서도 동춘을 지원 할 수 있는 방법도 많을텐데, 서커스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일반 서민들이 더 알아준다. 그들은 공연을 보고 퇴장 할 때, "정말 좋은 일을 한다. 어떻게든 동춘서커스 하나만은 살려야 한다. 열심히 하십시요"라고 한다.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정부 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동춘을 돕고 싶어한다.

재벌이나 고위층은 직접 와서 보지 않으니까, 지금도 서커스가 몇 십년 전 시골의 장터에서나 보았던 남루한 서커스로만 인식하는 것 같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초청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초청하지 않는다. 그 뿐이 아니다, 작년에 OO지역에 공연 하기 위해, 우리 부단장이 업무상 관할 구청에 갔는데, 담당 공무원이 "동춘이 약장사가 아니냐"고 하여 노발대발 한 적이 있었다.

작년에 '평양교예단'이 서울에 와서 특별대우(?)를 받고 간 직후, 우리 단원들이 느낀 허탈감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도 표현은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때의 상처가 남아 있다."

- 미안한 질문이지만, 아픈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난 1980년 동춘의 박종목 곡예사가 연습 중 불의의 사고(?)가 있었는데, 지난 달 울산 공연 때, 정명준 곡예사가 공연 중에 부상을 입고 입원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고 후에 알았는데,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 하면서 술을 마시고, 공연한 것이 화근이었다. 참 가슴이 아프다. 아직도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울산현대병원에 입원 중인데, 입원비가 너무 비싸 여러모로 고민이다.

지금 까지는 저와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박봉을 털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고 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기에 큰 걱정이다. 어떻게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 관리 감독에 소홀한 일선 책임자의 잘못도 있다. 그러나 본인의 문제가 가장 크다. 본인이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다고 해도 무대에 술을 먹고 올라 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 가지다."

- 지금까지 들어간 돈은 모두 얼마이고, 앞으로 들어 갈 돈은 얼마나 되나?

"지금 들어간 돈만 3천만원 정도 들어 갔다. 앞으로도 얼마나 들어 갈지 걱정 이다. 현재 단체 운영에 상당한 타격이 되고 있다. 형편이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으니 설마 파산이야 되겠냐"는 자위를 하면서 업무에 임하고 있다."

- 어려움이 해결 되시길 바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일단 환자가 쾌유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동화된 극장 장비를 수입해서 2003년 '세계서커스엑스포'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서커스학교를 설립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서커스학교는 곡예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가?

"두가지다. 곡예사 양성을 위한 전문 곡예사 부분과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건강 교실이다. 특히, 전문 서커스학교에 대한 구상은 당장 실천 할 수 있을 만큼 체계화되어 있다."

-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솔직히 예전에는 우리나라 서커스에 대한 진가를 몰랐다. 최근에 동춘에 국제부가 생기면서 외국 서커스의 특성을 간파하면서 부터 오히려 우리 서커스에 대한 자긍심을 가졌다. 외국 서커스는 3-4년만 연습 하면 되는 흥미 위주의 겉치레 재주인데 비해 우리의 서커스는 기본적으로 10년은 연습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고난도의 재주가 많기 때문이다."

- 현재 우리나라의 원로 곡예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가슴 아픈 일이다. 제가 현재 한국곡예협회 이사장인 만큼, 앞으로 그런 문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외국처럼 서커스촌을 구상도 해보았지만, 현재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 올해로 서커스인생이 39년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큰 보람이 있었다면?

"특히, 지방 공연때의 추억이 많다. 아찔한 묘기를 보고 아들이 놀라면 아버지가 앉아주고, 또 웃기는 재주가 연출되면 온 가족이 함께 웃는 모습은 매일 봐도 행복한 모습이다. 언젠가 지방 공연때, 50대의 아들이 백발이 성성한 노모를 업고 공연을 관람한 것을 보고는 큰 사명감 마저 느꼈다. 서커스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중 문화의 요람인 것이다."

끝으로 한국곡예협회 이사장이자 동춘서커스의 단장으로써, 오마이뉴스가 우리 서커스를 따뜻한 시각으로 심층취재 해 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그의 인사말을 들으면서 나서는데, 그의 책상 바른편에 붙은 그의 자작시가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밝 달

박 세 환

이 한 세상 누군들 광대로 살다가는 것이 아니랴만
나 박세환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광대로 살아온 지
올해로 서른 여덟 해가 되었다.

푸른 이끼의 기와집 추녀가 잇대어 있고
사철 행랑채 장명등이 꺼지지 않던 종가(宗家)
그 옛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나는 오늘도 유랑의 광대로 떠돌고 있다.

어느새 이순을 바라보는 내게
이제 고향은
현실의 지도로는 찾아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꽃샘바람에 펄럭이는
'동춘'의 깃발을 보며
생각한다.

저 허공에 펄럭이는 깃발 꽂혀 있는 땅이면
그곳이 어디든 고향이 아닌가고,

내 고단한 육신의 마지막 잠을
누일 곳도
바로 저 깃발 아래 천막이 아닌 가고.

덧붙이는 글 | 동춘은 지난 70년간 수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이봉조.허장강.서영춘.배삼룡.심철호.백금녀.남철.남성남.박세환.카니홍.박광환.김영희.서정현 등...언필칭, TV 개국 이후, 연예계의 산파역할을 했던 것이다.

초기 "어머니 울지 마세요" 등의 신파극 공연과 원맨쇼 위주였던 동춘은 TV개국 이후 곡예위주의 공연을 해 왔다.

새천년 동춘의 케치플레이즈는 세계속의 동춘이다.

동춘은 이제 더이상 애처로운 향수를 거부한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가면서 기상천외한 묘기로 기쁨과 감동을 준다.

퍼포먼스 동춘, 동춘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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