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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독재정권 시절이랑 똑같아. 이젠 예술인들까지 엮어 잡아넣으려고..."

8월31일 오후 1시경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을 항의 방문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소속 어머니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날 민가협 어머니들이 노래단체 '우리나라' 단원들과 함께 국정원을 찾은 것은, 지난 27일 국정원 요원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자가 '우리나라'를 불법 사찰한 것에 대해 국정원장의 해명을 요구하고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국정원 버르장머리 고치겠다"

이 자리에서 임기란 민가협 의장은 "국정원이 아직까지 독재정권 시절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면서 "이번 기회에 국정원장 사과를 받아내 (국정원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정원 접견실 담당자는 "공식적인 절차 없이 국정원장을 면담할 순 없고 담당 책임자도 현재 외근 중이어서 만날 수 없다"면서 이들의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공개질의서를 공식 접수시킨 '우리나라' 일행은 담당 책임자를 통해 결과를 통보해주겠다는 접견실 직원의 말을 믿고 물러나야 했다.

이들과 동행한 <오마이뉴스> 기자가 이번 사건에 대한 국정원측의 공식 입장을 듣기 위해 공보담당자와 면담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후 4시경 뒤늦게 이뤄진 전화 통화에서 국정원 공보담당자는 "(국정원) 직원 신분은 노출할 수 없도록 돼 있다"면서 "(우리나라 측 질의사항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31개 문화예술단체 공동 기자회견

국정원 항의방문에 앞서 '우리나라'와 민가협, 민예총 등 31개 시민·문화예술단체들은 오전 11시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승규 변호사는 "적법한 근거 없이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국정원 직원이) 자기 신분을 숨긴 것 자체가 불법임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강성구 대표는 "앞으로 국정원을 상대로 사찰 관련 정보공개와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국정원 앞 1인 시위, 국제인권단체 제소 등을 통해 국정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밝혔다.

공안 분위기 속 사찰 재개 의혹

과거 국정원, 기무사 등 공안당국은 학원과 민간단체에 대한 광범위한 민간 불법사찰을 공공연히 진행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 표면적으론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8.15 평양대축전 남측방문단 귀환 이후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공안당국이 공안분위기에 편승해 민간인 사찰을 재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우리나라' 강성구 대표는 "최근 정부가 이적표현물로 규정한 범민련 공동음반에 우리 노래패가 참여한 것과 내가 평양축전 남측대표단으로 참석한 것이 연동됐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승규 변호사는 "민간단체 동향파악을 위한 공안당국의 사찰이 일상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뤄져왔고 이번 사건 역시 일단 일상적인 사찰의 하나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성명서] 민간 예술단체 '우리나라'에 대한 국정원의 불법사찰을 규탄한다

2001년 8월 27일 오후 4시30분경,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재 예술단체 '우리나라' 사무실 앞에서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직원 '이OO'(60년생)이 사무실을 몰래 촬영 후 도망하는 것을 <우리나라>의 단원들이 붙잡았다.  '이OO'의 몸에서는 <우리나라>단원중 한 명의 주소, 전화번호와 주민등록번호, 차량번호가 적힌 쪽지가 발견되었다. 이는 예술단체에 대한 명백한 사찰이며, 우리는 이에 대해 국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

예술단체 '우리나라'는 1999년 7월에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통일노래를 창작·보급해 왔으며, 이번 2001년 여름에는 노래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의 꽃을 피워요' 등 6·15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전 민족적 통일공감대 형성에 특색 있게 기여한 통일애국 예술단체이다. 또한 이번 6.15∼8.15 기간동안 '2001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와 함께 해왔으며, '민족공동행사' 주제곡인 '화해로 평화로 통일로'와 '경의선 타고'를 부른 예술인들이다. 또 '6월15일'과 '8월15일' 여의도 민족공동행사 무대에서 조국통일을 목놓아 노래하여 대중적인 신망도 한몸에 받고 있는 문화예술단체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단체 '우리나라'를 국정원이 감시, 사찰, 위협할 그 어떤 명분도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사찰은 인권적 차원에서나, 나라의 예술발전의 차원에서도 심히 우려되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은 이전에도 수많은 민간인사찰과 프락치 강요를 해오는 등 나라의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의 앞길에 큰 장애가 되어왔다. 이에 온 국민은 국정원의 처사에 대해 불만을 품어왔으며, 더욱이 6·15공동선언으로 나라의 장래가 활짝 열린 오늘날 국정원의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온 국민의 한결같은 바램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발생한 예술단체 '우리나라'에 대한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은 대한민국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예술단체와 인권단체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으며, 이런 국정원의 행위는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6·15공동선언으로 열려진 조국통일의 문 앞에서 국정원과 같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사찰 등의 횡포에 맞서 싸울 것이며 이 길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양심적 인사, 단체들과 전세계 예술단체, 인권단체와 함께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국정원을 향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국정원은 사건의 경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한다.
하나, 국정원은 '이OO'을 파면하고 관련자들을 당장 처벌하여야 한다.
하나, 국정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예술단체 '우리나라'와 온 국민 앞에 공개 사과해야한다.
하나, 국정원은 이번 사건과 같은 불미스런 사건이 다시는 없도록 국민 앞에 약속해야한다.

2001. 8. 31

우리나라(02-333-5905),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민족음악인협회,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 문학예술청년공동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부설 시민문화센타,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 민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다산인권센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천주교 인권위원회, 인권실천 시민연대, 그림공장, 일터, 꽃다지, 맥박, 소리타래, 희망새, 좋은친구들, 아름다운청년, 출, 프로메테우스, 노동의소리, 큰들 문화예술센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김양무정신계승사업회,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 2001민족공동행사 청년학생 추진위원회, 인권실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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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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