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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 출시될 예정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차세대 게임기 X-박스.

X-박스는 영화에 필적하는 그래픽 성능을 보유한 최초의 게임기로 주목을 끌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회사 MS가 만든 최초의 하드웨어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생산설비가 전무한 MS가 하루 아침에 헤비급 전자회사로 거듭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철저한 외주 생산에 있다. MS는 향후 수년에 걸쳐 무려 5천만대에 이르는 X-박스를 팔겠다는 계획이지만 본사는 디자인과 마케팅만을 담당하고 제품생산은 멕시코에 공장을 둔 외주생산 전문회사 <플렉트로닉스>가 전담하도록 했다.

<플렉트로닉스>는 X-박스의 계발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제품구조에서부터 부품선택에 이르기까지 가장 효율적인 생산을 보장해 줄 최적의 디자인을 같이 고민했다. 이런 협력의 결과로 MS는 복잡한 공장건설이나 품질관리에 대한 염려없이 오로지 제품의 디자인과 마케팅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

전자업계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EMS, 즉 외주생산방식은 뛰어난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시장에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EMS 방식은 MS같은 회사 뿐 아니라 자체 공장을 보유한 기존의 전자업체에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플렉트로닉스>의 최대 고객은 세계적 휴대폰 생산업체인 에릭슨. 제품생산은 생산전문가에게 맡기고 본사는 디자인과 마케팅등 고부가가치 영역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플렉트로닉스>같은 EMS 회사가 상대적으로 이윤이 박한 생산활동만으로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중국이나 멕시코 같은 곳에 공장을 지어 저임금의 잇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부품업체를 같이 입주시켜 유통비용과 시간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어제 삼성전자와 MS의 빌 게이츠 회장은 디지털 가전제품의 개발에서 향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소프트웨어 강자인 MS와 하드웨어 생산에 강점을 지닌 삼성이 협력하면 상호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두 회사의 협력으로 시너지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엔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삼성전자는 이번 협정이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기술개발에서 서로 대등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자칫 MS의 단순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

사실 그동안 한국 전자업계의 급속한 성장은 독자적 첨단기술 보다는 저임과 대량생산기술을 활용한 하청생산기지에 충실했던 데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올림푸스>나 <노키아>같은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이 한국의 수출자유지역같은 곳에 자체 생산기지를 두고 있고 삼성이나 LG 등 주요 전자업체도 OEM 제품 생산이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저부가가치 제품 대신 메모리 반도체나 액정 스크린 같은 고가제품의 생산으로 점차 옮겨가고 있지만 아직도 자체 첨단기술보다는 대량생산기법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구미와 일본의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이 대규모 생산설비를 짓는데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들이 기술이나 자본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체 공장을 보유하는 것이 이제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부가가치가 낮은 생산활동에 힘을 쏟는 대신 제품개발과 마케팅 등 돈이 되는 핵심역량에 치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생산은 <플렉트로닉스>같은 EMS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훨씬 더 싸고 빠르게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MS와 협력체제를 맺기로 한 삼성전자 역시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금경쟁력 하나로 승부하기엔 중국이나 멕시코에 비해 한국의 임금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커다란 공장을 만들어 대량으로 제품을 찍어내는 것은 한국의 현실에서 장차 수지맞는 장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더구나 MS와 플렉트로닉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외주생산관계에서 '제왕의 몫'은 MS같은 제품개발회사가 차지하게 마련이다.

삼성전자는 독자적 기술을 지닌 첨단전자회사로 거듭날 것인지 아니면 하청기지에 만족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MS와의 협력을 통해 세계적인 정보가전업체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하드웨어 생산업체에 머무느냐는 삼성전자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jean

덧붙이는 글 | *X-박스 관련 내용은 <와이어드> 11월호 기사를 일부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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