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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채의석은 그의 저서 ‘99일간의 진실’에서 10월 29일 늦은 귀가 길에 목격한 삼청동 주변의 풍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갑자기 앞쪽에서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나타났다. 자동차 불빛은 한순간 내 눈을 정면으로 쏘았다. 청와대쪽으로부터 여러 대의 차량이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대형 세단 앞뒤에서 세단을 에워싼, 무장병력을 실은 경호 지프까지 대여섯 대의 차량들이 경복궁 맞은편 육군병원 앞에 이르자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밤을 찢었다.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헤드라이트들이 병원 정문 앞에서 각기 이리저리 방향이 흩어진 채 허둥대는 사이 경호원들과 병원 초병 사이에 다급한 말이 오갔다. 황급히 철제문이 열리고 차량들은 이내 건물을 들이받기라도 할 듯 다급한 기세로 병원 안으로 몰려들어갔다..”


비슷한 시각, 김재규와 그의 부하들을 실은 검은 세단과 지프 역시 빛의 궤적을 남기며 쌀쌀한 밤공기를 빠르게 갈랐다. 그리고 그 빛은 남산이 아닌 용산으로 사라져 갔다.

18년의 영욕을 함께 했던 두 사람, 박정희와 김재규. 그들의 목적지는 그러나 모두 죽음의 길을 향한 것이었고 그들이 택한 각기 다른 방향의 의미는 육군병원과 육군본부, 그 거리 이상의 의미로 철저하게 갈라져 우리에게 남겨졌다.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며 굶주림으로부터 민족을 구해낸 위대한 지도자라는 칭송을 받는 박정희. 반면 18년간 점철된 폭력과 공포정치의 심장을 쏨으로써 박정희 독재의 종지부를 찍은 김재규. 그러나 22년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이들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가운데 여전히 역사적 평가 부분에서 미완의 숙제로 남겨져 있으며 심지어 금기로 남아있기도 하다.

어쩌면 이것은 영원히 풀 수 없는 과제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국내 영향력 1위를 자랑하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신문들과 이에 소속된 주요 인물들의 수구반동적 태도가 변함없이 이어지고 국민 여론을 가장한 여론조작으로 이들 언론사가 지원하는 정치인을 비롯, 사회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호를 통해 서로간의 드러나지 않는 공생의 유착관계가 지속된다면 이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것은 조국의 진정한 민주화, 그리고 누구나가 잘사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는 사람들의 순박한 외침이 있는 동시에 박정희의 행적에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이들의 일면적 사고와 극단적 행동의 부조화를 보면서 그 과제의 해결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2001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22주기 추모식’의 풍경과 ’10.26 의거 22주년 기념식’의 엇갈린 풍경을 들여다 보았다.

10.26 동작동 국립묘지의 풍경 /김정훈 기자


10.26 기독교회관의 풍경 /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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