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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여의도는 '개방농정 철폐, 쌀값보장, 한-칠레자유무역협정 철폐' 등을 주장하며 1만5천여 명 농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기자는 어제 시위현장에서 3시간 가까이 취재활동을 벌이면서 자괴감과 함께 농민들의 언론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의도 농민시위 현장에서는 취재기자들과 농민들간의 실랑이가 연이어 발생했다. 농민들은 사진기자들의 사진촬영이나 취재기자들의 현장모습 담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기자 역시 여러 차례 농민들에게 확인제지를 당했다.

언론불신 극에 달한 농민들 기자들과 곳곳서 실랑이

농민들은 기자들이 경찰의 시위현장 채증조가 아닌가 면밀히 주시했고, 일부 농민들은 언론을 강하게 성토했다. 왜 농민들이 기자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걸까? 거르지 않고 담아본 농민들의 목소리는 이랬다.

"니들 땜에 쌀값이 내려갔어." (50대 전남 농민)

"당신들 농민 위해 찍으려면 찍고, 안 그러면 찍지 마."(60대 전남 농민)

"왜 적어요. TV에 농촌들 모습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그런 것 왜 적어요."(60대 충남 여성농민)

"당신 뭐야. 기자라고? 신분증 내 놓아 봐. 기자들이 도대체 뭐야. 농민들 얘긴 한 줄도 보도하지 않는 거야."(40대 충남 농민)

"기자라니께 한 마디 하요. 우리 농민들 죽께 생겼소. 국민들 여러 사람 앞에 우리들 알려주소."(60대 전북 농민)

일부 농민들은 기자라는 말에 '잘 써 달라'며 하소연을 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기자들에게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사진촬영을 경계하고, 등을 돌렸다. 현장에는 월간말, 디지털말, 오마이뉴스 등 시사지, 인터넷신문 기자들이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농민들은 일간지나 방송사 등 메이저 언론사들의 농민 현실 외면 보도에 격앙된 목소리로 취재중인 기자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기자는 농민들의 분노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 언론이 농촌문제를 왜곡하고, 외면해 온 것이 이들 농민의 이유 있는 분노를 부른 것이다.

농촌현실 왜곡, 외면 보도 농민들 불신 키워

기자는 오늘자 아침 일간지들의 기사가 궁금했다. 한겨레, 경향, 중앙, 동아의 농민시위 관련 기사를 살펴봤다. 일간지 사회면을 가득 메운 기사들에서 농민들이 주장한 내용은 온데 간데 없고, 폭력시위만을 부각시키는 사진과 선정적인 편집제목들만이 도배되어 있었다.

'농민 1만여명 격렬시위 - 쌀값보장 등 요구 서울 도심서 동시다발' (경향신문)
'"쌀 수입반대˝ 농민 상경시위 충돌 - 어제 여의도등서 한나라당사 진입시도 경찰과 충돌 양쪽 수십명 부상' (한겨레신문)
'상경농민 만여명 격렬시위…쌀값 폭락 항의' (동아일보)
'성난 '농심' 도심 곳곳 격렬시위'(중앙일보)


한겨레에서는 5시부터 여의도 앞 국회를 점거하고 시위를 했다면서 격렬시위 내용을 크게 부각시켰다. 하지만 기자가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농민들의 시위는 4시경부터 시작됐다. 농민 부상자만도 30여 명 정도 속출한 것으로 전농이 밝히고 있다.

특히 동아일보가 농민들의 요구사항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도('전농은 또 △최소 300만 섬의 신곡 조기 대북지원 △쌀 추가 매입분 400만 섬에 대해 올 추곡수매가 기준으로 조기 수매 △한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추진 중단 △논 농업직불제의 단가 최소 50만원 이상 상향조정 등을 요구했다')했다.

반면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는 농민들의 요구사항을 몇 단어 정도만('쌀 생산비 보장과 쌀 수입 반대 등을 요구했다')보도했다. 현장 농민들의 인터뷰나 반응 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의 눈에는 차라리 동아일보의 기사가 나을 정도로 비쳤다.

언론의 선정적 보도, 현장농민 이야기 하나도 없어

물론 사진기자나 데스크 입장에서 보면 밋밋한 사진보다는 차량을 뒤엎고, 격렬하게 충돌하는 장면이 훨씬 생동감이 넘치고, 독자들 눈에도 한눈에 쏙 들어가게 하는 편집 측면을 더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백번 감안하더라도 기사에는 농민들의 심정이나 주장이 없었고, 충돌장면만을 부각시킨 내용만이 보도됐다.

기자는 어제 여의도 농민 시위현장에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농민들의 기자와 언론에 대한 분노를 보면서 곱씹었다.
"우리들(언론과 기자)은 돌을 맞아도 싸다"

기자가 근무하는 인터넷신문 사무실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기사를 편집하면서 뽑은 제목은 현장에서 연행되던 전북의 농민이 한 말이었다.

"기차를 전복시켜서라도 농민문제를 알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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