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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살생'이라는 종교적 소신을 이유로 입영 거부를 선택한 오태양 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젊은이가 입영일에 훈련소로 가는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17일 오전 10시 오태양(27) 씨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국가인권위원회에 찾아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보장해달라'는 요지의 진정서를 접수시키고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과 민간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촉구했다.
오씨는 오후1시까지 논산 훈련소에 입영을 하지 않아 '병역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되고 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는 수순을 밟아야 할 상황이다.
오씨는 3대 독자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1993년까지만 해도 2대 이상의 독자나 부(父) 사망 독자에게 적용되던 방위병 복무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오씨는 94년 대학(서울교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가며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이 해부터 방위병 복무제가 폐지됨에 따라 일반 병역 의무자와 똑같이 현역 입영 판정을 받게 됐다.
당시에는 1년 늦게 신체 검사를 받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던 오씨는 "지금은 군대 문제를 계기로 내 삶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보게 돼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불교 수련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3월초에는 기독교의 세례에 해당하는 오계수계를 받았다"면서 "부처님의 가르침 중 불살생(不殺生) 계율이 가장 으뜸이고 이 계율은 꼭 살생만이 아니라 전쟁, 핵무기는 물론 일상적 폭력을 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다가온다"면서 군 입대 거부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자신의 소신으로 병역을 택할 수도 있지만, 저처럼 종교적 신념이나 삶의 가치관에 입각해서 살생에 동참하는 행위는 도저히 할 수 없다면 다른 형태로 사회봉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반문한 뒤 "3년간 소방수를 하거나 고속도로 청소부를 하라고 해도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오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입영 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군대 가는 것보다는 직장 생활과 사회 단체 활동을 병행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병역특례 산업기능 요원 시험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지난 2월 '한겨레'가 마련한 인터넷 토론방에서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수기를 읽고 나서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사회에는 '여호와의 증인은 좀 이상한 기독교 집단이라서 감옥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편견이 많다. 저 역시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을 거부한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그들의 수기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까지 세계인권선언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이 들어갔다는 사실도 몰랐다. 수기들을 읽으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었다. 70년대에 7년형을 선고받은 서울대 의대생, 할아버지대(代)부터 손자까지 3대가 똑같은 죄목으로 감옥을 가게된 사람들, 군 교도소에서 부당한 처우로 죽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여호와 증인들은 대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업이 안돼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1948년 군대가 설립된 이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병역 거부를 표명하고 그 동안 1만명이 옥살이를 했다. 현재도 1600여 명의 사람들이 감옥에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것이다.
수기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들이 당하는 대우가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입대를 앞둔 나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고민도 하게 됐다."
"병역법 위반으로 감옥 간 3대도 있다"
- 여호와의 증인 신자도 아니면서 입영 거부를 결정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2년 전 불교에 귀의했고, 신앙생활동안 체득한 불교의 세계관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삶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사례를 접하게 됐고 곧바로 불교 수련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고민하다가 3월초에는 기독교의 세례에 해당하는 오계수계를 받았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 불살생(不殺生) 계율이 가장 으뜸이다. 이 계율은 꼭 살생만이 아니라 전쟁, 핵무기는 물론 일상적 폭력을 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 불교신자라도 군대에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병역을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불교도들도 많을 텐데...
"임진왜란때의 사명대사나 서산대사의 의병활동을 들어 '정의로운 전쟁 참여는 필요하다'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불교적 전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출가한 스님들도 군대에는 간다. 그분들이 당하는 고초가 있다. 먹는 것을 가리는 사람에게 육식이 강요되고, 비(非)불교도 상관을 만나면 승려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 종교적 신념도 신념이지만 군대를 가면 안된다는 생각도 강한 것 같은데.
"원해서 군대 가는 사람 없다며 형평성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국방의 의무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제 친구들도 다 다녀왔기 때문에 군대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하나같이 군대는 두 번 갈 데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이 시대 사람들이 군대가기를 꺼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우리나라 군대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군대에 인권을 침해하고 폭력적인 문화가 있다는 뜻이다. 군대내 복무 환경과 인권이 개선했으면 한다.
또한 자신의 소신으로 병역을 택할 수도 있지만, 저처럼 종교적 신념이나 삶의 가치관에 입각해서 살생에 동참하는 행위는 도저히 할 수 없다면 다른 형태로 사회봉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 17일 오태양 씨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시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손병관 |
- 군대 다녀온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내 친구들을 가끔 만나면 군대 다녀온 사람도 있고 면제받은 친구도 있다. 그런데 군대 다녀온 친구들이 면제자에게 농담으로 '군대도 안 다녀온 놈'이라면서 군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쏟아낸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면제자를 특혜자라고 생각하지만, 면제자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고통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이 개인의 구제를 넘어서 사회적인 논의로 이어졌으면 한다."
- 군 복무를 안하는 대신 군 복무 이상으로 강도 높고 기간이 긴 다른 일은 할 의향이 있나?
"나 역시 군대 다녀온 사람들의 고통도 함께 느껴보고 싶다. 군대를 빼고 국가가 시키는 것이라면 3년을 넘더라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가령 3년간 소방수를 하거나 고속도로 청소부를 하라고 해도 하겠다. 하지만, 전경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
- 국가방위를 위해서는 일정 수의 군인들이 필요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핑계로 병역을 기피하려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한편에서 '병역기피자'라고 낙인찍는 기류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같은 신념이 거짓이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군 복무 이상으로 더 고된 일을 더 오랜 기간 동안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처럼 같은 동족인 중국과 대치 관계에 있는 대만도 작년부터 '병역 대체 복무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들었다"
"병역기피자로 낙인찍는 기류 인정한다"
- 3대 독자에 홀어머니를 모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예전에는 군 복무 면제자로 분류되지 않았던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가고 싶어도 군대 못 가지만, 군대를 지원해서라도 가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다. 그런데 94년도부터 병역법이 개정되며 방위병 제도가 없어지고 75년생 이하 독자들도 입대하게 됐다. 그때는 그것이 안타깝고 억울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군대 문제로 제 삶을 총체적으로 되돌아보게 됐다.
- 훈련소에 안 들어가기로 한 이상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
"논산훈련소에서 정해진 날 입대하지 않은 사람들 명단을 각 지역 병무청에 보내면 병무청 직원들이 해당자에 대해 조사를 한다. 병무청에서 입영 거부 의사를 확인하고 나면 검찰에 고발한다. 그 동안 활동하던 사회단체에 있다가 구속영장이 나오면 구치소로 들어갈 생각이다.
- 입영 거부와 입영후 집총거부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여호와의 증인들 역시 국방의 의무는 찬성하지만 집총은 거부하는 입장이라 일단 입영 소집에 응해왔다. 이들은 입영 후 이틀 뒤 무기 수여식을 할 때 집총을 거부한다.
그러면 항명죄가 적용되고, 다음날 한번 더 강요받아 가중 처벌이 이뤄진다. 첫 번째 항명에 대해 2년형이 선고되고, 두 번째 항명에 0.5배의 형량인 1년을 더 선고해 도합 3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결국 두 번째의 집총 강요는 가중처벌을 하게 해 일괄적으로 3년형을 주려는 의도이다. 어제는 총을 안 받겠다는 사람이 다음날 마음이 바뀔 리가 있나?
또 한 가지 실정법 상의 맹점이 있는데, 입영 후 집총거부하면 3년을 살고 나오지만, 사회에서 형사재판을 받으면 선고는 3년이 떨어져도 실형은 1년 6개월에서 2년밖에 안된다. 더구나 군사재판 받고 군 교도소를 가는 것과 형사재판을 통해 일반 교도소에 가는 것은 수형의 강도에서도 차이가 많다.
내가 들은 얘기로는, 군 법무관들도 이들의 신념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개별적인 채널로 여호와 증인 신자들에게 '군대 들어와서 문제 만들지 말고 차라리 입영 거부하라'는 충고를 던진다고 들었다. 그런 이유인지 여호와의 증인들도 약 1년 전부터는 입영 거부를 선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고민하던 오씨는 지난 15일에야 가족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고 한다. 오씨는 검찰로부터 출두 통보를 받을 때까지는 예전부터 일해온 서울 성북구 보문동의 '노숙자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다.
참여연대는 오씨의 양심선언 다음날인 18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감옥이 아닌 대체복무의 기회를 줘야 한다"며 민간봉사제도의 도입을 촉구하는 논평을 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은 오씨가 17일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 전문.
<군사훈련 대신 사회봉사로서 병역의무를 이행하고픈 젊은이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문>
저는 서울교대를 졸업한 27살의 젊은이로서, 지난 *월 *일자로 오늘 오후 1시까지 논산훈련소로 입영할 것을 통보 받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현역 입영대상자 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렇게 논산훈련소가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저를 비롯한 1594명의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들의 사연을 국민 여러분께 호소하고자 합니다.
저는 '불살생과 생명존중'의 종교적 신념과 평화·봉사의 인생관에 따른 양심적 결단을 지키고자, 총검술을 비롯한 군사훈련에 참여해야 하는 현재의 병역의무를 도저히 이행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국방관계자 여러분께 간절히 요청하는 것은, 저와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행위를 '국민적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 보장으로서 '민간대체봉사활동'을 통해 비전투 분야에서의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구제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저는 대학시절부터 '전쟁과 가난의 고통이 없고, 이웃간에 서로 협력하고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어 왔습니다. 그러한 일환으로 대학시절 농촌봉사활동, 산동네 빈민지원활동, 북한 어린이 식량·의약품 지원활동 등의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제 인생의 참된 보람과 의미를 느껴왔습니다. 나아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회사가 아닌 시민단체에서 사회봉사활동과 평화교육 자원활동을 통해 제 인생의 꿈과 비젼을 실현해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년 전 '타인에게 봉사하는 삶이 자신의 행복을 실현하는 길' 이라는 불교적 가르침에 감명을 받고 불교에 귀의하여 오계수계를 받았고, 그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여 왔습니다. 특히 '불살생과 생명존중'의 계율은 제 인생관과 생활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제가 군에 입대하게 된다면, 총검술을 비롯한 각종의 군사훈련은 물론 이거니와 선택의 여지없이 육식을 해야 하는 등 평소의 제 신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없는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기회가 된다면 오지의 초등학교에서 수년간 무보수 교직활동을 하거나 노숙자, 독거노인 분들을 도울 수 있는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대신하고 싶습니다.
이상이 제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게 된 경위와 이유입니다.
이와 같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구제와 더불어 현재 종교적 신념의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1594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사회적 구제를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께 호소합니다.
21세기 최초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김대중 대통령님은 독재정권 시절 민주주의와 인권의 양심적 소신을 지킨다는 이유로 감옥에 투옥되었고, 굴하지 않는 소신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세계평화에 공헌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많은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생명존중'의 양심에 따른 결단의 대가로 범죄자가 되어 고통받고 있는 1594명의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들에 대한 진상조사와 구제조치를 간곡히 청원합니다.
이 땅의 종교인들에게 호소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교의 전통적 가르침은 '살생하지 말며(불살생), 살생을 목적으로 하는 도구도 보관하지 말라(불축살생구계)'고 우리에게 이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일체의 군사훈련과 집총명령을 거부하여 감옥에 구속되어 있는 1594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이 땅의 종교인들이 나서서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지지와 연대의 노력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법조인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공표된 이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단일한 죄목으로, 감형이나 사면복권 조치가 전무했던' 극악한 범죄자 취급을 받아 왔습니다. 그 수가 지난 60여년간 1만여 명에 달하고 있으며, 현재 1594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전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만약 지금까지의 이러한 '획일적인 조치'들이 조금이라도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 훼손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정의의 법전과 평등의 저울이 진리에 기초하여 적용되고 있는지 검토하여 올바른 법의 판단이 내려질 수 있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국방부 관계자들께 호소합니다.
국방부에서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듯이 현재 한국에는 한해 15만여명의 군입대자 중 절반에 달하는 7만여명이 '한국적 대체복무'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사려됩니다. 공익근무요원, 산업기능요원, 예체능특기자, 해외봉사협력요원 등의 비전투 분야의 병역활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단지 '4주 군사훈련'을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3년의 감옥생활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4주 군사훈련 참여거부'의 이유로 3년간의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형평에 맞지 않는 처사가 아닐런지요. 한국적 대체복무가 이미 정착화 되어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면서도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비전투분야의 군복무 혹은 민간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합니다.
한국의 제 시민사회단체 여러분들께 호소합니다.
그동안 언론매체와 몇몇 헌신적인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는 60년 침묵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야 인권과 민주주주의 햇살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과 민간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은 세계적 추세이자, 국제평화인권운동의 주요한 이슈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또한 내년 3월의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이 사안은 중심의제로 다루어질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는 세계적 평화와 인권실현의 물결에 동참하는 것이자, 20세기 국가안보를 넘어 21세기 인간안보의 시대를 앞당기는 국제연대의 초석이라 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때에 최근 한국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지지, 참여와 연대의 손길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자, 그 법적·제도적 보장으로서 민간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은 국민복지를 향상시키고 사회적 재원을 공공의 이익으로 환원하는 것이라 사려됩니다. 이는 국익의 도모와 개인의 인권보장, 사회복지 증진이라는 1석 3조의 지혜로운 국가정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저의 양심적 결단과 신념에 따른 행위는 현행 실정법상 명백한 위법 행위이기에, 저는 제 행위의 대가를 기꺼이 받을 것입니다. 다만 작고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젊은이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1594명의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들과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이야기하고픈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세상에 알려진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개인적 구제'를 넘어 과거 1만여 병역거부 피해자들과 현재 1천 6백여 병역거부 수감자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양심의 결단으로 고뇌하는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용과 구제'로 나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1년 12월 17일
오 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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