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만에 돌아온 친구를 온 지 1백일이 지나서야 찾은 건 정말이지 야속한 일이 아닐까 싶다. 작년 10월 26일, 경복궁 흥례문이 우리 곁을 떠나간 지 86년만에 돌아왔다.
흥례문은 일제 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우뚝 서 있던 실질적인 경복궁의 대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1916년에 이르러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같은 훼손은 1910년 조선총독부가 '시정 5주년 기념식'을 열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경복궁 내 건물들을 허무는 과정에서 시작해, 1916년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면서 극치에 이르는데, 이때 광화문은 물론 흥례문까지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조선 초에는 홍례문(弘禮門)이라고 불렸던 흥례문이 우리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지 근 한 세기. 지난 96년부터 약 233억 원의 예산으로 진행된 광화문 복원사업 중 흥례문 권역 복원사업의 결과로, 흥례문과 궐내각사 구역으로 이어지는 유화문, 기별청 및 행각, 어도, 영제교, 어구 등이 복원되었다.
그런데 아직은 어딘 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기만 하다. 어차피 근래에 들어 요즈음 기술자들이 복원한 것이니 인공미가 지나치게 느껴진다는 것은 논외로 하기로 하자. 먼저 흥례문을 들어서면 작년 10월까지는 볼 수 없었던 금천을 만나게 되는데 창경궁의 금천과 같이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원래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일부러 물을 끌어다 쓴 것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이와 함께 유화문도 어쩌면 이 어색함에 일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흥례문 편액보다 유화문 편액이 더 기개 있게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잠깐 답사로선 알기가 쉽지 않다.
새로 들어선 흥례문에 가보면 느끼는 것 중 또 한 가지를 들라 하면 '어서 경복궁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할 텐데'라는 것일 게다. 이는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의 어도 가운데에 서서 광화문을 한번 쳐다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문이라는 것이 보통 중심축이 맞아야 하는 법인데 여기서 보는 광화문의 중심축과 흥례문, 근정문의 중심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가장 큰 이유를 제공한 자는 광화문일 것이다.
3공화국이 들어서자 '없는 정통성'을 획득하고 '이해할 수 없는 민족주의'를 필요로 한 박정희 정권은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경복궁 한 쪽으로 옮겨져 있던 광화문을 원래(?)의 자리로 옮기게 되는데, 그 당시엔 아직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말많은 사업이 없었던 지라 조선총독부 청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때 광화문의 축을 잡음에 있어 원래 그 기준이 되었어야 할 근정전과 근정문이 중심축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의도적으로 축을 비뚤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중심축으로 광화문을 복원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원래 나무로 이루어졌어야 할 지붕 부분을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시멘트로 쉽고 빠르게 복원해 버린 것이다. 물론 당시의 관점에서야 그것이 기가 막힐 정도로 획기적인 복원이라 할 지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오히려 그때 복원을 하지 않고 내버려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그 결과 광화문과 흥례문, 근정문의 중심 삼문은 그 축이 통일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경복궁이 어떤 식으로 복원되어 갈 지는 알 수 없지만 광화문 앞 세종로와 율곡로 등의 대로, 정부종합청사와 미국대사관, 세종문화회관 등의 대형 건물들로 인해 원래의 모습으로까지 복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왜냐하면 경복궁의 경우 그 축 뿐만 아니라 위치 역시 세종로 쪽으로 지금보다 5~6m는 바깥쪽에 지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해태의 위치 역시 정부종합청사 앞쯤으로 옮겨져야 하고.
그래도 이렇게 점점 고종 당시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은 높이 살 만 하다. 그 동안 일제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처참히 희생되어 왔고, 광복 이후에도 개발론자들에 의해, 문화의식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시민들에 의해 망가져 왔던 유산들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차츰차츰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
경복궁은 현재 2009년 완료를 목표로 태원전 권역과 광화문 권역의 복원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지난 1990년부터 진행된 경복궁 복원사업이 완료된다면 고종 당시 330여 동의 약 40%에 이르는 129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경복궁을 만날 수 있게 될 듯하다. 2009년 찾은 경복궁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지 기대를 한번쯤 가져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www.SNUnow.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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