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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은 상대적인 것이다. 비행기가 시속 900Km로 날아도 태평양 상공에선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것 같고 시골버스가 시속 40Km로 달려도 구절양장 비포장길을 지날 땐 과속하는 것 같다.

단위 면적/시간당 변화율이 어느 정도냐가 체감속도를 결정한다. 한반도가 우주에서 내려다 보면 캘리포니아만도 못한 작은 땅이지만 그 안에서 사는 한국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큰 땅으로 느껴진다. 국토의 태반이 산과 계곡으로 덮힌 탓에 굴곡이 많아 단위면적당 변화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함경도, 평안도... 땅은 작지만 지역마다 근거지를 두고 패권경쟁에 열심이었던 우리 조상들에게 한반도는 하나의 소우주였다. 땅크기에 비해 자연환경의 굴곡과 변화가 심한 만큼 문화적 다양성을 배태할 그릇은 충분했던 셈이다.

지난 일요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은 한국사회의 신드롬 현상을 꼬집었다. 채식열풍, 금연운동, 황제다이어트, 포도주 열기... 모두 맞는 지적인데 곰곰히 살펴보니 하나같이 건강에 관련된 신드롬들이다. 신드롬이라도 건강에 관심 많은 어르신 세대의 신드롬인 셈이다. 또 신문·방송같이 구식매체에 크게 영향을 받는 세대에서나 벌어질 법한 신드롬이다.

<시사매거진 2580>은 한국인의 급한 성격과 떼거리 근성을 이유로 들었지만 사실 그런 성향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있다. 사실 문제는 전국을 단일 시청권으로 장악한 방송 자체에 있다. 제 아무리 화제를 일으킬 만한 무엇이 있다 해도 한 지역에만 제한된다면 냄비처럼 전국이 끓어오르는 신드롬은 나타날 수가 없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매스미디어였던 것이다. 서구사회도 가끔 가다 이런 신드롬 병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같은 전국적인 냄비현상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신문이나 방송이나 지역사회의 이슈에 충실한 지역언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슨 신드롬이 나타나도 그 지역에서나 끓고 말지 나라 전체가 뒤집어지는 일 따위는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통계학에서는 이를 구성인자가 매우 랜덤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향성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브라운 현상처럼. 사회적 브라운 현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선 구성원의 숫자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만큼 커야 하고 또한 제각기 다양하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전자는 갖추어졌는데 문제는 후자다.

인터넷 세상에도 신드롬 현상이 벌어지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기존매체에서 제시한 의제가 거꾸로 네티즌 사이에서 논쟁으로 확대된 것이지 순수하게 넷상에서 화제가 된 것이 인터넷 전체를 뒤집을 만큼 엄청난 이슈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터넷의 그릇이 수백 수천만의 목소리를 담아낼 만큼 거대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안티조선운동도 조선일보의 수구적인 목소리에 반대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았지만 한편으론 한국 여론시장의 패권적 지배자인 이 신문의 위상을 낮추는 것에도 관심을 두었다. 설사 조선일보의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이 신문이 한 나라의 여론을 구워삶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는 사회의 다양성을 해치는 공적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시대에는 매스미디어의 전국적 영향력이 국민적 역량을 동원하는 유용한 수단이었고 또 그 시대가 누군가 그런 역할을 해줄 것을 필요로 했지만 다양성이 경쟁력의 원천인 정보화 사회에서는 덩치 크고 목소리 크다는 것 만으로 이미 악(惡)이다.

인터넷은 저비용으로 극한의 다양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구식미디어의 신드롬 병폐를 물리칠 최적의 대안이다. 조선일보와 안티조선의 대립각도 그 중 하나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나라는 작아도 본시 골짜기마다 다채로운 다양성을 배태하고 있던 한반도에서 매스미디어가 죽여버린 다양성의 씨를 인터넷이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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