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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지난 지 일주일. 과로로 인한 몸살 감기가 아직 남아 있는 것만큼 명절 뒷이야기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가슴 한구석을 채우고 있다.

편안하고 화목한 시간을 보낸 가족들, 아니면 그런대로 별 일 없이 조용하고 무덤덤하게 지낸 가족들을 빼곤 유난히 연로하신 부모님과 관계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내 나이 또래가 속해 있는 가족 주기 탓일까.

치매에 걸린 81세 아내를 간병하는 87세 할아버지의 위태위태한 건강. 20년 가까운 동거에 두 손 들어버린 큰며느리에 이어, 둘째와 셋째 아들과 며느리가 앞으로 1년씩 돌아가며 모시겠다는 이야기에 그저 알았다는 대답만 하시는 시어머니…

'공공의 적'에서 조규환은 부모를 죽인다. 그것도 칼로 서른 번 이상 찔러서.

좋은 집에서 의식주 걱정 없이 여유있게 사는 노부부. 모아둔 재산도 넉넉해 펀드 매니저인 아들에게 빌려주기도 하고, 늘 도와오던 보육 시설인 자애원이 팔릴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곳을 돕기로 약정을 한다.

아들에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아버지는 돈을 돌려 달라고 한다. 돈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있다는 아버지. 그러나 아들은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아들의 사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분노하며 아버지를 향해 칼을 들이댄다.

부모, 자식 관계는 참으로 어렵다. 남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고 용납되는 일도 부모, 자식이어서 수용되지 않고 더 큰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다. 닮아서 싫고, 달라서 싫다고 하면 답이 될까. 정말 피하고 싶은 내 모습과 그대로 닮은 것을 확인할 때, 무조건 도망치고 싶다. 반대로 나와 너무 달라서 전혀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때, 그대로 그만두고 싶다. 그러나 도망칠 수도 없고 그만둘 수도 없는 관계이기에 또 다시 관계의 수렁 속으로 빠지곤 한다.

조규환은 쓸데 없는데 돈을 쓰려 하는 아버지가 자기와 너무 달라서 싫었을까. 미웠을까. 부모 살인 과정에서 살인자 아들의 손톱이 부러지고, 사건 현장의 유일한 증거물인 그 손톱 조각은 시신이 된 어머니의 식도에서 발견된다.

살인자 조규환과 그를 쫓는 악질 형사 강철중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축이지만 그 사이에 노인이 서 있다. 무방비 상태인 채로, 무력하게 '공공의 적'들 사이에 서 있다.

평생 주어진 삶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온 것뿐인데, 오늘의 노인들은 현실에서도 무수한 '공공의 적'들 사이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자신의 노후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 자업자득이라고,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우린들 별 수 있겠냐고 뻗대고 있는 사이 그들은 우리 잘못의 증거를 꿀꺽 삼켜 우리를 감추어 주고 있다. 부모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가 자기와 닮아서 행복해 하고, 또 달라서 행복해 한다. 적어도 나보다는 나을 것 같으니까. 부모, 자식도 그래서 서로 없으면 못살 것 같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할까.

덧붙이는 글 | (공공의 적 / 감독 강우석 / 출연 설경구, 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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