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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부터 김훈 씨가 <한겨레>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씨와 함께 <한겨레>에 입사했다. 지난 1월 28일치 <한겨레> 1면에는 홍세화 씨와 김훈 씨가 자사의 기자로 2월부터 일하게 됐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두 사람의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다.

홍세화 씨는 "<한겨레>는 한국 사회의 희망이며, <한겨레>의 정체는 한국 사회의 정체이며, <한겨레>의 좌절은 한국 사회의 절망이다. <한겨레>는 사그러들 수 없는 우리의 희망이어야 한다"는 입사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 한다. 그다운 말이다. 홍세화 씨가 <한겨레>에서 일하게 된 건 더없이 반가운 일이기도 하려니와 <한겨레>에게는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 독자로서 아낌없는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김훈 씨의 <한겨레> 입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50대 중반의 베테랑 언론인이 일선 경찰서 현장 기자로 뛴다고 한다.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왜 하필 <한겨레>에서 그런 신선한 시도를 감행하게 되었을까. 그가 <한겨레> 기자로 일한다는 사실에 내 머리는 너무 혼란스럽다.

놀라운 김훈의 <조선일보> 사랑

<시사저널> 편집국장으로 일하던 재작년 김훈 씨는 <한겨레21>(2000년 9월 27일/제327호) '쾌도난담-위악인가 진심인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조선일보>를 아주 좋아해서 평생을 보는데, 가장 우수한 신문이더만. <조선일보> 사설 같은 걸 보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소름이 쪽쪽 끼친다고. 우리 기자들 보고 이것 좀 보고 배우라고 하지. 근래 들어 정권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게 <조선일보> 아니야?"

이문열 씨가 한 말이 아니다. '극우전사' 김용갑 씨의 말도 아니다. 진보적 시사 주간지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맡고 있던 김훈 씨가 했던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읽었을 때 얼마나 소름이 쪽쪽 끼쳤는지 모른다.

그가 <조선일보>를 좋아하든 말든 내 상관할 바 아니다. <조선일보>가 가장 우수한 신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도 김훈 씨 자유다. 그러나 그가 <한겨레>에서 일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한겨레> 독자 자격으로 내가 꼭 상관해야겠다.

▲ <한겨레21>(2000년 9월 27일/제327호) '쾌도난담-위악인가 진심인가'

비틀리고 뒤틀려버린 이 땅의 언론을 바로세우기 위해 지난 세월 <조선일보> 같은 수구 족벌 언론과 정반대편에 서서 힘겹게 싸워온 게 <한겨레>가 아니던가. <조선일보>가 가장 우수한 신문이라고 말하는 저 이름난 언론인이 한 말을 되씹으며 난 가슴이 얼마나 시렸는지 모른다.

<한겨레21>조차 김훈 씨의 말이 진심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랐던지 난담 제목을 '위악인가 진심인가'라고 뽑았다. 위악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건만 진심임에 분명하다고 제목은 우울하게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아주 좋아하는 그가 찾아간 곳이 <조선일보>가 아니라 왜 하필 <한겨레>일까. 그가 <조선일보>만큼 좋아하지도 않는 <한겨레>에서 일하게 된 사실을 맨정신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김훈 씨도 대단하지만 <한겨레>도 참 대단하다. 이제 <한겨레>는 우리 언론계의 큰 이름 '김훈'과 그의 기사를 얻게 되었다. 그로 하여 <한겨레>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정체성이다

정체성이 휘둘리고 나면 설자리가 없어진다. 뿌리가 흔들리는 일이 그저 눈감아 넘길 수 있는 일인가? '상식'을 버리고는 정론을 말할 수 없다. 상식을 짓밟고도 바른 언론을 꿈꿀 수 있는 게 한국 언론의 현주소라는 걸 알게 하고자 함인가? "<한겨레>의 정체가 한국 사회의 정체"라고 말한 홍세화 씨의 말을 되새기려니 몹시 쓸쓸해진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김훈 씨는 '칼의 노래'로 <조선일보>가 주는 '동인 문학상'을 작년에 받았다. 그 상 수상자로 김훈 씨가 선정되었을 때, 그 상 후보로 오르는 것조차 거부를 했던 황석영 씨나 공선옥 씨를 따라나서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를 그리 좋아하는 그가 돈과 명예(?)까지 함께 얻을 수 있는 그 상을 거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동인 문학상'을 그리 비판하던 <한겨레>는 이제 '동인 문학상'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한겨레>는 김훈 씨를 영입함으로써 한 가지는 제대로 보여주었다. <한겨레>가 '열린 신문'이라는 사실이다. <한겨레>가 얼마만큼 열려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한 말들을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위하고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1)

이 또한 이문열 씨가 한 말이 아니다. 이문열 씨의 말이었다면 절대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 <한겨레>는 남성이 여성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과도 정체성 같은 건 묻어두고 손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

김훈 씨는 80년 당시 한국기자협회 <한국일보> 지회 부회장이었다 한다. 그는 당시 신군부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자신이 모조리 작성했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품에 안은 <한겨레>는 분명히 열린 신문이다. 전두환 신군부에게 신용비어천가를 헌사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걸 보면 그는 참 솔직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럴 리는 없지만 혹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이 <한겨레>에 입사한다고 해도 이제 똑같이 <한겨레>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어야 한다. 김대중 같은 '큰 언론인'을 놓쳐서야 쓰겠는가.

"나도 관념적으로는 통일을 바래. 하지만 피부가 아프게 몸을 상해가면서 통일을 바라고 그런 건 아니야. 통일을 바라지 않아. 못살 게 뻔한데… 이대로 사는 게 좋다고. 어느 놈이 통일을 바래. 대통령밖에 없다고. (웃음)"(2)

그 '어느 놈'이 대통령 한 사람뿐이라면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게 된다. 젠장. 김훈 씨는 그냥 입으로만 '우리의 소원'을 불러대겠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하고 어쩌면 그리 똑같은가. 남북은 한 겨레다. 그래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제호부터 <한겨레>인 신문사에서 일하게 된 김훈 씨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김훈 씨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쓸 만큼 자전거 여행을 즐긴다. 그는 그가 통일을 유일하게 바란다고 믿는 대통령에게 자전거를 타고 북한 땅을 가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존경하는 대통령님께

저는 서울 서쪽 변두리 정발산 밑에 사는 갑종근로자입니다. 나이는 52살입니다. 나라에 아무런 공로도 없이 나이를 먹었고 다만 처자식을 벌어먹였습니다. 저는 신문 기자를 25년쯤 했고 지금은 작은 주간지인 <시사저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늘 혼자 놀기를 좋아해서, 자전거를 타고 우리 나라 전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기뻐했습니다. 최근에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펴내서 소수의 독자들로부터 읽을 만한 글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자전거를 타고 북한에 가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판문점을 통과해서 사리원, 개성, 평양, 신의주, 개마고원까지 가고 싶습니다.

저는 본래 성격이 정치적이지 못한 사람입니다. 다만 내 조국의 산천과 날씨와 바람과 저녁놀과 아침 해를 보려합니다. 그리고 내 조국의 북쪽 땅에 관한 내 생각을 사람들에게 글로 전하려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나라의 모든 법을 잘 지켰고 세금도 꼬박꼬박 다 냈습니다. 도로교통법이나 향군법조차 어긴 적이 없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부디 저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김정일 위원장님께 잘 말씀드려서 저의 자전거와 저의 사진작가의 자전거가 판문점을 넘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이마로 땅을 찧으며 호소합니다.

2000년 9월 27일 김훈 드림
(3)

북한 땅을 얼마나 가고 싶었으면 대통령에게 이런 편지를 썼을까. 이마로 땅을 찧으며 호소한다는 표현에서 간절함이 진하게 묻어난다. 김훈 씨가 자전거로 북한 땅을 맘껏 누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답은 남북통일이다. 그러나 그는 통일이 싫다고 한다. '머리'가 너무 혼란스럽다. 정말 '골'때린다. 그의 편지를 맨정신으로 읽으려면 내가 먼저 이마로 땅을 찧어야 한다. <한겨레>는 답하라. 도대체 <한겨레>와 김훈 씨는 어떻게 하나일 수 있는가?

나는 김훈 씨가 맥락에 어긋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한다면 얼마든지 그를 존중할 수 있다. 그가 분단 고착화에 온갖 노력을 다하는 신문을 찾아갈 때 '상식'이 살 수 있다. 그가 그렇게도 좋아해서 평생 보고 있고,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조선일보>에 가서 그 유려한 필치를 펼쳐 보이지 않고 <한겨레>에서 '백의종군' 하게 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김훈 씨에게 이 말만은 꼭 묻고 싶다. '쾌도난담'에서 한 말들은 <한겨레> 입사와 상관없이 지금도 유효한가?

덧붙이는 글 | (1) <위악인가 진심인가>, 『한겨레21』, '쾌도난담', 2000년 9월27일 제327호.
(2) 같은 책 같은 글.
(3) 이 글은 홍성식 기자가 『오마이뉴스』(2000년 9월 29일치)에 쓴 <'자전거 저널리스트' 김훈이 김 대통령에게 띄우는 편지>라는 기사에서 재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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